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2일 목요일

세비 반납? 해외 시찰부터 줄여라


이글은 시사인 2012-07-12일자 기사 '세비 반납? 해외 시찰부터 줄여라'를 퍼왔습니다.
새누리당이 무노동 무임금 운운하며 6월 세비를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그 정도론 안 된다. 효용성 없는 해외 시찰 특권 등을 폐지한 후에야 달라졌다는 평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새누리당이 달라졌다고 한다. 지난 총선 때부터 기득권의 이미지를 벗으려 발버둥치더니, 급기야 얼마 전에는 의원총회를 열어 관행적으로 받아오던 6월 세비를 전액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덕분에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몹쓸 소리를 오랜만에 다시 들었다. 이 결정을 잘했다며 박수치는 사람도 있지만 이건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것이다. 법을 만드는 자들이 무노동 무임금을 따르겠다니 앞으로 한국사회에 일하지 ‘못하는’(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밥 먹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심지어 지난 18대 국회는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행위도 경범죄로 처벌하도록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노동 무임금을 환영하고 있으니, 요샛말로 이게 사는 건가.

어쨌거나 새누리당 의원들이 각자 한 달치 세비 1000만원 정도를 반납하겠다는 건데, 라는 프로그램만큼 달라지려면 그 정도론 안 된다.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은 그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매달 차량유지비, 통신요금, 입법·정책개발비 따위 명목으로 670만원 정도의 활동지원비를 받는다. 그리고 철도와 선박, 비행기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1년에 ‘두 차례나’ 해외 시찰을 떠난다. 이런 특권을 포기하거나 조정한 뒤에나 정말 달라졌다는 평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다른 특권들보다도 나는 해외 시찰이 폐지되면 좋겠다(지방의원들도 1년에 한 번 나간다). 국회의원의 해외 시찰은 관광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계속 받아왔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 특권이 폐지되지 않는 건 나름의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가 모범적이고 좋은 사례를 직접 보고 들으면 꿀꿀한 한국 정치가 좀 바뀌지 않을까라는 명분 말이다.

 
ⓒ난나 http://www.nannarart.com/sisain.html ( '까칠거칠 삽화를 구매하고 싶으면 클릭하세요')

그런데 나는 그런 명분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년 ‘혁신 사례’ ‘모범 사례’들을 시찰하러 정치인과 공무원이 해외로 나간다. 그래서 참여예산제로 유명한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나 무슨 무슨 마을 만들기로 유명한 일본의 도시들, 협동조합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볼로냐 등에 가면 방명록에서 한글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때로는 그 도시의 담당자들이 일을 할 수가 없으니 더 이상 한국에서 안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렇게 수없이 나갔건만 나는 그런 사례가 국내에서 제대로 실험되고 뿌리를 내렸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 없다.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없으면 껍데기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런 사례들은 ‘위로부터’ 만들어진 기획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래로부터 시민과 함께 변화를 일군 해외 사례들조차도 국내에서는 위로부터 기획된다. 이건 ‘시찰’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정치인들은 제도나 정책의 원래 정신이나 목적을 빼고 껍데기만 빌려온다. 위에서 자원과 사람을 일방적으로 동원하는 기획은 제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시민의 능동성을 가로막는다. 

정 필요하다면 의원 개인이나 여러 의원들이 힘을 모아 해외 탐방을 준비할 수 있고, 보조가 필요하다면 기획서를 검토해서 정부가 지원하면 된다. 그리고 국비를 지원받는 여느 단체처럼 까다로운 영수증 처리와 꼼꼼한 보고서 제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매년 예산을 세워 ‘무조건’ 국회의원을 해외로 보내줄 이유와 여유는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혁신 사례나 모범 사례를 만들고 싶다면 해외에 나가는 것보다 그 시간과 돈을 들여 자기 지역구 시민들과 어울려보라. 선거 때만 얼굴을 들이밀지 말고. 그렇게 지내다보면 지역과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무엇을 해야 할지가 드러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이다.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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