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2-07-09일자 사설 '[사설]대법관 공석보다 ‘무자격’ 대법관이 더 큰 불행이다'를 퍼왔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최근 역사에 남을 판결을 내렸다. 전 국민의 건강보험 의무가입을 규정한 건강보험개혁법을 합헌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 판결에 따라 수천만명의 미국인이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 나라의 최고법원이 어떠한 사명을 띠는지, 시민들의 삶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한국 대법원은 미국과 달리 헌법재판 기능이 없다. 그러나 수많은 민·형사 사건이 상고심까지 올라가는 점만으로도 대법원의 역할은 중요하다. 대법원은 이들 사건에 대한 판단을 통해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신임 대법관 후보자들의 잇단 자질 시비를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달 대법관 후보자 4명의 임명을 제청할 때 보수·남성·판검사 일색의 인선을 비판한 바 있다. 그런데 다양성 실종에 보태 개별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들까지 줄줄이 제기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장애인인 김신 후보자는 소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인선으로 주목받았으나 종교 편향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교회 내 분쟁으로 제기된 민사재판에서 원고와 피고에게 ‘화해를 위한 기도’를 요구하고, 교회 부목사 사택에 대한 과세와 관련한 소송에서 대법원 판례를 무시하고 교회 쪽 손을 들어줬다고 한다. 또 수만명이 희생된 인도 지진을 두고 “하나님의 경고”라는 취지의 글을 쓰는가 하면, 기독인모임에서 부산을 ‘성시화(聖市化)’하자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병화 후보자는 아들이 법원 공익근무요원으로 선발되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결원 1명을 메우는 추가모집에 선착순 1번으로 신청해 뽑혔기 때문이다. 병무청이 결원을 채우려면 1주일 전쯤 홈페이지에 공고하는 게 일반적인데, 김 후보자 아들이 신청에 성공한 추가모집은 당일에야 공고됐다고 한다. 김 후보자에 대해선 위장전입과 농지법 위반 의혹도 제기된 상태이다. 고영한·김창석 후보자의 경우 재벌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 전력으로 인해 경제민주화 흐름에 역행하는 인선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법관 후보자 4명은 오늘부터 나흘간 차례로 국회 인사청문회에 선다. 국회는 이들의 자질과 도덕성을 철저히 검증해 문제가 있으면 과감히 탈락시켜야 할 것이다. 대법관 공석 사태의 장기화는 불행한 일이지만 ‘무자격’ 대법관 임명은 더 큰 불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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