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프레시안 2012-07-04일자 기사 '건강보험 체제에 구멍 낸 대법원, 뒷감당 어찌하려고…'를 퍼왔습니다.
[기고] 임의비급여 예외적 인정,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무너지나?
대법원은 지난달 19일 전원합의체 판결로 기존 대법원 판결을 변경하여 임의비급여를 예외적으로 인정하였다. 대한
민국 행정부인 보건복지부와 입법부인 국회가 인정하지 않는 임의비급여를 대법원이 사법적으로 엄격한 요건(의료기관이 △의학적 긴급성, 의학적 안전성 및 유효성 △충분한 설명 후 환자로부터 동의를 받은 것을 모두 입증할 것)하에 예외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관련 기사 : '고무줄 병원비', 대법원 심판대에 올랐다 , 그 백혈병 환자는 왜 진료비 1900만원을 더 내야 했나?)
사법부는 왜 이 시점에 전원합의체로 임의비급여를 예외적으로 허용했을까?
지금까지 의료기관이 임의비급여를 시행한 경우 보건복지부는 현지조사를 통하여 진료비 환수처분 및 업무정지처분(또는 과징금부과처분)을 하였고, 의료기관이 이에 불복하는 경우 행정소송을 통하여 권리구제를 받았다. 지금까지 하급심 및 대법원이 임의비급여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의료기관은 거의 대부분 패소를 하였다. 그러나 이번 성모병원 임의비급여 사건의 경우 하급심에서부터 엄격한 요건 하에 임의비급여를 인정해 왔고, 대법원 역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예외적 요건 하에 임의비급여를 인정하였다.

▲ 대법원은 지난달 19일 여의도성모병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일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여의도성모병원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에 대해서 환자들에게 비급여로 청구한 것은 명백히 불법이지만, '의학적 임의비급여'는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게 판결의 요지다. 사진은 여의도 성모병원. ⓒ한국백혈병환우회
대법원은 그동안 임의비급여에 대해서는 초지일관 불법으로 판단해 왔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사법부로 하여금 임의비급여를 허용하게 했는가, 사법부는 왜 이 시점에 전원합의체 판결로 임의비급여를 예외적으로라도 인정하였는가. 이것이 대한민국 건강보험체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한 것이 맞는가. 임의비급여에 관한 제도적 인정으로 의료기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 보건복지부는 이제 사법부가 이 제도를 인정하였으니, 정부 차원에서 임의비급여를 전면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아닌가. 의료선진화든 의료민영화든 이것이 향후 건강보험체계에 몰고 올 위험성을 생각하면 희망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보건복지부가 임의비급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이라는 큰 틀에서요양급여기준을 정해 급여/비급여로 구분함으로써 건강보험이라는 공보험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정치적 결단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의료기관과 환자 사이에 자유계약에 의하여 의료행위에 대한 가격을 정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에 위반되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강보험제도는 적은 보험료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 아주 성공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 당연지정이라는 큰 틀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이라는 큰 둑에 난 '임의비급여'라는 구멍
그런데 이번 대법원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이라는 큰 둑에 '임의비급여'라는 구멍을 내 주었다는 느낌이 든다. 당장은 엄격 입증책임이라는 주먹으로 둑에 난 구멍을 막고 있지만, 긴급성, 유효성, 안정성, 환자동의에 관한 입증은 재판부의 시각이나 입증의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뚫릴 수 있다. 둑에 난 작은 구멍은 처음에는 작은 물줄기로 시작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을 압박하고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부분들이 같이 무너지면 어느 날 거대한 둑은 와르르 무너지기 마련이다. 엄격 입증책임만으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이라는 거대한 둑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와 보건복지부 양쪽 모두 대법원 판결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 의료계는 "대법원이 임의비급여를 인정했다"고 평가하고, 보건복지부는 "엄격 입증책임이라는 방패막을 두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의료기관이 임의비급여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홍보한다. 의료기관은 "앞으로 더욱 열심히 환자들을 양심적으로 진료하겠다"고 밝혔고, 보건복지부는 "현지조사를 통해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을 벗어나면 해당 의료기관의 진료비를 환수하고 업무정지처분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몇 번의 하급심 행정소송에서 위 예외적 요건이 입증되어 보건복지부가 계속 패소한다면 어떨까. 보건복지부는 행정처분에 소극적으로 변할 것이고, 의료기관은 더욱 더 적극적으로 가격계약에 의한 임의비급여 진료를 할 것이다.
임의비급여 허용은 건강보험보다 민간보험 시장 확대
정부 관계자들과 의료계 종사자들, 대법관들 모두 불철주야 격무에 시달려 고생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현재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후손들에게 어떤 법과 제도를 물려주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미국식 제도가 다 좋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험을 도입한 지 몇 십 년이 되지 않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잘 정착시켜온 건강보험제도를 임의비급여 의 문제로 체계 자체를 흔드는 그런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신속한 입법을 통해 임의비급여 무한정 확대 막자
이제 건강보험이라는 거대한 둑에 난 임의비급여라는 구멍을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재판부의 입증책임이라는 추상적인 기준만 남아 있다. 입증책임이란 주요사실을 주장하는 자가 증거를 제출하여 재판부의 심증을 형성하지 못하면, 입증하지 못하는 자가 패소하는 소송법의 대원칙이다. 대부분의 소송이 입증을 하지 못하여 패소하는 것이 현실인 점에 비추어, 보건복지부의 낙관론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입증책임을 어느 정도로 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재판을 맡은 판사의 성향과 입증의 정도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입증책임이라는 것에 임의비급여의 운명을 맡기지 말고 임의비급여가 무한정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신속히 입법을 통한 제도 보완을 해야 할 것이다. 임의비급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건강권이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도 감수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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