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5일 일요일

누가 ‘종북’인가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07-09일자 기사 '누가 ‘종북’인가'를 퍼왔습니다.

7월호를 마감하는 날 조간신문을 펼쳐보니 농민집회에 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봉변을 당했다는 소식이 대문짝만한 사진과 함께 실렸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따르면, 한 '농민'이 이 의원의 옷을 잡고 "애국가를 부정하는 빨갱이"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같은 날 (한겨레)에는 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의 간담회 기사가 눈에 띄었다. 손 고문은 대선 출마의 변으로, 빨갱이가 된 아들을 걱정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병중에도 "손학규는 좋은 사람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는 죽은 친구(고 김근태)를 회고했다고 한다. 그가 그 얘기를 할 때 "좌중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고 기자는 분위기를 전했다.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돌아보면, 1990년대까지의 권력투쟁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자본 세력 대 민주화를 요구하는 노동·학생 세력이 대척점을 이뤘다. 이후 제도적 민주화와 여야 간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진보세력의 여러 갈래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정치에 합류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의회 진출에도 성공했다. 사회주의 이념 노선을 고수한 이른바 '과학적 사회변혁운동' 그룹도 합법 정당(민주노동당)을 만들어 국회에 들어왔다. 20년 안에 집권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상전벽해였다. 이렇게 하나둘 '혁명의 길'에서 자유주의적 대의민주주의 투쟁 노선에 합류했다. 노무현 집권 때는 이른바 386세대로 불리는 '광주의 아이들'이 정치 전면에 나왔다. 젊은 정략가들이 노회한 기존 '꾼'들과 눈을 부릅뜨며 맞서기도 했다. 정계는 이들의 등장으로 여야 할 것 없이 이념과 정책의 스펙트럼이 좀 젊어지고 신선해지고 다양해졌다. 정치권력 내부의 투쟁과 잡음은 상대적으로 더 격렬하고 냉혹해졌지만, 국민의 처지에서 보면 정치는 한결 더 국민의 삶 쪽에 가까이 다가왔다.
'종북주의자' 이석기의 의회 진출은 1990년대 들어 본격화된 이념적 학생운동 출신들의 마지막 정계 이전 과정이라고 본다. 4·19혁명 이후 혁신그룹의 사회주의적 성향, 1970년대 민주화운동권의 자유주의적 경향, 고 김근태와 김문수·이재오 그룹의 이념적 경향, 386세대의 통일 또는 노동 지상주의적 경향 등이 차례로 정치권에 들어왔다. 386 속엔 민족해방(NL) 계열도 있고, 민중민주(PD) 계열도 있다. 주사파도 있다. 주사는 당시에도 시대착오란 소리를 들었지만, 문제는 주사가 유입될 수 있던 1980년대 정치 자체가 더 시대착오적이었다는데 있다.
의원 선출 과정에서 부정 의혹을 받고 있는 이 의원을 감싸고 돌 생각은 추호도 없다. 주사파들이 몰려온다고 호들갑을 떨어대는 사람들을 무조건 매도할 것도 아니다. 재야 진보운동가들이 현실정치로 진출할 때마다 보수언론들은 '빨갱이인지 아닌지 검증해봐야 한다'고 떠들어댔으니 말이다. 이석기나 임수경뿐만 아니라 보수의 아성 새누리당의 대통령 경선 후보인 김문수· 이재오도 그때는 다 '빨갱이'였다. 과거의 파시즘적 관점에 의지한 '빨갱이론'은 저급한 매카시즘의 아류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 현실정치를 이나마 발전시켜온 것은 매카시즘이 아니라, 진보와 변혁의 관점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주사의 세례를 받은 세대가 20여 년이 지나 자신의 경험과 연륜에 맞춰 하나둘 현실정치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일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막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우리에겐 진보·보수의 치열한 상호감시 체계가 있고, '전가의 보도'인 국가보안법도 있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쓰면 된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바라는 국민 다수의 처지에서 보면, 합법 공간에 들어와 법의 규율 아래 의회운동을 하겠다는 운동가들을 억지로 가로막고 빨갱이 딱지를 붙여 다시 지하로 내모는 것이야말로 '종북'이다.

이인우 편집장 editor@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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