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7일 수요일

북한 정전협정 무력화 발언의 이면


이글은 시사IN 2013-0327일자 기사 '북한 정전협정 무력화 발언의 이면'을 퍼왔습니다.
북한은 미국의 투자를 받기 위해 평화협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정전협정 무력화 발언의 이면이다. 안 되면 이란에 핵을 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지 안갯속이던 지난 2월 초 베이징은 속이 타들어갔다. 핵실험을 막기 위해 당·정·군의 모든 인맥이 동원됐으나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당 중앙 대외연락부에서 북한의 실세로 알려진 장성택 쪽으로 연락을 취했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그 문제는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핵실험 이후에도 베이징과 평양 관계는 예전 같지 않다. 3월8일의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와 이에 맞서는 북한의 도발 위협 등으로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고 있는 데도 이를 완화하기 위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외교 소식통은 “지금 베이징은 얘기해봤자 들을 것 같지 않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라고 지적했다. 평양은 평양대로 뻣뻣하다. “베이징에서 다녀가라고 초청이 왔는데 못 간다고 그랬다”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Xinhua 3월7일 군 감시소에서 망원경으로 서해 5도를 관찰하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공식이 다 깨졌다.’ 요즘 북한의 움직임을 보며 정보 소식통들이 하는 말이다.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는 북한의 위협이나 도발은 그 자체가 ‘외교’였다. 북한이 문제를 야기하면 시간을 좀 끌다가 중국이 특사를 보내고,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만나주고, 불평불만을 털어놓으면 선물이 주어지고, 그다음 슬그머니 회담장에 복귀하는 식이었다. 중국의 대북 특사는 평양과 국제사회를 연결하는 메신저이자 중재자였다. 

그런데 지금 중재자는 제 기능을 상실했고, 그 대신 ‘성난’ 군부를 앞세워 세상과 맞짱을 뜨는 듯한 젊은 지도자의 불끈 쥔 주먹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뇌부 메시지 ‘지금처럼은 못 산다’

혹자는 아버지와 아들의 스타일 차이로 보기도 한다. 미국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3월8일 CNN에 출연해 “김정일은 냉정하고 계산적이어서 군사적 긴장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출구(off-ramp)’도 의식하고 있었다. 아버지 김정일이 용의주도한 체스 선수라면 아들 김정은은 권투 선수다”라고 지적했다. 김정은의 자리에 군부를 대입한 국내의 분석 역시 마찬가지다.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조선일보) 기고에서 “(이영호 숙청 이후) 절치부심하던 군부는 지난해 12월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올해 2월에는 핵실험을 강행해 성공했다. 군부가 다시 득세하고 현재의 충성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유의 분석은 아버지 시대에서 아들 시대로 넘어오면서 게임의 패턴을 바꾸고자 하는 북한 지도부 내 새로운 두뇌집단의 움직임을 간과하고 있다. 북한 권력 내부에 정통한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현재 북한 수뇌부에 김정은도 군부도 장성택도 아닌 ‘제3의 네트워크’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들이 “수학적 마인드를 가지고 치밀하게 움직인다. 숫자와 상황을 연결하는 수리적인 면이 발달해 있다”라고 지적한다. 현재 북한 측이 보이는 공세적인 움직임들은 이들의 전략 목표에 따라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하게 움직이는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9월 이후 북·중 관계가 삐거덕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도 이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표는 무엇일까. 현재의 긴장 국면을 통해 이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최근 여러 루트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내용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금처럼은 못 살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북·중 관계와 북·미 관계 모두에 대한 불만으로 터져 나온다. 북·중 관계의 경우 중국은 북한이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도와주고 있는데, 더는 못 참겠다는 것이다. 북·미 관계에 대한 불만 역시 위험수위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북한 측 관계자와 대화를 나눴다는 해외의 한 전문가는 “북한은 매우 단순하다. 지금까지와 같은 지지부진한 상태로는 더 이상 못 간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살지 않겠다’는 북한 내부의 열망이 현재의 국면에서 중간 기착지로 삼는 것은 바로 평화협정 체결이다. 그것은 평화협정이 정전협정으로 묶여 있는 북·미 관계의 현상 변경을 의미할 뿐 아니라, 북한 경제의 ‘단박 도약’과 직결되는 종잣돈(시드머니) 마련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이미 지난 3월5일 김영철 북한군 정찰총국장이 유엔의 대북제재 움직임과 한·미 간 합동군사 훈련에 반발해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판문점대표부 활동도 전면 중지하겠다는 내용의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면서 전면에 부각됐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도 3월8일 발표한 성명에서 “조선정전협정이 완전히 백지화되는 3월11일 그 시각부터 북·남 사이의 불가침에 관한 합의들도 전면 무효화될 것을 공식 선언한다”라고 밝혔다. 히라이와 지 일본 간사이가쿠인 대학 교수가 3월10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밝힌 대로 “북한은 정전협정이나 불가침선언 등 ‘38도선 문제’에 집중함으로써 (평화협정을 다루었던) 1997년의 4자회담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종래의 정치군사적 의미 외에 비즈니스적 함의를 깊게 띠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화협정 담론이 등장하게 된 경위를 북·미 관계 측면에서 살펴보면,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의 방북(2월26일~3월1일) 직후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데니스 로드먼은 지난 1월7~10일 방북했던 구글 슈미트 회장의 후속타였다. 정보 소식통은 “미국은 슈미트가 평양을 다녀온 뒤에도 북한의 확실한 요구가 뭔지, 진심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로드먼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보낸 엑스트라 카드다”라고 말했다. 로드먼이 다녀온 뒤에야 평양의 최종 타깃이 평화협정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오바마와 전화 통화를 원한다고 한 로드먼의 얘기는 사실 평화협정 논의, 그중에서도 1단계를 시작하자는 뜻이다”라고 앞의 소식통은 말했다.

평화협정 1단계란 무엇을 말하나. 평화협정은 추진 과정을 길게 늘리면 보통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 1단계는 적대관계에 있던 쌍방이 상대방에 대한 각종 제재를 모두 재검토하고 유예하는 단계이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에 대해 상당히 많은 종류의 제재를 가해왔다. 유형별로는 WMD 확산과 관련한 것에서부터 북한의 핵실험, 인권규범 위반, 공산국가의 지위에 따른 제재 등이 있다. 미국은 2008년 6월 적성국교역법 적용대상에서 북한을 제외했으나 국가위기법, 국제경제위기권한법을 적용해 대통령 행정명령(13466호)을 발동해 북한 자산에 대한 동결조치를 유지하고 매년 연장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도 북한산 완제품은 물론 북한산 부품이나 기술로 만들어진 모든 제품의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새 대북 제재 행정명령을 관보에 게재해 추가로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 평화협정 1단계는 바로 이 같은 제재 조치들을 유예하고, 2단계에서 법률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바꾸고, 3단계에서 대표부를 상호 파견하면서 수교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북한이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한 것은 그 이면에 바로 평화협정 1단계를 위한 논의를 빨리 시작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뭔가. 그것은 바로 북한-이란-미국 간 핵 비즈니스와 관련돼 있다. 

경제회생 종잣돈 마련 위한 몸부림

(시사IN)은 지난 제286호 기사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이란의 자금 지원에 의해 이뤄졌으며, 실험 데이터와 고폭장치 등의 국산화 기술, 그리고 고농축 우라늄 등을 거액을 받고 이란에 팔려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미국 역시 지난해 8월부터 국가정보국(DNI) 국가비확산센터의 디트러니 소장이 중심이 되어, GE(제너럴 일렉트릭)와 구글 등 대기업의 대북 투자를 앞세워 이를 막기 위해 움직여왔다는 점을 밝혔다.

ⓒAP Photo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선 이)은 예전과 달리 북한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베이징과 평양의 관계는 냉랭하다.

이 같은 핵 비즈니스와 평화협정이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들여다보기 위해, 그 이후 새롭게 확인된 사실들부터 살펴보자. 첫째로 이란이 핵실험 결과를 인수하기 위해 지불할 돈은 애초 알려진 50억 달러를 훨씬 넘는다고 한다. 50억 달러는 초기 자금에 불과하고 전체 인수 금액은 약 200억 달러에 이른다는 것. 이란이 이미 지난 2월12일의 핵실험 참관 비용으로 5000만 달러를 북한에 지불했다는 점도 새롭게 밝혀졌다. 

그다음 미국은 GE가 북한과 화력발전소 지원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3월18일 또다시 접촉할 계획이다. 지난 1월10일 접촉에서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고 나면 정부 허가를 받고 좀 더 높은 급에서 다시 접촉할 계획이라고 했던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GE의 화력발전소 계획이 실현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채널 유지 차원을 벗어나기 어렵다. 

구글에 대해서는 태도가 다르다. 북한 측이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다고 한다. 구글의 슈미트 회장이 북한에 제안했다는 내용이 그 뒤 여러 채널을 통해 추가로 확인됐다. 현재 알려진 것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그중 하나는 북한이 당장 먹고살 수 있도록 마그네사이트 광산 개발에 구글이 3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구글이 그동안 소프트웨어를 인도에서 공급받아 왔는데, 그 생산기지를 북한으로 옮길 의향이 있다는 것이다. 인도가 이제 독자 브랜드로 장사하려고 해 공급 기지를 새로 찾아야 하는데,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 20만명을 가진 북한이 이를 할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슈미트 회장이 했다고 한다. 북한 측의 답변은 당연히 ‘예스’였고 양측은 더 깊이 토론하기로 했다. 구글은 매년 100억 달러 넘는 비용을 소프트웨어 개발비로 사용해왔다고 한다. 북한이 그중 인도에 지급되던 일부를 맡게 될 경우 그 비용이 그대로 지급된다면 그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단기간에 들어오는 광산 개발 투자금 30억 달러에 매년 수십억 달러 수입이면, 현재의 북·중 무역 규모를 뛰어넘는 액수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진실일까? 가장 먼저 걸리는 대목이 바로 미국의 대북 제재다. 미국이 적성국인 북한에 첨단기술인 소프트웨어 제작 기술을 넘기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뿐더러, 당장 슈미트가 약속한 30억 달러 투자조차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를 구글 측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슈미트 대표단의 대답이 걸작이었다고 한다. 북한이 국제금융을 잘 몰라서 그 방법을 모르고 있다며, 자신은 미국 정부가 제재할 수 없는 자금을 동원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는 것. 보통 자원개발 펀드는 세탁이 필요한 자금이 몰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구글이 자원개발에 뛰어들 경우 이런 자금을 동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한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를 하면서 국제적으로 떠돌아다니는 돈이 있는데, 이런 자금도 동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쨌건 북한은 구글이 돈을 넣겠다고 하니 지켜보겠다는 태도다.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안 되면 핵실험 결과를 이란에 넘기고 이란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된다. 결국 손해 볼 일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평화협정 1단계가 결부된다. 미국의 진실성을 시험해보자는 것이다. 

중국에 기대는 것 말고 다른 방법?

구글은 어차피 미국 정부를 대리해 나온 것이므로 미국이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면, 굳이 돌아갈 필요 없이 기존 대북 제재를 유예하기만 해도 된다. 즉 평화협정 1단계 조치를 취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것을 할 수 있다면 미국의 진실성을 믿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기’라는 게 최근의 정전협정 백지화 주장에 담겨 있는 함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핵실험 국면이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앞서 북한 내부에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했는데, 이는 곧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추진해온 일련의 경제회생 조처들과 직결된다. 특히 지난해 6월 이후 내부 경제의 혁신과 특구 확대를 통한 외자유치 활동을 본격화한 것도 바로 그런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경제회생에 투입할 종잣돈이 없다는 얘기다. 민간에는 그동안의 북·중 무역을 통해 약 40억 달러의 돈이 축적돼 있으나, 국가에는 돈이 없다. 김정일 전 위원장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굴욕을 참아가며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한 것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는데, 중국은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도와주었지, 결코 근본적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을 자식들은 결국 아버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법하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란과 미국을 상대로 벌이는 핵 비즈니스는 북한 지도부가 경제회생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벌이는 일종의 보급투쟁이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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