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8일 화요일

[사설]속속 드러나는 재벌 탈세 의혹, 국세청은 뭘 했나

이글은 경향신문 2013-05-27일자 사설 '[사설]속속 드러나는 재벌 탈세 의혹, 국세청은 뭘 했나'를 퍼왔습니다.

어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7명의 명단이 추가로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에 의해 공개됐다. 이번주 중 3차 공개가 예정돼 있는 데다 검찰의 CJ 이재현 회장 수사와 맞물려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 이참에 과세당국의 안일한 대응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국세청은 “역외탈세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해놓고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이다. 국세청의 무기력한 모습은 국민들에게 ‘걸린 게 죄’라는 과세 불감증만 키울 뿐이다.

추가 공개로 탈세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한진해운 최은영 회장은 조영민 전 대표와 함께 2008년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세운 것으로 밝혀졌다. 회사는 “3년간 운영했지만 그룹과 무관하다”면서 내역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말 못할 사연이 뭔지 궁금하다. 한화역사 황용득 사장은 서류상 회사를 만든 뒤 해외 부동산 투자로 235만달러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돼있다. 회사 측은 매각대금이라고 주장했으나 돈의 실체는 물론 세금은 냈는지 의문이다.

조세피난처는 탈세 유혹과 무관하지 않다. 위장 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뒤 이를 재투자해 오너 일가의 종잣돈을 불리는 창구 중 하나로 여겨져왔다. 대기업 비자금이 ‘검은머리 외국인’ 행세를 하며 증시를 주물러온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이번에 대기업 계열사 임원들이 포함된 배경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들이 오너 일가의 대리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대기업 24곳이 해외 9개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한 사실도 확인된 바 있다.

탈세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회사 고위층이 직원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해놓고 뒷주머니를 찼다면 영이 서겠는가. 사회지도층이 이럴진대 누구에게 조세정의를 말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합법적인 절세’라는 재계 입장을 받아들이면 조세저항을 부를 수 있다.

국세청은 지난 정부 때도 역외탈세 근절을 약속했다. 이른바 ‘구리왕’ ‘완구왕’ ‘선박왕’ 시리즈를 내놓고 자랑했지만 상당수는 무혐의로 끝났다. 대기업은 해외법인 실적을 포함한 연결재무제표 작성이 의무화돼 있다. 국세청은 이를 갖고 5년마다 정기 세무조사를 한다. 대기업 정보를 손바닥 보듯 들여다볼 유일한 기관이다. 국세청은 명단이 속속 공개됐지만 리스트에 포함된 245명의 실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간 뭘 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차제에 역외탈세는 확실하게 손봐야 한다. 대기업이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 창구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아야 한다. 이를 위해 투자정보를 갖고 있는 미국, 영국, 호주와의 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와 투자정보 교환협정을 맺은 나라는 쿡제도와 마셜제도 두 곳뿐이다. 나머지 국가와도 협정을 통해 탈세 방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세청의 단호한 비리 척결 의지가 중요하다. 언제까지 ‘공갈포만 남발한다’는 비아냥을 들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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