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3-03-15일자 기사 '무너지는 내성천 강변을 바라보며, 강을 잊은 그대에게'를 퍼왔습니다.
웅변보다 침묵을 택한 지율스님의 4대강 다큐 ‘모래가 흐르는 강’
뚜렷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는 대개 넘쳐흐르는 정념을 주워 담기보다는 어떤 장면에서 특정한 감정을 느낄 것을 관객에게 강요한다. 특히 영화가 권력층의 비리와 약자들의 서러움을 파고들수록, 대부분의 연출자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관객이 공명하게 만들고자 하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오는 28일 개봉될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도 그런 함정에 빠질 수 있었다. (모래가 흐르는 강)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영주 다목적댐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파괴되는 모습을 담았다. 과거의 내성천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각종 중장비와 콘크리트 더미에 유린되는 내성천의 모습을 보며 분노를 느끼게 마련이다. 지율 스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 캡쳐 화면.(시네마달 제공)
“2008년, 4대강 착공 뉴스를 보고 산에서 내려와 물길을 따라 걸으며 무너져가는 강의 변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수해 예방, 수자원 확보, 수질 개선, 경제 발전 등, 정부의 화려한 구호와는 정반대로 내 눈이 보고 있는 것은 무너지고 파괴되는 국토의 섬뜩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모래가 흐르는 강)은 비탄을 토해낼 만한 대목에서조차 침묵을 지키는 편을 택한다. 서글픔이 강조된 내레이션도, 슬픔을 채색하는 음악도 없다. 간혹 한 번씩 화면 밖에서 한숨처럼 흘러들어오는 지율 스님의 한탄 같은 혼잣말에 억제되고 절제된 감정이 담뿍 배어 있을 따름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묵직한 침묵은 파도가 되어 관객을 강타한다.
러닝타임 75분 내내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사랑은 프레임을 한시도 떠나는 법이 없다. 지율 스님의 발길은 제일 먼저 내성천에 기대어 사는 이들에게 향한다. 60년 간 마을을 떠난 적이 없는 할머니, 90년의 역사를 간직한 초등학교, 강변에 사는 텃새 수리부엉이, 원앙 부부, 먹황새, 수달 가족 등은 모두 댐 공사가 완료되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이들에게 작별을 고하듯, 지율 스님의 카메라는 그들이 내성천 강변에서 마지막 순간을 살아 내는 모습을 멀찍이서 묵묵히 담아낸다.

▲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 캡쳐 화면.(시네마달 제공)
“댐 공사가 지역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그 곳에 물을 채우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가?” 불과 두 시간 만에 베어져 넘어가는 수백 그루의 나무들을 보며 지율 스님은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강에 발을 담가 본 적도 없는’ 이들이 강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이, 나아가 고래로부터 자연의 질서를 지켜 온 강줄기를 마음대로 뜯어고친다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함께 고민하자는 제안이다.
14일 오후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모래가 흐르는 강) 조계종 시사회에 참석한 지율 스님은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픈 것이 어느 물길을 따라 흐를지가 가장 고민되고 무섭다”며 “영화는 (4대강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니고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슬프거나 기쁜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항상 기쁘고 슬펐다”며 “제가 가진 아픔을 어떻게 나누고 이야기해야 사회가 자연을 보는 시각이 바뀔 수 있는지가 가장 큰 화두였다”고 답했다.

▲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 캡쳐 화면.(시네마달 제공)
이렇듯 지율 스님은 파괴된 산천을 보면서 좌절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내성천의 옛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금, 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깨달음에 다다른다.
(모래가 흐르는 강)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꽃으로 피어난 결과물이다. 지율 스님이 수없이 발을 담갔던 모래강의 물줄기가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의 가슴속에 스며들지는 오는 28일부터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강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치 씨방에서 터져 나온 꽃씨들이 모태의 기억을 잊어버리듯 우리는 강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4대강 사업은 그런 우리의 망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내성천 보존 운동은 모래강에 발을 담그고 망각의 세계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 메인 포스터.(시네마달 제공)
윤다정 기자 | songbird@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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