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1일 금요일

박원순, 더 나은 서울을 위한 ‘인큐베이팅’

이글은 미디어스 2013-05-30일자 기사 '박원순, 더 나은 서울을 위한 ‘인큐베이팅’'을 퍼왔습니다.
[박원순, 서울시 그리고 정치②] 마을만들기 지원센터, 청년허브를 가다

편집자주=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10월 보궐선거를 통해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취임 1주년도 훌쩍 지났고, 지금 특별히 박원순 서울시장을 주목해야 하는 특별한 계기적 사건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바로 지금이 아니면 그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치가 시들할 때나 비로소 행정을 말할 수 있는 것이 한국적 상황의 특수성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정치가 뜨거워질수록 박원순에 대한 관심은 진영에 따라 확연히 갈릴 것이다. 지방자치제도 도입 이후 한국 정치에서 서울시장은 언제나 그런 자리였고, 특히나 야권이 지리멸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서 박원순 시장의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은 벌써부터 감지된다. 그를 '종북좌파'라고 몰아세우며,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는 국정원의 문건은 그에 대한 반대 진영의 긴장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더 큰 정치적 소용돌이가 닥치기 전에 차분하게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보와 그의 시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변화의 양상들을 주목하고 의미를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이게도 아직 설왕설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정치인 박원순의 체급을 가장 정확히 계량해볼 수 있는 과정일수도 있겠단 생각이다. 앞으로 총 4회에 걸쳐 행정가로서의 박원순 서울시장과 그의 시정을 짚고 이를 통해 정치인 박원순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고자 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직 낯선 정치인 박원순을 탐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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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서울시장이 '예산절감'을 주제로 현장시장실 운영에 들어간 13일 오전 서울시청 예산낭비신고센터를 찾아 방문한 시민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뉴스1

지난 10년 간 서울시의 역사는 토건의 역사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강북 뉴타운 개발을 추진하고 청계천 일대를 갈아엎는 등 토건 사업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이에 더해 ‘디자인서울’이라는 기치를 내걸며 서울시를 ‘아름답게’ 치장하는 데 주력했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실적을 내는 것을 목표로 삼던 전임 시장들과 달리,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력 사업인 ‘서울 혁신’ 사업은 단번에 눈에 띄지는 않는다. 그러나 혁신 사업의 모양새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서울의 ‘외관’에서 눈을 돌려 ‘내실’을 튼튼하게 다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혁신 사업과 관련된 주요 기관으로는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이하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와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이하 ‘청년허브’), 서울시 사회적경제 지원센터 등이 있다. 이들은 서울시의 산하 기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서울시 공무원들과 주민 사이의 의사소통을 번역·조율하는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 만들기 사업, 핵심은 ‘자치 참여율’ 제고

‘마을 만들기’ 사업의 핵심은 지역 주민의 자치 참여율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주민들이 지역 내에서 축제와 교육 등을 통해 교류하다 보면 우울증, 자살 등의 사회 문제가 해소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박 시장의 구상이다. 이는 단순히 박 시장만의 구상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의 심화 이후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는 세계 도처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네트워크로서 '마을'을 다시 주목하고 있는 조류와도 맞물려 있는 철학적 접근이다. 여기에 박 시장은 진정한 마을 그리고 주민의 꾸준한 네트워크를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치’가 중요하단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의 하경환 마을지원실장은 “박원순 시장 이전부터 ‘마을 만들기’의 논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마을’이 하나의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고, 행정도 다른 뚜렷한 방법론을 찾지 못한다는 한계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박 시장 취임 이전에 이미 마포구에는 ‘성미산 마을’이, 강북구에는 ‘삼각산 마을’이 있었다. 이는 공동육아협동조합을 모태로 만들어진 마을 공동체였다.
박원순 시장은 여기에 자치의 '거버넌스' 개념을 추가해 지난해 8월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를 출범시켰다.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의 역할은 기존의 주민자치센터와 같이 단순히 예산을 들여 지역 주민들에게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치구 내의 마을 거버넌스 형성을 지원하고 이를 위한 마을 활동가를 양성함으로써 마을 공동체 전체의 ‘인프라’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는 특정 건물을 위탁하거나 활용해 주민들의 자치 활동 공간을 마련하는 전통적 방식의 행정을 넘어 마을 공동체 구축을 원하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이를 컨설팅할 수 있는 전문가를 보내고,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사업을 시행하고 이러한 사업에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홍보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의 하경환 마을지원실장.ⓒ미디어스

서울시의 마을 만들기 사업은 마을 자치를 주도하는 ‘사람’과 ‘인프라’를 남기면 박원순 시장의 재임 여부와 관계없이 마을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하경환 실장은 “박원순 시장도 센터가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민간의 자발성 있는 자립이 목표라는 것은 센터, 서울시, 민간 활동가들도 다 같은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어려움이 만만치 않다. 인프라 구축이 결코 쉽지 않을뿐더러, 단기간 내에 결과물을 확인할 수도 없다는 점도 고민꺼리다. 하경환 실장은 “우리(지원센터)는 사람을 키우는 게 일이라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 쉽지 않다”며 “시의회에서 서울시 성과담당관이 성과를 숫자로 계산했는데, 그것으로는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센터의 입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경환 실장은 “마을공동체의 정의는 자기의 필요를 자기 공간에서 해결하는 것”이라며 “분야별 공동체사업 공모를 통해 지역에서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 해결 방안을 꾸며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고 전했다. 마을 주요 인력인 20대 후반에서 3~40대 후반 주부들이 만든 공동육아 커뮤니티, 자영업자들의 상가마을공동체, 예술가들이 만드는 게 문화예술창작소 등이 대표적인 예다.

“청년들이 꿈 펼칠 ‘완충지대’ 필요하다”

청년허브 사업의 핵심 또한 마을 만들기 사업과 마찬가지로 ‘주체성’에 있다. 창업을 독려하고 허울뿐인 행정인턴제도를 운영해 겉으로 보이는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구직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꿈을 펼칠 수 없는 청년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판’을 깔아 주는 것이 청년허브 사업의 의의다.


▲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구 국립보건원 부지에 위치한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 내부의 정경은 조용한 북카페를 연상케 한다. 노트북을 올려놓고 작업을 하는 사람,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놓인 탁자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미디어스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가 위치한 옛 국립보건원 부지 건물 1층은 그 외관부터 남다르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청년허브 내부는 각종 폐자재를 사용해 깔끔하게 꾸며졌다. 방문자로 하여금 시청 산하 기관이 아닌 삼청동이나 가로수길 언저리의 카페에 들어선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지만, 책꽂이 너머 보이는 사무 공간의 모습은 이곳이 취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보금자리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한다.
유리 칸막이로 나뉜 사무 공간은 사전 신청을 거쳐 최종 선정된 청년들의 모임에 제공된다. 여러 사람이 모여 무엇인가를 도모할 수 있는 장소가 제공된다는 것은 보증금과 월세를 비롯한 유지비를 감당하기 버거운 청년들에게 커다란 이점이 된다.
청년허브는 이에 더해 커뮤니티를 통해 캠페인 등을 진행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소액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커뮤니티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활동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두 달 가량 객관화하고 정리해보는 ‘작은연구사업’, 개인과 단체의 리서치를 지원하는 사업, 청년들이 단체 등과 협약을 맺어 새로운 일의 모델을 발굴하는 ‘워킹그룹사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단체, 회사 등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선발해 관심 있는 청년들을 ‘매칭’하는 새로운 방식의 공공근로사업도 구상 중이다.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의 전효관 센터장은 “한국에는 도전과 실험의 환경이 없다. 창업을 하고자 하는 개인이 시장에서 살아남으라고 하는 구조를 가지고는 안 된다”며 “공공에서 개인에게 가는 위험을 분담하고,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하고, 청년들이 새로운 생각을 실험해보는 것을 활성화하는 것이 서울시에서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 센터장은 “공공영역에서 광장 같은 완충지대를 만들어 청년들이 논의하고 발표하고 뜻 맞는 사람을 찾는 생태계 하나를 중간에 두는 게 좋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의 전효관 센터장.ⓒ미디어스

‘양보다 질’? ‘박원순 시정’이 상징하는 패러다임의 변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마을 공동체’ 논의를 전 자치구로 확장하고자 하는 박 시장의 구상에 따라 만들어졌다. 청년일자리허브는 취업난을 해소할 수 있는 새 창구가 필요하다는 청년들의 요구에 대한 피드백 차원에서 마련되었다.
박원순 시장이 위와 같은 사업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시민들이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눈을 돌리기 시작하는 경향과 맥을 같이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747 공약’이 상징하는 경제 성장의 논리는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경제민주화’ 의제로 전환되었다. 양적 팽창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수요가 충분히 증명된 셈이다. 박 시장은 이를 놓치지 않고 서울시민 개개인의 삶의 ‘디테일’을 공략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박 시장은 사업의 대상이 되는 지역 주민들과 청년들을 결코 대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업 대상자들이 주체적으로 사업에 참여할 것을 강조한다. 박 시장의 실험적인 시정이 성공할 경우, 사업을 통해 양성된 자발적인 주체들을 통해 민주주의가 한층 진보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칠 수도 있다.


윤다정 기자  |  songbird@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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