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5일 화요일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시즌2 ?


이글은 시사IN 2013-03-05일자 기사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시즌2 ?'을 퍼왔습니다.
새 정부 인선의 가장 큰 특징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인물이 대거 발탁됐다는 점이다. 인사 스타일도 비슷하다.

우여곡절 끝에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 인선이 마무리되면서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호의 진용이 드러났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주축이 될 인물들인데 ‘박정희’라는 이름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왜 그 인물이 발탁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답을 찾다보면 마치 비밀코드처럼 ‘박정희’가 등장한다. 야당은 “박정희 정권이 부활한 것 같다”라고 비판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제4차)’의 실무 사무관이었던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 청와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허태열 비서실장을 비롯해 아버지가 박정희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역시 아버지가 국가재건최고회의 고문이었던 류길재 통일부 장관 후보자 등의 인연의 끈이 ‘박정희’라는 이름으로 엮인다. 박정희·육영수 사진이 들어간 열쇠고리를 들고 다닌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육사를 수석 졸업하고 대통령상을 수상했던 인물이고, 최성재 고용복지수석은 박정희·육영수의 이름을 딴 서울대 엘리트 기숙사 ‘정영사’ 출신이다. 

‘박정희 코드’는 이미 인수위와 캠프에서도 중요한 맥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인수위 교육분과에는 박 전 대통령의 육사 1년 후배로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 출신인 장우주 한미경영원 이사장의 아들 장순흥 위원이 있었고, 외교국방통일분과 위원에서 사퇴한 최대석 교수는 최재구 전 공화당 의원의 아들이었다. 캠프에는 박 전 대통령 시절 재무부 장관을 지낸 김용환 새누리당 고문을 비롯해 정수장학생 모임인 ‘상청회’ 회장 출신 김기춘·현경대 전 의원이 원로그룹으로 함께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은 허태열 비서실장(왼쪽)을 통해 새누리당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 인선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새마을 장학생’ 출신인 최외출 전 영남대 부총장 등 박정희 시대 인물들이 여전히 막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인수위를 주도했던 한 인사는 “이번 인선으로 ‘보이지 않는 손’이 명확해졌다. 이명박 정부에서 5공 세력이었다면 박근혜 정부는 3공 세력이다. 3공과 연관된 인물은 언론에 언급되는 것보다 훨씬 많다. 70대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80대가 좌지우지하는 나라가 되었다”라고 평했다.  

인물이 겹치는 것만큼이나 주목할 부분은 바로 통치 스타일이다. 1963년 대선에서 윤보선 후보를 15만여 표(약 1.5%포인트) 차이로 가까스로 이긴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정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초대 내각에 군 출신을 5명만 임명했다. 그에 비해 초대 각료 18명 가운데 절반인 9명을 관료 출신으로 썼는데, 그중 5명이 같은 부처 차관 출신이었다. 관료를 앞세워 정권 안정을 꾀한 셈인데, 청와대 참모와 초대 내각 30명 중에 친박 정치인을 5명만 임명하고 고시 출신을 17명이나 임명한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이 이를 빼닮았다.

박근혜 정부 초대 내각 인선에 대해 일각에서는 전문성 위주로 선발한 ‘실무형 내각’이라고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약한 내각’이라는 지적이 더 많다. 반면 측근 위주로 구성된 청와대는 ‘강한 청와대’로 묘사된다. 평균 나이도 청와대 참모가 61.1세로 장관 후보자들의 평균 나이 58.2세보다 많다. 김장수 외교안보실장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육군사관학교 선배이고,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외무고시 선배다. 그래서 강한 청와대가 약한 내각을 실질적으로 지배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수석 비서관제를 도입하는 등 대통령 비서실을 꾸준히 강화한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이것 또한 겹친다. 

관료 앞세운 점, 아버지와 비슷

박정희 전 대통령은 초반에는 관료 출신을 중용하다 국정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군 출신 비중을 늘렸다. 그 결과 박정희 정부 시절 124명의 장관(국무총리 포함) 중에 군 출신이 42명으로 관료 출신(50명) 다음으로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와 내각 인선에 학자 출신을 8명이나 임명했는데 박 전 대통령 역시 초대 내각에서는 학자 출신을 중용했지만, 후기로 가면서 학자 출신을 장관직에 거의 임용하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 출신과 관료 출신을 양대 축으로 해서 경제개발을 추진했다. 당시의 관료 우대가 정책 실행에 대한 적극적 의지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관료 우대는 다르게 읽힌다.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급 직위를 맡았던 한 대학교수는 “대통령은 집권 후기로 갈수록 관료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관료는 현실 개혁 의지가 없다. 집권 초반에는 외부 수혈을 통해 개혁을 도모해야 한다”라며 우려감을 표시했다.  

기업가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관료보다 학자(교수·연구원)를 더 선호했다. 그래서 초대 청와대 참모와 내각 중에 학자 출신(11명)이 관료 출신(8명)보다 많았다. 반면 정치인 출신인 박근혜 대통령은 관료를 더 선호했다. 관료 출신이 12명으로 학자 출신(8명)보다 더 많다(오른쪽 기사 참조). 이에 대해 정가에서는 “기업가 출신 대통령의 경우 관료가 ‘갑’이었기 때문에 강한 거부감과 함께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데 비해, 정치인 출신 대통령은 구체성이 있고 실행방안을 제시하는 관료를 이론만 늘어놓는  학자보다 더 선호한다”라고 해석한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정현 정무수석(오른쪽)을 통해 새누리당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용인술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 할 부분은 ‘문제가 되더라도 돌파력이 있는 인물’을 임명한 경우와 ‘문제를 덜 일으킬 무난한 인물’을 임명한 경우다. 박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 위기 국면에서는 돌파형 인물을, 관리 국면에서는 무난한 인물을 선호했다. 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내각에 임명된 진영 의원은 ‘문제를 덜 일으킬 무난한 인물’에 해당하고, 비서실장에 임명된 허태열 전 의원은 ‘문제가 되더라도 돌파력이 있는 인물’로 분류된다(이미 ‘섹스프리한 관광 특구를 만들자’ 등 이전의 설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청와대를 어떻게 운용할지, 내각을 어떻게 이끌지에 대한 대통령의 서로 다른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이 상황에 몰려 인사를 하면서 이전에 천명했던 몇 가지 원칙에 어긋나는 모습이 엿보인다. 인수위 출범 당시 박 당선자는 “인수위 멤버가 차기 정부로 옮겨가기 위해 임명되는 것은 아니다. 인수위 인선과 청와대 및 내각 인선은 별개다”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 인수위는 ‘조용한 인수위’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막상 초대 인사의 뚜껑을 열어보니 인수위가 권력의 산실이었다. 인수위 출신이 13명이나 청와대 참모와 초대 내각에 진출했다(박근혜 행복캠프 출신은 9명). 

ⓒ뉴시스 밀봉 봉투에서 인선안을 꺼내는 윤창중 대변인.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라며 국민통합을 숱하게 강조해놓고 초대 인사에서 야권 후보를 지지한 48% 국민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거리로 지적된다. 이 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대 인선과 비교해 서로 다른 대목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은 초대 내각을 꾸리면서 대선 기간 친일 경력과 남로당 연루 사실을 폭로하는 등 자신에게 가장 비판적인 보도를 한 (동아일보)의 최두선 전 사장을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애독한다는 제왕학의 교본 (정관정요)를 지은 당 태종이 정적의 모사였던 위징을 중용한 것과 비슷한 끌어안기였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첫 인사에서는 그런 ‘반대편 끌어안기’의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계속 낮아져서 이제 대선 득표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데도 말이다. 

취재도움:배준용 인턴 기자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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