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0일 금요일

MBC 노조 멀고 험한 승리의 길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7-20일자 기사 'MBC 노조 멀고 험한 승리의 길'을 퍼왔습니다.

▲ (서울=뉴스1) 이정선 기자 = MBC노동조합 정영하 위원장(왼쪽)이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MBC방송국 앞에서 열린 MBC노조 파업 잠정중단 결정관련 공동행동 기자회견에서 경과 보고 및 발언을 하고 있다. 2012.7.18/뉴스1
MBC 노조가 170일 동안의 기나긴 파업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경영진이 ‘피의 보복’을 시작했다고 한다. 대표적 시사프로그램인 PD수첩 담당PD를 비제작부서인 사회공헌실로 보내는가 하면 (W) 등을 연출했던 PD를 신사옥건설국으로 발령했다. ‘올림픽 방송의 인력 부족’을 구실로 업무에 복귀하라고 호소하던 대상인 아나운서들을 뉴스나 올림픽 보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부서에 배치했다. 보도국 기자 20여 명도 비보도 부서로 ‘추방’당했다. 이런 사실은 김재철 사장을 비롯한 MBC 경영진이 한국언론사상 최장기 파업의 진정한 의미를 아예 모르거나 묵살하려 들고 있다는 증거이다.
노조는 지난 17일 조합원 총회를 열고 ‘파업 잠정 중단’을 결정한 뒤 “이기기 위해 나왔고 이기기 위해 들어갑니다. 부끄럽지 않았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마봉춘 이제 돌아갑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승리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노조가 파업의 목적으로 내세운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회복’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터로 돌아간 MBC 노조의 앞날에는 파업 시기에 못지않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경영진은 그동안 8명을 해고하고, 손해배상액으로 195억원을 내라고 노조집행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강경책이 ‘없던 일’로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재철 사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보복과 핍박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는 ‘이기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1970년대 중반과 1980년 봄부터 여름까지 언론계에서 펼쳐졌던 ‘자유언론실천운동’이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고 본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사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에서 비롯된 반유신독재운동은 언론인들의 ‘물리적 패배’로 끝났다. 동아일보사의 기자들과 동아방송의 PD, 아나운서 엔지니어 등 113명이 1975년 3월 폭력에 밀려 거리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조선일보사에서도 32명의 기자들이 추방당했다. 그들은 37년이 넘은 지금까지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유신재판부’는 철저하게 동아·조선 경영진의 편을 들었고, 그 어떤 정권도 해직언론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대다수가 고희를 넘긴 동아·조선투위 사람들은 2012년 초부터 언론계에 불어닥친 ‘자유언론실천운동’의 거센 바람을 보면서 그들이 이루지 못한 꿈이 실현되기를 열망했을 것이다.
1980년 광주 5월 항쟁 시기에 전국의 많은 언론사들에서는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의 학살과 만행에 저항하는 제작거부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신군부는 언론사 경영자들에게 압박을 가해 ‘불순한 언론인’ 933명을 강제해직시켰다. 그들은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를 결성하고 복직 투쟁을 벌였다. 그 가운데 다수가 개별적으로 회사로 돌아갔으나 자유언론을 실천할 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두환 군사독재가 언론사들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하면서 전체주의적 언론체제를 굳혀버렸기 때문이다.
MBC 노조는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무참하게 보복을 당하고 있으나 동아·조선투위나 80년 해직언론인들에 비하면 훨씬 유리한 상황을 확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 750여명 가운데 일부 이탈자와 해고된 8명만 빼고는 전원이 함께 일터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975년 동아·조선일보사의 경영진과 1980년 여러 언론사의 사주들은 독재정권의 강압을 못 이기거나 스스로 권력과 야합하면서 언론인 강제해직을 할 수 있었지만 MBC 경영진은 지금 그런 ‘대량 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보복성 인사와 소송이 그들의 무기일 뿐이다.

 
▲ (서울=뉴스1) 이정선 기자 = MBC노동조합이 장기간의 파업에 마침표를 찍고 지난 17일 MBC노조가 파업철회를 선언한 가운데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MBC방송국에서 직원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MBC노조는 170일 간의 긴 파업을 끝내고 회사로 복귀했지만 사측이 파업기간 동안 채용한 신규인력에게 기존의 일을 계속적으로 맡길 예정이라 밝혀 신규채용 인력과 노조원 간의 심각한 내부갈등이 예상된다. 2012.7.18/뉴스1

다음으로, MBC 노조는 파업 기간에 사이버시대의 최첨단 장비와 홍보전략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1975년과 1980년에 등사기로 유인물을 찍어 시민들에게 홍보를 하던 선배언론인들과는 전혀 다른 여건을 충분히 활용한 결과 ‘김재철 사장 퇴진 및 구속수사 촉구’에 대해 시민 70만여 명의 서명을 받는 획기적 성과를 거두었다. 이것은 2012년의 자유언론실천운동이 대중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1975년과 1980년의 동토(凍土)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MBC 노조원들은 이번 파업을 통해 낙하산 사장만을 사퇴시킨다고 해서 자유언론과 공정방송이 저절로 실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깨달았을 것이다. 낙하산 사장을 실질적으로 임명한 뒤 청와대로 불러 ‘쪼인트’를 까는 정권을 극복하지 못하면 ‘망나니 사장’의 칼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오는 12월 19일의 대통령선거에서 새누리당이 다시 집권한다면, MBC와 KBS가 ‘관영화한 상업방송’에서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돌아가는 길은 철저히 봉쇄될 가능성이 크다. 그 당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두 방송사 노조의 파업이 정당하다고 인정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주)문화방송의 주식 30%를 보유한 정수장학회의 실질적 지배자이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의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자유언론과 공정방송이 제 발로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에 그런 사실을 분명히 보았다. 수구보수세력과 조선·중앙·동아를 중심으로 한 보수언론의 반발과 저항을 과감하게 물리칠 수 있는 정권만이 자유롭고 독립된 언론의 길을 열 수 있다.
MBC 노조는 ‘마봉춘 노조’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나는 거기에 ‘만보천(萬步川, MBC)’을 덧붙이고 싶다. 그들의 앞길에는 ‘만 걸음’이 넘는 넓고 깊은 강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파업 기간에 보이던 단합과 우애가 경영진의 당근과 채찍 앞에서 빈틈을 보일 수 있고, 공정보도를 통해 진정한 민주정부를 세우는 데 기여하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MBC 노조의 조합원들이 김남주 시인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늘 합창하면서 ‘만보천’을 건너 승리의 고지에 오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 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가로질러 벌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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