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3-18일자 기사 '수천억 손실 뻔히 보이는데도 ‘꿀먹은 벙어리’ 신세'를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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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임이사들 이렇게 ‘거수기’ 됐다
외부서 꽂혀 전문성 떨어지고
정보는 부족한데 토론도 없어
‘좋은게 좋은것’ 분위기도 한몫
경영감시 본분 잊고 침묵 동조
‘브레이크 없는 이사회’ 최근 5년간 금융위원회 산하 공공기관 12곳 이사회의 특징이다. 회사 중대사를 결정하는 핵심 의결기구임에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안건 반대율은 1%를 갓 넘고, 실제 안건이 기각되는 비율은 0.4%에 그친다. 비상임이사들이 경영 감시라는 본분을 잊은 채 ‘침묵의 카르텔’에 동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대목이다.
■ 어떤 피해를 입히나? 최근 5년동안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정책금융공사·주택금융공사·예금보험공사·코스콤·산은금융지주는 이사회 안건 가운데 반대 의견이 단 1건도 없었다. 회사에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안건에 대해 모든 이사회 참가자가 침묵했다.2009년 말 산업은행 이사회는 모그룹 위기로 시장에 나온 금호생명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비상임이사를 포함해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1년여 뒤 감사원 감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이사들이 금호생명의 추가 부실 사실을 알고도 실제보다 비싼 가격에 주식을 샀다는 것이다. 최대 2589억원의 손실 가능성이 제기됐다.산은 관계자는 “당시 강만수 회장이 초대형(메가)뱅크를 강하게 추진하던 때였다. 보험회사를 갖추길 원했지만 누구도 제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정부 입김에 좌우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7월 기업은행은 영업정지된 미래저축은행 인수전에 참여했다. 은행 안팎에서 인수에 따른 실익이 없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사회에서는 반대 없이 통과됐다.한 회사 관계자는 “정부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금융위 등 상급기관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래저축은행은 결국 일본계 업체에 인수됐다.전문성 없는 이사가 외부에서 꽂히면서 황당한 일도 벌어진다. 포항 출신으로 17대 대통령 인수위원을 지낸 뒤 2008년~2010년 3월까지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던 김덕수씨는 한국거래소 상임이사이자 상임 감사로 부임했다. 하지만 19대 총선에서 포항 지역 새누리당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출마하겠다며 상임이사 자리를 갑작스레 중도 사임했다. 이 때문에 2012년 1월부터 한국거래소의 이사 자리는 몇 달간 공석이 됐다.

금융공공기관 수장들이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앞서 선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준희 기업은행장, 강만수 한국산업은행장,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뉴스1
■ 왜 브레이크 안 걸리나? 공공기관 이사회 관계자들은 브레이크 없는 이사회의 이유로 △정보 비대칭성 △낙하산으로 인한 전문성 부족 △토론 문화의 부재 △안건의 사전 조율 등을 꼽았다. ㄱ금융공공기관에서 2년 동안 비상임이사를 지낸 ㅇ교수는 “비상임이사들이 회사 정보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보안’을 이유로 안건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거나 이사회 직전에야 시간적 여유 없이 정보를 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ㅇ교수는 또 “비상임이사 중에 회사에 협조적인 분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이사회 분위기를 끌어가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반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ㄴ공공기관에서 2년간 비상임이사를 한 ㅊ교수는 “이사회가 열리기 전 미리 안건에 대한 의견 조율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안건을 살펴보고 문제가 될만한 것은 아예 제외한다는 것이다. ㅊ교수는 “일주일 전쯤 안건을 미리 받아보고 통과시키기 어려운 사안은 아예 테이블에 올리지 못하도록 한다. 이사회에서 안건을 논의하고 반대하기 시작하면 너무 혼란스러워진다”고 말했다. 이사회 전에 ‘사전 이사회’가 열리는 셈이다.이렇게 되면 조용한 이사회는 가능하겠지만, 토론의 장으로서 이사회의 기능은 무력화된다. 실제로는 ‘부결’에 가깝게 의사 결정이 이뤄져도 회의록 상에는 ‘수정 통과’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최고 경영자가 이사회에서 안건이 부결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좋은 모양새를 갖추길 원하기 때문에 안건을 사전 조율한다”고 말했다. 전문성 없는 인사가 ‘낙하산’으로 오거나 기관장과 친분이 있는 인사들로 이사진이 짜이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 브레이크 걸린 경우는? 최근 5년간 가장 많은 안건이 부결된 기관은 자산관리공사(캠코)로 총 5건이었다. 기술보증기금이 4건, 예탁결제원 2건, 거래소와 신용보증기금이 각각 1건씩이다.부결 이유는 무엇보다 판단할 근거 자료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2008년 기술보증기금 이사회는 향후 5개년 중기사업 계획을 승인하면서, 근거자료 부족을 이유로 의결을 미뤘다. 신용보증기금 이사회는 지난해 ‘본사 건물 매각’과 관련해 심층적인 경제적 효과 분석을 요구하며 부결했다. 기관장이 추진하는 사안에 대한 브레이크도 있다. 예탁결제원 이사회는 ‘기업어음을 발행하는 방안’을 금융기관의 결제업무를 담당하는 기관 특성상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부결시켰다.충분하지는 않지만 다른 기관보다 부결 건수가 많다. 캠코 관계자는 “이사회 분위기가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특히 전문성을 가진 감사가 의견을 많이 내고 사외이사들도 적극적으로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신용보증기금은 지난해부터 이사들에게 자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임원회의 자료 등을 제공하고 내부 현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비상임이사용 인트라넷도 제공된다. 이사들이 원할 경우 직접 안건을 설명하기도 한다.신보 관계자는 “정부에서도 비상임이사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요구한다. 앞으로 이사회 분위기가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준 송경화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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