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0일 목요일

탈북 여성 인신매매의 덫, 박근혜니까 풀 수 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30일자 기사 '탈북 여성 인신매매의 덫, 박근혜니까 풀 수 있다'를 퍼왔습니다.
[황재옥의 '북한 인권을 생각한다'] 朴대통령이 중국 가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

한국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탈북자들

라오스에서 붙잡힌 9명의 탈북청소년들의 북송을 우리 정부는 결국 막지 못했다. 한때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탈북청소년들의 북송을 막으려고 노력한다는 말도 있었다. 또 중국도 한·중 정상회담의 모양새를 고려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처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북송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정부로서는 그들의 북송을 막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6월 하순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 정부는 탈북자 문제 해결에 힘을 실었으면 한다. 지금까지의 방식이 아닌 좀 더 적극적이고 진정한 마음을 담아 사지로 내몰린 탈북자들의 생명과 인권을 우리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다. 특히 박근혜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해결할 일이 하나 더 있다.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는 재중 탈북여성들의 인권문제다.

북한 여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와 경로로 북한을 탈출하고 있다. 전체 탈북자의 70% 정도가 여성이다. 그런데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탈북 이후는 물론이고 탈북과정에서부터 인신매매의 대상이 된다. 강을 넘은 상당수의 북한 여성들은 중국 공안에게 잡혀 북송될까 두려워, 불가피하게 중국 남성과 결혼하거나 동거하게 된다. 이 같은 약점 때문에 상당수 북한 여성들은 인신매매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인신매매가 되고 나면 그 순간부터 그들은 노예나 다름없다. 감시·감금 상태에서 혹사당하고 성 노예가 되기도 한다.


▲ 지난 2008년 '비보호' 탈북자의 정착지원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던 한 탈북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농성에 참여한 탈북여성들은 중국이나 타국에서 10년 이상 체류했기 때문에 '비보호대상'으로 지정돼 정착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 탈북민들이 10년이상 제3국에서 거주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체제에 충분히 적응했다고 판단, 보호대상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 ⓒ뉴시스

아이가 생기는 경우 강제로 낙태수술을 받기도 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도 자기가 낳은 아이 때문에 죽지도 못하는 탈북여성도 적지 않다. 일부 탈북여성이 출산한 아이들은 중국 호구(호적)를 취득하기도 하나, 탈북여성이 강제 송환되는 경우 상당수의 아이들은 중국인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기도 한다. 대다수의 탈북여성이 낳은 아이들은 중국 호구가 없어 교육과 의료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수만 명에 달하는 이 같은 탈북 고아 문제가 중요한 인권문제로 국제사회에 제기되고 있다.

성적 학대에 무방비로 노출된 탈북여성, 그 아이들의 처참한 인권상황

중국은 매년 5000명 정도의 탈북자를 북한에 강제 송환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법적 근거는 1960년에 북한과 체결한 '중·북 탈북자 범죄인 상호 인도 협정'과 1986년에 체결한 '국경지역 업무협정'이다. 중국은 1951년 '국제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탈북자 문제에 관해서는 국제협약보다 중ㆍ북간 양자협약을 더 존중하고 있다. 중국은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 식량을 구하러 오는 변경주민(frontier people)만이 있을 뿐 난민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탈북자들에게 난민지위를 인정하라는 한국과 국제사회의 요구를 지금까지 묵살해 왔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탈북자를 지원하는 한국인에게 '국가안전위해죄'를 적용하여 체포, 구금, 고문까지 했다.

북송 인원이 해마다 5000명 선이라면 탈북해서 중국 어딘가에 숨어 있으면서 남한으로 올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는 탈북자는 그 열 배도 넘을 것이다. 운 좋게 북송되지 않고 남한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중 70%가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중 탈북여성들의 숫자도 어림잡아 50,000명 전후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다수의 탈북여성들이 아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는 중국 땅에서 부득불 중국 인신매매단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 여성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탈북과정을 들은 적이 있다. 서울로 들어오기 전까지 5~6차례 다른 인신매매단을 통해 비참한 삶을 전전하다 결국 한국에 들어 온 여성이었다. 그 여성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중국 당국이 탈북여성을 인신매매하는 관련자들을 처벌해 주기 바란다는 당부였다.

불법적인 인신매매에 대한 처벌과 단속이 강화되면 탈북여성에 대한 인신매매가 근절되거나, 최소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중국 정부가 북한과 체결한 협약과는 무관한 문제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면서 이제 G2 반열에까지 오른 중국은 자국 내에서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불법적인 인신매매에 눈감고 있다는 현실을 부끄럽게 알아야 한다.

중국의 탈북자정책 변화 조짐?

2012년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 수는 1500명으로 2011년보다 절반 정도로 감소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접경지역 탈북자 색출이 강화되고 강제 북송이 늘어난 결과일 수도 있겠으나, 그 보다는 중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탈북자 문제 발생원인 자체를 아예 없애거나 줄였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당국은 북·중 접경지역에 대한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

이와 더불어, 중국의 탈북자정책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은 조짐도 있다. 그동안 탈북자문제를 중국과 북한의 내정문제라는 차원에서 다루어 왔던 중국이 최근 들어 한반도 안정과 평화유지, 인도적 차원,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판을 고려해 유연하게 처리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중시하는 요인으로 국제사회여론 50%, 북한의 입장 45%, 그리고 국내여론 5%를 고려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입장 변화는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국제사회 여론을 50%나 반영하여 탈북자 문제를 처리하려는 중국 정부의 입장은 재중 탈북자 인권문제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북한과 중국에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섰지만, 중국 시진핑 주석의 대북정책은 이전 중국의 지도자들과는 좀 다른 것 같다. 기본적으로 북한에 우호적이긴 해도 예전만은 못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실정이 이렇다면, 이번 방중 기간 중에 박근혜대통령이 재중 탈북자들의 인권문제, 특히 재중 탈북여성들의 인권유린 상황에 대해 중국 당국에 문제 제기를 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한국정부,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중국정부에 말을 꺼내야 한다.

박 대통령, 재중 탈북여성들의 인신매매 방지 보장받고 돌아오기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북한 내 인권개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재중 탈북자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신매매 당한 뒤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탈북여성들의 인권과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특히 여성대통령이기 때문에 재중 탈북여성과 그 아이들에 대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면, 좀 더 강한 메시지를 중국에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도 그 메시지를 비중 있게 받아들일 것이다.

물론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중 양국 지도자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긴급하고 주요한 사안은 많다. 북핵문제, 한·중 경제협력, 동북아문제 등 거대담론도 중요하다. 그러나 재중 탈북여성의 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바로 지금이 그들의 인권문제를 거론할 시점인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박근혜 대통령이 제기하지 않으면 그 어떤 대통령에게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에서 어떤 수준에서건 재중 탈북자, 특히 탈북여성들의 인권 침해 방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방중을 통해 재중 탈북자들의 난민지위 인정 문제까지 해결하고 돌아온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중국어로 연설했다고 해서 중국과 좋은 '꽌시'(關係)를 맺었다는 평가보다 더 높고 값진 업적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너무 큰 욕심이라면, 최소한 재중 탈북여성들의 인권유린과 성적 학대의 원인인 인신매매 문제라도 해결했으면 좋겠다. 북중 접경지역 농촌에 숨어 살면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성적학대까지 참아가면서 살아가는 탈북여성들, 그리고 본의 아니게 태어난 그 아이들의 인권까지 보듬어 주길 바란다. 그들을 국내로 데려오는 것은 차후의 문제고 별도의 문제다. 그들에게 우선 인권차원의 응급조치로서 인신매매의 근절을 요구하는 것이다.


/황재옥 (사) 평화협력원 인권ㆍ평화센터 소장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