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0일 목요일

미안해요. 밀양 그리고 할매

이글은 미디어스 2013-05-29일자 기사 '미안해요. 밀양 그리고 할매'를 퍼왔습니다.
[지금 인권하고 계세요?] 탈핵 희망버스를 다녀와

밀양에 대해서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매일 터지는 사고와 사건 사이에서, 근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제대로 풀리지 않는데 밀양에서 벌어지는 사연을 그만큼 알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력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신고리 원전 3호기를 돌리기 위해 한전이 지랄을 하고 있다. 거기에 대해 밀양의 할매, 할배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와중에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 자살하셨다. 마음이 늘 아프다. 여기까지. 솔직히 그랬다. 이치우 어르신 돌아가시고 이계삼 선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송전탑 싸움을 한다는 소식, 재개된 공사를 막느라 할매들 할배들이 또 고생한다는 소식, 하늘로 뜨는 헬기를 맨손으로 잡았다는 이야기를 모두 풍문으로 들었다. 응원했지만 밀양으로 떠나는 탈핵 버스 한번을 타지 못했다.

▲ 밀양 송전탑 사태 현장 (다산인권센터 제공)

그런데 지난 20일 재개된 공사 소식부터 마음의 불안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공사를 막느라 옷을 벗어던진 할매들 사진을 본 후 부터였나 보다. 그들의 앙상한 알몸에서 비명을 들었다. 아니 그러한 비명은 귀로 눈으로 들리거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쾅하고 울리는 소리 같다. 밀양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인터넷에서 몇 줄 읽고, 사진을 보고 동영상을 훑으면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지난 주말 탈핵 희망버스 일행들과 현장에 다녀왔다. 가서라도 죄의식같이 쌓이는 불안을 회피하고 싶었다.
자정 넘어 도착한 숙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새벽 3시면 현장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눈을 붙이라고 한다. 때 모르고 찾아온 여름 감기 덕분에 감기약 기운으로 뒤척이면서도 잠을 잘 수 있었다. 현장들이 깊은 숲 속에 있기 때문에 일행들은 새벽 3시에 한번, 새벽 5시에 한번 차량에 나누어 출발하고 도착했다. 내가 도착한 현장은 단장면 송전탑 89호 현장. 단장면에만 4개의 현장이 있다고 한다. 현장으로 가는 길들은 감탄을 금할 수 없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다. 공사장이 가까워지자 한전에서 써 붙인 현수막이 보인다. 주민들이 저 현수막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싶어졌다.


▲ 밀양 송전탑 사태 현장(다산인권센터 제공)

거대한 포크레인 두 대가 이른 아침햇살에 이미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할매들은 우리보다 훨씬 먼저 포크레인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계셨다. 한전의 공사가 오전 8시쯤이면 시작된다는 말이 오갔다. 할매 한분의 옆에 앉아보았다. 현장 싸움에는 제법 이력도 있으니 오늘 하루 할매들을 지켜주는 일쯤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싸움이 시작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셨는지 할매는 목에 밧줄을 묶기 시작했다. 건너편에 앉아계시던 할매가 그런다. “벌써부터 눈물 흘리면 우얄라꼬 그라노” 아니나 다를까 내 옆 할매가 깊은 주름 사이에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내가 살다가 이런 일을 다 당한다. 왜 이런 일을 당하나 생각하니까 자꾸 눈물이 난다. 이래 당해도 경찰서에서 오라 칸다. 근데 내가 지은 죄가 없으니까 하나도 안 무섭데. 내가 뭐 죄지었나. 나는 이래 쇠덩이를 탕탕 친거빡에 더 있나?”그러면서도 눈물은 그치지가 않는다. “이제 정말 살만하다 싶었다. 내 땅도 사고 농사 잘 지어서 자식새끼들한테 그거 하나 물려주게 됐는데, 근데 이런 일이 생겼다”. 건너편 할매는 “그래서 그 꼴 안볼라꼬 우리 영감 작년에 훅 안가뿥나”. 할매들은 와중에도 와르르 웃음을 웃는다. “오늘 저것들 오면 여기서 구불러 버릴까. 그람 좀 나을라나...”

▲ 밀양 송전탑 사태 현장 (다산인권센터 제공)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이야기 사이에 85호 현장에 사람이 적다고 그쪽으로 가라고 한다. 엉덩이 흙을 툭툭 털고 일어나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한 할매가 그런다. “에고야, 가나. 마음이 든든했는데...”다시 앉아 할매를 꼭 안아주었다. “할머니 내가 진짜 잘싸우는 거 한눈에 알아보시네. 저쪽이 더 위험하다니까 그쪽 가서 잘 막아줄께요. 여기는 괜찮다고 하니까, 그리고 사람들 많으니까 너무 걱정마세요.”아마도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을 것이다. 햇빛 가림막 하나 없이 쏟아지는 밀양의 뜨거운 햇살. 수십년을 묵직히 자라온 나무 밑둥조차 산산히 파헤친 흙먼지만 날리는 공사현장의 마른 바람만 아니었다면 들켜 버렸을 만큼.


85호 현장에는 이미 단단하게 목을 묶은 할매 세분이 포크레인 밑을 지키고 계셨다. 탈핵 희망버스 덕분인지 이미 공사가 시작되었을법한 시간인데, 분위기는 차분하다. 할매들도 목에 묶인 밧줄 따위는 아랑곳없이 수다를 떨고 계신다. 인근에서 온 듯한 사투리를 진하게 쓰는 총각 하나가 할매들의 말벗이 되어 주고 있었다.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이고 감기약 기운에 벗어나지 못한 탓에 현장 바닥에 널부러져 한참을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했다. 몇 시쯤이었을까. 오늘 하루 공사가 없다는 한전의 통보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듣자 마자 할매들은 목에 감았던 밧줄을 훌렁 벗는다. 그리고 일어나, 농성 온 사람들의 점심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상의하러 84호 현장에 다녀오신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 공사가 중단되었다. 아니 이틀째도 떠나지 않은 탈핵 희망버스 사람들이 있어 이틀 동안 공사는 없었다. 그러나 월요일이 되자 공사는 바로 재개 되었다. 들렀던 89호 현장과 85호 현장에도 공사인부들이 들이닥쳤다는 속보를 들었다. 마음이, 무너졌다.


더 이상 밀양은 적당히 아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목에 밧줄을 묶는 순간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옆에 앉기만 해도 든든하다고 말해주던 할매가 있는 곳이다. 자식새끼 밥먹이듯 구부정한 허리를 펴지도 않고 밥챙기는 할매가 있는 곳이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 꽃이 되어 버렸으니,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밀양에 대해 어떤 소식을 담을까 생각하다가 솔직한 마음을 담아야 겠다 생각했다. 밀양이 그랬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내가 살던 곳에서 그렇게 살다가 죽고 싶은 맨몸의 정직한 소리가 있었다. 한전이, 경찰이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비참한 현실과 치열한 무엇을 말하지 않아도, 그곳에는 그냥 우리가 지켜야할 할매들이 있다는 것이 지금 중요하다.


밀양 4개 면에 10개의 현장이 있다. 만약 누군가 단장면 89호 현장의 지킴이, 그곳 주민들과 자매결연이라도 맺어서 되는 만큼 찾아가고, 또 다른 사람들과 찾아가고...그래서 할매들을 보듬어 외롭지 않게, 힘을 보태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도시에서 소모하고 도시에서 누리는 편리와 풍요를 위해 시골 노인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이때, 우리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찾아가면 어떨까. 첩첩 산중에 한전 직원들과 할매들만 남겨 두고 싶지 않다. 밀양에서 부는 바람은 너무 많이 갖고 너무 많이 소비하고 살아온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기만 한 할매들. 할배들을 지켜달라.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할 인간에 대한 예의이며, 도리다.


그렇게 감히 밀양에 대해서, 나는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박진/다산인권센터 활동가  |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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