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일베는 우리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3-05-28일자 기사 '일베는 우리가 만들어낸 괴물이다'를 퍼왔습니다.
[권경우의 문화기계] 자본과 권력에 대한 숭배…청년 세대의 단면일수도

요즘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이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논란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알 만한 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정작 많은 이들이 일베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거나 자칫 건드렸다가 자신도 ‘산업화’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최근 일베를 둘러싼 비판적 논의들을 보면 그러한 심증은 더욱 분명해진다.
일베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걸그룹 ‘시크릿’의 효성이 “우린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는 발언한 사례는 일베가 더 이상 일부 특정집단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10대 청소년이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일베 사이트를 방문한다는 사실은, 그들 세대가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간베스트 저장소 사이트 화면 캡쳐

일베에 대한 비판 혹은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일베와 같은 집단은 상식의 범주를 넘어서는 저열한 수준이기 때문에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인터넷 등장 이후 그러한 집단은 약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항상 존재해왔던 것으로서, 굳이 대응하지 말자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사회적 관심은 오히려 일베라는 존재를 더욱 중요한 것이자 의미 있는 현상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불필요한 대응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건강한 사회적 담론을 위해서라도 더 낫다는 판단이다. 다시 말해, 일베에 대한 관심 자체를 끊음으로써 사회적 논란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자는 의도가 깔려 있는 듯하다.
다른 하나는 일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심각한 수준의 반인륜적, 반사회적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물리적 방법을 통해 일베 사이트 자체에 대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로 진보적인 입장을 갖는 이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데, 최근 5.18 민주화항쟁의 희생자들에게 가했던 폭력에 대해 분노와 비난 여론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일베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던 이들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며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 일베사이트 폐쇄와 같은 구체적인 제재 방법을 가시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러한 두 가지 입장은 일베에 대한 무시 혹은 과잉이라는 대립적 대응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들은 모두 일베 논란의 사회적이고 문화적 의미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일단 일베의 출현은 과거 인터넷 하위문화 혹은 B급문화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갖는다. 일단 온라인공간의 하위문화가 자신들만의 게토를 형성함으로써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점에서 공통적 특성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집단적 세력화를 통해 공적 영역에까지 물리적 힘, 즉 권력을 행사하는 점에 있어서는 분명 일베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위문화나 B급문화는 사적 영역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향유했다면, 일베의 경우에는 공적 영역에서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외부로 과시하는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베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자 집단이다. 
아울러 정치권을 비롯한 일부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일베사이트 폐쇄와 같은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제재는 표현의 자유 문제와 더불어 좀 더 복잡한 맥락을 갖게 된다.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보자면, 그들의 행위는 그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사이트 폐쇄와 같은 직접적인 제재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 동안 진보 진영에서 인터넷 공간과 디지털 문화를 둘러싸고 숱하게 싸워온 표현의 자유 문제와 충돌하는 지점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게시물이나 회원 등에 대한 명예훼손 등 다양한 제재는 가할지언정, 사이트 폐쇄와 같은 방식은 좀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지점에서 일베에 대한 비난과 분노는 특정한 경향을 띠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한 경향성은 일베의 반인륜성과 반사회성 등 도저히 보편적 상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한 집단적 분노이다. 그러한 분노는 한국 현대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이 있는 이라면, 그렇지 않더라도 인간의 보편적 감수성을 공유하는 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향성은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일베를 ‘특정한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를 들면, 극우 보수 세력이라거나 아니면 사회적으로, 세대적으로 많은 것들을 박탈당한, 즉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의 집단적 광기의 표현이라는 반응이 그렇다. 하지만 그들은 갑자기 등장한 이상한 부류이거나 외계인이나 화성인, 아주 특별한 영역에 위치하는 이들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일베’는 지극히 평범한 사회구성원들 가운데 한 사람일 수 있으며, 우리 주변에 함께 살아가는 청년 세대 혹은 청소년 세대의 한 단면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생각에 조금이라도 동의를 한다면, 우리는 일베에 대한 비난과 분노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통계자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5월 20일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기준) 중 ‘니트(NEET)족’이 한국의 경우 19.2%나 되었다. 니트족은 학교, 취업, 직업훈련 등 어느 곳에서 속해 있지 않은(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것을 뜻한다. 이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7위에 해당하는 것이며, 전체 평균은 15.8%였다. 가장 낮은 국가는 룩셈부르크 7.1%이고, 일본(9.9%)이나 미국(16.1%), 영국(15.9%), 독일(12%) 등은 우리보다 낮았다. 5명 가운데 1명은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하거나 유사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자료로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학업을 중단한 초중고교생의 숫자가 7만6489명이라고 한다. 국제노동기구 청년층 기준에 속하는 한국의 고등학생의 경우 2011년 한 해에만 3만8787명이 학교를 떠났으며, 이는 하루 평균 106명에 이르는 숫자이다.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니트족으로 분류된 이들은 어디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것일까?
일베 문제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이고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 다각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관점에서 20대 초반의 청년 세대가 정규 교과목에서 ‘역사’가 사라진 세대라고 한다면, 지금처럼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들은 단순히 그들만의 책임이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이 그렇게 자라도록 방치한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누군가는 노무현이나 문재인을 지지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지지할 것이다. 전자를 지지하는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부각시키며 인권과 민주주의 등 보편적이고 진보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쪽에 자신의 정체성을 위치시킨다. 그들은 자신의 좌표를 통해 남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 살아간다. 예를 들어 ‘광주’를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486 세대’는 청년 세대를 무시하거나 조롱하면서 자신들의 보편적 감수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들의 실제 삶은 어떠한지, 나아가 현재 한국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핵심은 바로 그들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그들이 자랑하는 좌표는 자신이 극우보수가 아니고, 또라이가 아니고, ‘일베충’이 아니라는 것 외에 과연 무엇을 드러낼 수 있을까? 


▲ 민주당 강기정, 진성준, 최민희 의원이 지난 22일 518 왜곡보도와 관련해 TV조선을 항의 방문했다. ⓒ뉴스1

일베의 중요한 특징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비하하고 공격한다는 점이다. 그 반대편에는 힘(권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이 자리잡고 있다. 박정희를 중심으로 전두환, 이명박에 대한 찬양은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그들은 보수가 아니다. 최근 조갑제에 대한 ‘디스’는 바로 그들이 어떤 정서를 지니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이러한 부분을 인정한다면 일베의 욕망은 실상 오늘날 한국사회가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추구하는 욕망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자본과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숭배이다. 일베가 하는 행태를 가리켜 손가락질 하면서 ‘일베충은 인간이 아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제주도 강정에서, 쌍용자동차 농성장에서, 혜화동 종탑을 비롯한 여러 철탑 위에서,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생명에 대한 무관심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일베와 다르다, 나는 일베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일베와 구별짓고 싶은 우리의 욕망에 불과하다. 이제 일베에 대한 비난과 분노는 고스란히 나 혹은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로 돌아와야 한다. 일베는 우리가 낳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문화기계; 문화는 모든 사회적인 것들이 작동하는 기계이다. 문화와 문화 아닌 것들 사이에서 각각의 영역이 어떻게 만나고 구분되는지 살피는 작업을 하고 있다_권경우(nomad70@daum.net)


권경우/문화평론가  |  nomad7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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