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3-03-18일자 기사 '[위험의 외주화]“하청 노동자 일 더 하려면 작업위험 따질 겨를 없다”'를 퍼왔습니다.
ㆍ현장의 목소리ㆍ조선소 기본적인 안전교육 정규직 1시간, 하청은 15분
ㄱ씨는 지난 14일 폭발사고로 17명의 사상자가 난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대림산업의 화학공장 보수작업 현장에 있었다. 그는 당시 화학물질 저장탑(사일로) 위를 가로지르는 발판 걸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인부들이 또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발판을 사일로에 묶는 작업이었다.
ㄱ씨는 “작업에 앞서 안전화·안전모·귀마개 착용법 등과 같은 기본적인 안전교육을 받았을 뿐이었다”며 “가스나 분진 폭발 같은 위기상황 대응방법은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작업 중 ‘펑’ 소리와 함께 3~4초 후 화염이 덮쳤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사고 현장에서 3~4초면 적지 않은 시간으로 제대로 된 대피요령만 알았어도 긴급대피가 어느 정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못하다 크게 다쳤다”고 했다. ㄱ씨의 동료는 “같은 사업장에서 원청 작업자들은 안전교육을 받지만 대부분 하청 작업자들은 안전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작업시간을 절약해야 하는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산업안전교육 참가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법이 정하는 교육기준 인원수 미만이라는 이유로 교육에서 빠져나가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ㄱ씨는 “사측이 노조의 눈치를 보면서 정규직의 안전을 먼저 챙기는 게 노동 현장의 현실”이라며 “대기업체가 하청을 쓰면 싼 임금으로 일을 시킬 수 있어 본사에 경제적 이익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하청업체 노동자 입장에서는 어떤 일을 시켜도 확실히 해야 다음에도 일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의 위험도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덧붙였다.
ㄱ씨와 함께 사고 현장에 있다가 간신히 화를 면한 유한기술 고용 노동자인 ㄴ씨는 “작업인부 40여명 모두가 1개월짜리 단기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며 “평균 일하는 날이 연간 100여일에 불과하다보니 일감이 있을 때 위험이 따르는 야간근무를 마다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ㄱ씨와 ㄴ씨를 포함해 화학물질 공장 보수작업에 투입된 노동자들은 근무시간이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지만 계약근무 첫날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장근무했다. 노동자들은 식사시간과 오전, 오후 30분씩 외에는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다. 산단에서 이런 형태의 연장근무는 ‘관행’으로 여겨진다. 사측에서는 야근을 해서라도 공기를 단축하면 가동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건비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림산업의 경우 일부 생산시설을 가동하면서 보수작업을 병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수시 관계자는 “여수 석유화학단지 기업들이 과거에는 위험시설의 설비와 보수를 지원하는 부서들이 다 있었다”며 “그러나 이제는 최소한의 인력만 남겨놓고 다 아웃소싱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수시 관계자는 “영세 하청업체들은 계약 비용에 맞추느라 숙련공 투입 숫자를 줄이고, 안전교육마저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경철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여수지부 사무국장(43)은 “여수산단의 경우 대부분 업체가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유독가스와 인화물질, 불산·황산 등 유독물질이 곳곳에 널려 있어 위험이 늘 따르지만 ‘안전작업 매뉴얼’이 미비해 보수공사에 참여하는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여수산단 관계자는 “대기업 정규직의 관심은 빨리 작업을 끝내 가동 중단 손실을 줄이는 데 집중돼 있고, 저임금의 하청 노동자는 빨리 작업을 끝내고 다른 사업장에 가서 다른 일을 해 돈을 많이 벌려고 한다”며 “모순적인 고용구조 속에서 공기 단축에는 서로가 이해를 같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청이 일상화되다 보면 공장 내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일을 하다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지난 1월에는 경남 거제시의 대우조선해양 컨테이너선 조립 과정에서 선박블록이 20m 아래로 떨어져 작업 중이던 협력업체 직원 김모씨(23)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류모씨(33) 등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9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인 명진이엔지에 입사한 지 불과 1개월밖에 안된 직원이었다. 지난달에도 대우조선해양에서 건조 중인 컨테이너선 안벽에서 작업 중이던 사내하청 노동자 진모군(19)이 26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진씨 역시 대우조선 하청업체 부안기업에 입사한 지 2주일 된 직원이었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조직위원회 강병재 의장(50)은 “대형선박의 경우 위험하고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청인력 의존도가 높다”고 말했다. 4만2000명이 일하는 대우조선의 경우 현재 정규직 노동자가 7100명, 사무직 4000~5000명 등이고 나머지가 하청 노동자다. 강 의장은 “어느 조선소 가릴 것 없이 해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곳으로 그만큼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강 의장은 “작업현장에서 거물망 설치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와 안전교육 실시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며 “이는 자율안전관리제를 도입해 조선소가 자율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조선소가 하청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 저임금 효과와 함께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노동유연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었다. 또 노동자를 계층화시켜서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강 의장은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가 있어 노동강도를 높이기 어렵다”며 “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노동강도를 높일 수 있지만 대신 사고가 많이 난다”고 밝혔다. 장시간 노동은 높은 사고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급한 대로 자율안전관리제를 폐지해야 하고 하청 노동자들도 연대해 법으로 방어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하청제도를 폐지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지회장은 “조선소에서 사고가 빈번한 것은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작업속도를 높이기 때문”이라며 “혼재작업이 이뤄지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선박블록 공정 중에 밑에서는 용접을 하고 있는데, 위에서는 추가 작업을 위한 비계 설치를 하는 등 다른 성격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사고가 날 가능성이 늘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안전교육도 한 달에 2시간가량 받도록 돼 있지만, 정규직들이 1시간 받을 때 하청 노동자는 15분이나 30분 정도만 받는다”며 “기일 내 공사준공을 해야 하는 촉박한 시간에 안전교육을 확실하게 하는 것은 거의 어렵다”고 말했다.
하 지회장은 또 “원청사가 하청업체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있다”며 “원청사는 경기가 호황일 때는 성과급 나눠먹기에 바쁘고, 불황일 때는 하청업체를 폐업하는 방식으로 업을 유지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하청업체와 노동자들은 늘 배고픔과 위험에 시달려야 한다”며 “산업체의 모든 노동자들을 원청사 직영으로 해야 하는 게 근본적인 처방”이라고 말했다.
나영석·김정훈·백승목 기자 ys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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