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8일 화요일

5.18 왜곡방송 파시즘의 전조… 언론은 민주주의의 동지인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5-28일자 기사 '5.18 왜곡방송 파시즘의 전조… 언론은 민주주의의 동지인가?'를 퍼왔습니다.
[박래부 칼럼] 권-언이 한 몸 되는 현실, 자유의 공기가 희박해진다

얼마 전 한 언론학 교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끔 자기 친구나 학생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조선·중앙·동아일보는 강한 보수·수구적 정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방향은 대조적이지만 경향·한겨레신문도 진보·개혁이라는 정파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즉 경향·한겨레도 피장파장으로 정파적 언론이 아닌가, 결국 언론에 정도란 없지 않은가 하는 물음이다. 정파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따로 모인 무리’를 말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먼저 철학자 칸트의 유명한 ‘도덕률’을 떠올려 본다. 언론의 기본철학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생각할수록 경탄으로 마음을 채우는 기쁨이 있으니, 하나는 하늘에 반짝이는 별,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의 도덕률.’

지금 한국 언론은 흔히 진보·개혁 대 보수·수구 언론으로 구분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고유한 성격상 이런 분류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다. 한국 언론에서 진보·개혁과 보수·수구의 문제는 단순한 취향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보도·공정보도라는 언론의 기본철학과 원칙에 부합하는가, 또한 민주주의적 이상에 충실한가를 짚어 보면 자명해질 문제다. 언론은 원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민주언론 대의를 저버린 비민주, 혹은 반민주 언론으로 구분될 수도 있다. 

언론은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공공에 봉사해야

역사적으로 언론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최대의 공로자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의 ‘신문 없는 정부를 택할 것이냐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냐 묻는다면,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라는 말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언론의 기능과 사명을 웅변해 주는 것도 없다. 대중의 신뢰를 바탕으로 언론은 사회에 책임의식을 갖고 공공에 봉사할 사명감을 갖는다. 이 신성한 ‘도덕률’을 지키지 못한다면 언론으로서 존재이유가 없다.  

그러나 많은 한국의 언론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질되고 타락해 있다. 신문은 재벌이 되면서 보수·수구화했고, 정파성으로 이명박 보수정부와 권언유착하면서 종편TV 수혜 등 비민주적 특혜를 누려 왔다. 언론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진실보도와 사회감시, 비판 등 국민의 알 권리와 관련된 저널리즘 기능이며, 다른 하나는 언론사 규모와 이윤 등 미디어산업이라는 측면이다. 이 중 저널리즘을 탄압하고 미디어 산업적 측면만 강조·지원함으로써 업적으로 삼고자 했으나 그마저 실패한 것이 지난 정부의 악의적인 언론정책이었다.


지난 13일 방송된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화면 캡처.

지난 15일 방송된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화면 캡처.

신문이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한가, 아니면 저널리즘은 팽개치고 자사의 산업적 이익에만 충실한가에 따라서 ‘모든 신문이 정파적인가’하는 문제 역시 쉽게 가려질 것이다. 최근에만 해도 수구언론 조선의 TV조선과 동아의 채널A 등 종편TV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헐뜯고 터무니없이 진실을 왜곡하는 저질방송을 내보냈다. 급기야 국민을 분노케 했고, 원로 언론인들까지 나서 그들의 패륜적 행태를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조중동의 보도 행태와 박근혜 새 정부의 정치적 지향을 보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한층 절박해진다. 지난 대선 때 노골적으로 새누리당 편에 섰던 조중동은 최근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경찰수사 문제에 관해서도 ‘내부 갈등’으로 의미를 축소하고 왜곡했다. 많은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KBS MBC YTN 등 공영방송의 경영진은 공정보도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지난 정부 때 언론의 정도를 걸으려다 강제해직된 20명의 언론인도 복직이 안 되고 있다. 

지난 정부 때 변질된 언론정책, 현 정부는 더 우려스럽다 

현 정부의 보훈처는 광주의 5·18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격을 낮춰 부르게 하면서, 기념식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또한 국방부는 천암함 침몰원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극장 상영을 막고 있다. 많은 국민이 아직도 석연찮게 여기고 있는 천암함 침몰은 지난 정부 최대의 의문사건이다. 

사회에서 건강한 여론과 비판이 봉쇄되고 파시즘으로 가는 불길한 징조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착한 권력과 언론이 지난해는 선거의 해였기 때문에 반대여론을 의식해야 했으나, 이제는 여론을 조작하고 통제하기에 적기인 보수 재집권 첫해를 맞고 있는 것이다.

진부한 정의지만 현대는 매스미디어의 시대다. 미디어가 국민 생활과 정치 경제 외교 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언론이 전에는 엘리트나 정당이 하던 정치 의제설정과 정책토론, 검증, 평가 등을 대신하는 까닭이다. 본디 부당한 권력이나 언론은 그 자체가 두려운 존재다. 더욱이 권언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일 때 거기서 뿜어대는 악영향은 가공스러운 것이다. 그런 사회가 도래할 때 국가나 민족이 지니고 있던 순수한 이상이 왜곡될뿐더러, 국민의 민주적이고 성숙한 사유는 숨이 막힌다. 답답할 정도로 자유의 공기가 희박해져 있다.


박래부 새언론포럼 회장 |parkrb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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