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5-22일자 기사 'KBS의 ‘민주당 도청’ 의혹'을 퍼왔습니다.
언론과 권력 (93)
“취임 후 KBS를 관제 특집프로그램으로 도배했다”는 비판을 회사 안팎에서 받던 김인규는 2011년 여름 ‘공영방송사의 야당 도청 의혹’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휘말려 들었다.
6월 24일 오후 민주당 원내대표인 김진표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제1야당인 민주당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린 완전 비공개 최고위원회 회의가 도청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민간인 사찰과 불법 대포폰도 모자라 제1야당 손학규 대표의 안방까지 엿듣는 도청공화국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23일 오전에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문방위 의원 연석회의는 KBS 수신료 인상에 관해 당의 대응전략을 논의하던 자리였다. 그런데 그 이튿날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의원 한선교가 23일에 있었던 민주당 연석회의 발언 내용을 공개했던 것이다.
한선교는 김진표가 제기한 ‘도청 의혹’에 대해 ‘민주당 내부자로부터 받은 메모’라고 주장했다. 손학규는 “민주당이 회의록에 대한 녹취록을 작성하기 전에 이미 여당 의원이 최고위원회 발언록을 정확히 인용했다”면서 “정식 문서가 아니라 도청일 수밖에 없는 문서를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낭독한다는 것은 의회주의의 기본을 잃은 처사”라고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국회 민주당 당 대표실 불법도청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천정배는 27일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가진 인터뷰에서 도청 의혹의 근거로 자신이 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을 한선교가 그대로 읽은 사실을 들었다.
“천 의원은 ‘국회 영상녹화도 돼 있지만 한 의원은 문방위 회의에서 문건을 들고 발언을 했고, 그러면서 이것은 틀림없는 발언 녹취록이라고 밝혔다’며, 오늘(27일) (동아일보)도 이른바 녹취록을 입수해서 보도했던데, 이 녹취록의 존재, 이것이 (바로) 유력한 도청 근거 아니겠나‘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2011년 6월 27일 자)
민주당은 수신료 인상 문제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쪽을 도청의 주체로 지목했다.
“수신료 인상은 KBS가 직접 당사자이고, 종합편성채널(종편) 광고시장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특히 KBS의 경우 수신료가 월 2,500원에서 1,000원(40%) 인상되면 연간 2,200억 원의 수입 증가가 기대돼, 1년 이상 이 문제에 사활을 걸어왔다.” (경향신문, 2011년 6월 28일 자)
민주당 ‘불법도청 진상조사특위’에 참여한 국회의원 이윤석은 6월 29일 “이번 불법도청은 기계로 녹음한 것을 (녹취록으로) 푼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고, 당의 핵심 당직자는 ‘관계 언론사’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KBS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는 “KBS가 녹취와 그 내용을 전달한 것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확산되는 마당에 침묵은 의혹을 증폭시킬 뿐”이라며 “사측은 KBS 명예를 위해 도청 의혹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KBS는 6월 30일 ‘정치권 논란에 대한 입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민주당 관계자 등의 이름을 빌어 KBS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증폭되고 이로 인해 회사의 명예가 크게 훼손되는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따라 필요한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 수신료 문제의 당사자로서 이와 관련된 국회 논의를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수신료 문제를 국회에서 다루고 있는 한나라당·민주당 등 주요 정당의 국회의원 등과 긴밀하게 협의해 왔으나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이른바 도청 행위를 한 적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둔다.” (경향신문, 2011년 6월 28일 자)
그 무렵 한 ‘정치포털 사이트’에는 ‘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에 관한 언론의 보도를 바탕으로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글이 올랐다.
(조선일보) 오늘(6월 30일)자 1면에 실린 기사 제목은 ‘KBS 기자 당 대표실 들어가는 것 봤다’이다. 비공개회의에 앞서 기자들에게 잠시 그림 잡게 해주는 것은 관례다. 기자들 스케치가 끝나면 회의는 속개된다. 마음만 먹으면 기자들이 무선 마이크를 심어놓을 수 있다. 회의가 끝난 다음에 KBS 기자가 녹음된 내용을 풀어 정리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 내용이 한선교 의원에게 전달된 것일까.
민주당이 도청 의혹을 제기했을 때, 한선교 의원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도청을 하겠느냐며 발뺌했다. 한 의원은 녹취록을 누군가에게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시나리오는 네 가지뿐이다. 한나라당에서 도청했거나, 민주당 인사 중에 누군가 배신했거나, 한나라당의 사주를 받은 KBS 기자가 바보 같은 짓을 했거나, KBS가 강박증 때문에 사고를 쳤거나.
지금으로서는 KBS와 한나라당의 강박증이 이루어낸 사건일 확률이 높다. 미국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 워터게이트 건물에 입주해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을 도청한 사건이다. 현장에서 경찰에게 잡힌 범인들은 도청 장비를 가지고 있었다. 도청 의혹이 제기되자 닉슨 보좌관들은 피식 웃었다고 한다. 왜 우리가 도청하겠느냐며 부인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의 기자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을 밝혀냈다. (···) 그때 미국 정치전문가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의 강박증이 만들어낸 사건이었다고 진단했다. (밥이야기, ‘불법 도청,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서프라이즈, 2011년 6월 30일 자)
도청 사건에 관해 KBS 기자 연루설을 뒷받침하는 의혹들이 잇달아 제기되자 김인규가 KBS 이사회 야당 쪽 이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벽치기는 취재기법으로 다 해왔던 것인데 문제가 될 게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벽치기’는 기자들이 회의실 문 바깥벽에 귀를 대고 붙어 서서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엿듣는 취재 방법으로 도청과는 전혀 다르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김 사장의 언급이 사실이라면 민주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내용 외부 유출에 자사 기자가 연루됐음을 시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국일보, 2011년 6월 30일 자)
민주당은 7월 1일 한선교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 법 제3조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제16조는 “이를 공개하거나 누설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7월 초에 민주당 도청 사건의 혐의자로 KBS의 기자 장 아무개가 떠올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의 수사 관계자는 “장 기자가 14일 오후에 사전 통보 없이 경찰서에 와서 6월 23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당시 행적에 대해 진술하면서 도청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 이후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가 그에게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경찰의 1차 조사에서 “(한선교 의원이 녹취록을 입수해서 공개한 날인) 6월 24일 다른 취재 일정 때문에 국회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이 그의 휴대전화 수·발신 내역과 통화위치를 추적하고 국회 폐쇄회로 카메라를 조회하고 차량 출입 일지를 확인해 보니 24일 국회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민주당 최고위원회가 비공개로 열린 지난달 23일 장 기자의 휴대전화가 오랜 시간 사용(통화)되지 않은 점도 경찰의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경찰은 장 기자가 휴대전화기의 녹음기 기능을 사용해 이 회의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또 지난달 23일부터 26일까지 사흘 동안 장 기자가 KBS 정치부 보고 라인과 여러 차례 통화한 사실도 파악했다. 경력이 짧은 기자가 평소에는 회사 간부들과 통화할 일이 적은데 이 시기에 그 빈도가 부쩍 늘었다는 뜻이라고 경찰은 전했다.
장 기자가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지난달 27일 택시에 놓고 내렸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장 기자가 당시에 탔던 택시의 운전기사를 찾아내 조사했는데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두고 내린 일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1년 7월 22일 자)
7월 21일 오후, 2000년 이후 KBS에 입사한 젊은 기자 256명 가운데 166명이 각자의 실명을 밝힌 성명서를 발표했다.
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 사건이 터져나온지 벌써 한 달이 돼 간다. 그동안 KBS에는 긴 침묵만이 흘렀다. 부끄럽고 참담하기 짝이 없다. 김인규 사장을 비롯한 KBS 수뇌부 어느 누구도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도청 의혹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KBS가 내놓은 해명은 참으로 옹색함을 넘어 어처구니없을 정도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방식의 도청은 없었다.”, “제삼자의 도움이 있었음을 부득불 확인하지만, 취재원 보호를 위해 밝히지는 않겠다.” 또한, 애매모호한 해명의 주체 역시 경영진은 보도본부로, 보도본부는 정치외교부로 떠넘기고 있다. 취재원의 말 한마디, 한 마디의 의미를 읽어내는 훈련을 받은 우리가 봤을 때 이건 정말 말장난에 불과하다. 정녕 KBS 수뇌부는 세상 속 여론을 모른단 말인가? 이런 해명으론 의혹 해소는커녕 불신만 키울 뿐이다. 언제까지 ‘언론자유’나 ‘취재원 보호’ 운운하며 사무실 뒤에 숨어 있을 것인가?
지금 KBS에 대한 여론은 그야말로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한 달 가까운 침묵과 애매모호한 해명으로 일관하는 사이, 공영방송 KBS는 처절하게 무너졌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선 취재기자들의 몫이다. 당장 취재 현장에서 “KBS 너희들이 그렇지 뭐, 영혼 없는 기자들아, 딴 데 가서 취재하라” 이런 식의 조롱과 비아냥이 들려오고 있다. 심지어 취재 현장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미디어오늘, 2011년 7월 22일 자)
KBS 입사 10년차 이하 피디 148명은 7월 25일 사내게시판에 ‘사장님 힘 내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피디들은 “제작현장 역시 도청의 멍에를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더 이상 수사기관 뒤에 숨지 말고 직을 걸고 떳떳하게 답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의혹의 중심에 KBS가 있고 사상 초유라는 경찰의 압수수색까지 봐야 했다’며 ‘책임 있는 지위의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의 침묵에 대해서는 ‘지난 몇 개월간 사내에 광풍이 있었고, 취재진들이 사병처럼 동원된다는 이야기에도 귀를 닫았고, 누구들이 민주당사 앞에 무리 지어 몰려갈 때도 눈을 감았다’며 ‘오늘의 참담함이 더욱 뼈저린 이유’라고 자성의 목소리도 전했다.” (미디어오늘, 2011년 7월 22일 자)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는 7월 20일부터 25일까지 조합원 1,063명을 대상으로 ‘도청 의혹’에 관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응답자 567명 가운데 97%인 548명이 ‘도청 사건에 KBS가 연루됐다’고 보는 조사 결과가 나타났다. 회사 경영진이 설문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25일 저녁에 냈으나 서울남부지법 제51민사부는 “설문 내용은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도청 의혹과 관련해 현재의 객관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KBS 직원들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내용으로 특별한 답변을 유도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사장 김인규를 비롯한 KBS 경영진은 7월 27일 오후 ‘최근 현안과 관련한 경영진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발표했다. 이 글에서 경영진은 “이른바 도청 의혹과 관련해 본부 노조가 악의적인 설문조사를 강행하면서 사측을 비난하고 구성원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영진은 ‘어느 사이 정치권의 (수신료 인상) 합의 파기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이른바 도청 의혹만 남아 있는 형국으로 변질됐다’며 ‘이렇게 되기까지 그동안 근거 없는 의혹을 확대재생산 하면서 사원 간의 불신을 조장한 본부 노조의 책임도 없다 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피디저널, 2011년 7월 28일 자)
전 KBS 사장 정연주는 경영진이 낸 자료를 보고 이렇게 평가했다.
KBS의 ‘도청 의혹’과 ‘정치 공작’이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 최근의 물난리와 산사태가 연상된다. 가래로 막을 수 있는 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봇물이 터지고, 끝내 산사태를 일으켜 엄청난 재난을 불러오는 양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KBS 경영진은 경찰이 도청과 관련된 구체적 증거, 예컨대 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 내용을 몰래 담은 장비를 찾지 못할 경우, 사건이 유야무야 될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오산이다. 경찰이 ‘수사권 독립’의 일부를 얻어내고도 참으로 무능하여 수사결과가 없는 무능을 스스로 드러냈다손 치자. 그러나 KBS가 이미 고백한 ‘제삼자’의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되고, 그 ‘제삼자’를 통해 입수된 ‘녹취록’이 어떤 경위를 거쳐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는가 하는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핵심 쟁점인 ‘정치공작’의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 (‘KBS 동문서답, 딱 두 마디가 빠졌다’, 오마이뉴스, 2011년 8월 3일 자)
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 ‘녹취록’을 입수한 장본인인 한나라당 의원 한선교는 민주당이 의혹을 제기한 지 두 달이 넘도록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주장하면서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도청 사건’ 이전에 KBS는 한나라당, 방송통신위원회와 손을 잡고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였다. 2011년 3월 10일 수신료 인상안은 ‘여야 합의 처리’를 전제로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에 상정되었다. 그 뒤 6월 20일 문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수신료 인상안을 기습적으로 처리했다.
KBS의 숙원은 곧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문방위 전체회의를 앞두고 민주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표결을 저지할 움직임을 보이자 한나라당은 ‘강행 처리’를 보류했다. 그런 과정에서 ‘도청 의혹’이 불거져 KBS 수신료 인상 문제는 표류하게 되었던 것이다.
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 대한 도청 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011년 11월 2일 KBS 장 아무개(32) 기자와 국회에서 녹취록을 공개한 한나라당 의원 한선교에 대해 ‘혐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했다. 경찰은 120일이 넘는 수사 기간에 한선교를 단 한 번도 직접 조사하지 못했는가 하면 KBS 쪽 관련자들의 혐의를 입증할 물증 확보에도 실패했다.
민주당이 ‘국회 당 대표실 도청 의혹’을 제기하던 날인 6월 24일 KBS는 백선엽을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미화한 다큐멘터리 (전쟁과 군인)을 내보냈다. 이 특집기획은 24, 25일 이틀간 KBS 1TV에서 황금시간대인 밤 10시부터 한 시간 동안씩 방영되었다.
백선엽은 1943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 소위로 임관되어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했다. 간도특설대는 만주에서 활약하던 항일무장단체를 토벌하기 위해 조직된 특수부대였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항일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경향신문) 온라인 편집장 박래용은 (전쟁과 군인)에 관해서 이렇게 비판했다.
‘백선엽 다큐’는 공영방송이 만든 다큐멘터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한 개인의 기억과 의견만을 추종했습니다. 미공개 영상이란 것도 미군 행렬 같은 게 태반이어서 특별한 사료적 가치는 없어 보였습니다. (···) 혼돈의 시절,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 피해 사실이나 무고한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죽이고 그 가족들을 고통 속에 살게 한 국가 폭력에 대해서는 1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
백선엽은 회고록에서 조선인을 토벌한 사실을 당당히 밝혔습니다. 그가 해 방 이후 이제까지 간도특설대의 친일 전력에 대해 참회하거나 반성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백선엽은 같은 동포를 토벌하고 죽이면서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고 후회하지도, 사죄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칼을 쥐고 있는 자의 사명’이라며 자신의 친일행각이 정당하다고 외쳤습니다. (·····)
해방 후 간도특설대 출신들은 토벌작전 경험을 무기 삼아 4·3사건과 지리산 빨치산 토벌에 주력으로 참여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후 백선엽은 나이 32세에 육군참모총장이 되었습니다. 백선엽이 6·25전쟁에서 전과를 세웠다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 기간방송을 자처하는 KBS가 백선엽을 우리 민족이 본받아야 할 위대한 군인으로 미화한 것은 ‘미친 짓’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백선엽 만세! KBS 만세! [온라인편집장 칼럼], 경향신문, 2011년 6월 28일 자)
KBS가 백선엽을 ‘위대한 군인’으로 미화하는 (전쟁과 군인)을 방영하고 나서 광복절 특집으로 5부작 다큐멘터리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제1공화국)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노조 KBS 본부는 ‘친일독재 찬양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하고 반대 운동에 나섰다.
“비대위는 7월 12일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친일파 백선엽 찬양 이후 쏟아진 비난에도 불구하고 KBS가 또다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킬 일을 벌이고 있다”며 “우리 단체들의 거듭된 경고와 항의, 그리고 취소 요청에도 불구하고 KBS는 광복절을 기념해 독재자이자 민간인 학살의 최고 책임자인 이승만을 찬양하는 다큐멘터리를 예정대로 강행하겠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비대위는 “광복절을 전후해 초대 대통령의 일대기를 돌아보는 대규모 프로그램을 방송함으로써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고,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보다는 ‘1945년 공산정권에 맞선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세력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KBS가 나서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노컷뉴스, 2011년 7월 13일 자)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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