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0일 목요일

'일베' 사이트를 폐쇄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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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모욕죄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

누군가를 위한 성역을 만들면 그 성역이 바로 우리의 감옥이 된다. 최근 '종북주사파'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현실적 수사 대상이 될 수" 있어 그 호칭의 허위사용은 그 대상을 범죄자로 칭하는 것이라서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는 판결들이 이정희 전의원이나 전교조에 대해서 나왔다.

몇 달 전에 대법원이 '대머리'라는 허위호칭에 대해 대머리로 알려진다고 해서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지 않는다며 명예훼손 무죄판결을 내렸었다. 주사파 등의 칭호도 평소 같으면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80년대 주사파라는 말은 폄하의도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국가보안법 상 주사파가 처벌대상이 되니 주사파가 아닌 사람을 주사파라고 허위로 칭하는 것은 그 사람의 평판을 범죄자 수준으로 부당하게 저하시키는 것이 되어 명예훼손이 성립되는 것이란다. 결국 국가보안법 좋아하실 분들이 국가보안법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니, 국가보안법의 역습이라 할 만한다.

그런데 아마 재역습을 당할 것이다. '종북주사파' 호칭 사용이 그 대상을 국보법 처벌대상으로 칭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명예훼손 손해배상/유죄대상이 되어버리면 '매카시즘', '종북몰이'라는 호칭 사용도 상대를 손해배상/유죄대상이라고 칭하는 것이니 이 역시 명예훼손대상이 된다.

'일간베스트' 사이트(이하 일베)를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일베에 대해 명예훼손판결을 내리면 '일베충'이란 호칭을 잘못 썼다고 해서 명예훼손 책임지는 분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법으로 말을 규제하는 건 신중하게 해야 한다. 명예훼손은 무한 순환할 수 있다.

물론 차별금지법의 연장선상에서 약자에 대한 차별과 피해를 초래할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을 가진 언사를 법으로 규제하는 건 찬성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이미 "장애를 사유로 장애인을 모욕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을 포함한 학살피해자들도 아직도 보호대상이라고 봐야 한다. 사실 학살이 아니더라도 살인, 강간 등의 범죄피해자들 모두 보호대상으로 볼 수도 있다. 차별금지법은 약자보호를 위해 비대칭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무한순환하지 않는다. 장애인을 '병신'이라고 부르면 제재되지만 장애인을 학대하는 사람을 '장애인 학대꾼'이라고 부른다고 제재되지는 않는다.

역사왜곡죄는 반대한다. 단순히 말이 허위라고 해서 그 허위주장이 어떤 피해를 미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말을 규제하는 것은 주의해야한다. 미네르바법 위헌판결로 한걸음 진보했는데, 역사왜곡죄는 미네르바법의 부활이나 다름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차별적 언사가 약자들에게 명백하게 끼칠 정신적 피해를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차별금지법이다.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이 존재하고 차별금지사유에 '학살피해'도 포함한다면 지만원 씨의 5.18민주화운동 왜곡은 일반적인 역사왜곡과는 달리 평가되었을 것이다.

이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일베의 5.18민주화운동 왜곡에 대해 법적규제를 하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될 수 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잡으려 하다가는 무한순환 속에서 공적 사안에 대한 토론이 어려워진다. 당장 천안함 사망자들과 천안함 의혹제기와의 관계도 위험해진다. 일베를 법적으로 규제하고 싶다면 우선 차별금지법부터 멋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공짜는 없다.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 조항을 폐지하기 힘든 이유 중의 하나는,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6.25전쟁 때 인민군에게 목숨을 잃은 분들에게 북한입장에 대한 동조는 학살자 찬양이 되기 때문이다. 유태인들 앞에서 나치를 찬양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결국 차별금지법으로 '학살자 혐오발언' 금지도 포함된다면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 조항 폐지하기도 어려워질 거다. 그런 국보법 유지론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담론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 보다 급한 것이 있다. 모욕죄의 폐지이다. 이미 모욕죄가 모든 모욕을 징역1년까지 중벌하고 있어 5.18 민주화운동 학살피해유족이든 6.25 인민군학살피해자든 학살사실의 왜곡에 대해 또는 학살자의 찬양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모욕에 대해 법의 보호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모욕죄를 존속시킬 수는 없다. 차별금지법과 바꿔야 한다.

과연 국민을 모욕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모든 타인에 대한 평가는 모욕의 위험을 동반한다. 평가받는 사람의 기대에 어긋난 평가는 항상 그에게 모욕감을 준다. 결국 모욕죄는 타인에 대한 평가 즉 자신의 감정과 견해를 범죄시하게 된다. 물론 너무 경멸적인 언사를 쓰지 말라는 것으로 비치지만 극도의 악행에 대해서는 극도의 증오와 경멸을 표현할 필요도 있다. 학살자를 '백정'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사물에 대한 평가는 문화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예술품과 문학작품들은 사물에 대한 평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모든 평가들은 누군가 더 높이 평가받고 싶은 사람에게는 모욕적일 수밖에 없지만 평가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절절한 진심일 수도 있다.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실형을 수년 살았던 홍성담이 박대통령의 신화를 벗겨보려 그린 (박근혜, 유신출산)(원제는 아니나 이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은 누군가에게 모욕적인 만큼 화가에게는 절절한 이야기이다. 이 모든 모욕적 상황에 대해 검찰이 기소하여 징역형으로 위협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일본은 최고 구류 30일이고 독일은 애초에 검찰이 개입하지 않고 사적 기소의 형태로 개인들 간의 재판으로 해결된다.

모욕죄의 원조 국가인 독일은 귀족들의 품위 보호를 위해 모욕죄를 만들었다. 즉 귀족들만이 모욕피해를 주장하며 타인의 말에 대해 고소할 수 있었다. 국가가 사람들을 모욕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발상, 바로 우리를 모두 독일의 귀족들처럼 성역에 넣겠다는 발상은 사실 우리 모두를 감옥에 넣는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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