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5-09일자 기사 '무개념 단세포 정치에 이를 간다'를 퍼왔습니다.
개념 실종 민주당을 어이하리

개념 실종 민주당을 어이하리

▲ 사진출처: 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20507000159
지난 4월30일 ‘정년연장법’ 혹은 ‘60살 정년 의무화법’으로 불리는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동시에 공기업 신규 채용 시 29살 이하 청년을 정원의 3% 이상 고용하도록 의무화한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이 법에 의해 졸지에 고용상 연령차별을 당하게 된 30대 취업준비생들은 인터넷에서 차라리 죽여달라며 방성대곡(放聲大哭)했다. 그러나 청년 고용에 대한 악영향이 훨씬 큰 ‘정년연장법’은 의외로 후폭풍이 미미했다. 아마도 ‘100살 시대의 도래’, ‘선진국의 정년연장 추세’와 정년이 65~60살인 전문직(교수·교사·공무원)과 차이, 적용 시기가 2016년부터인 점 등이 작용한 모양이다. 그러나 한국 특유의 고용임금 체계를 직시한다면 이 법이야말로 방성대곡감이다. ‘좋은 게 좋다’고 그렇게 조용히 통과 시킬 법이 결코 아니다.
한국의 고용임금 체계는 노동의 질(생산성)이 아니라, 근무 연수, 기업 능력, 노조의 교섭력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2012년)’의 중등 교사 임금 체계를 보면, 한국은 초임 대비 37년차 최고 임금이 2.78배다. 정년까지 계속 임금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 모범국으로 회자되는 덴마크는 1.16배(8년차에 최고 임금에 도달한다), 핀란드 1.37배(20년차에 최고 임금 도달한다), 스웨덴 1.33배, 독일 1.34배, 미국 1.5배, 프랑스 1.89배, 일본 2.22배, OECD평균은 1.60배다. 혹시 초임이 너무 낮아서 한국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도 아니다. 구매력 기준 한국 교사의 초임26,670달러는 일본(25,454달러) 보다 높고, 프랑스(27,184달러) 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37년차 최고 임금(74,043달러)은 룩셈부르크, 스위스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다. 참고로 미국은 55,259달러, 일본 56,543달러, 프랑스 51,301달러, 독일 68,592달러 보다 높다.
교사가 유독 문제라는 얘기가 아니다. 정년연장법의 확실한 수혜자인 공공부문과 대기업 생산직들은 기업의 수익성과 노조의 교섭력에 힘입어, 대체로 하는 일이나 한국의 평균 생산력 수준(1인당 GDP)에 비해 임금이 높은데, 설상가상으로 (성과/능력 보다는 생애주기상의 필요를 중시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에 의해 58~59살 정년자들의 임금은 특별히 더 높은 만큼, 정년을 연장한다면 이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기업은 원래 정년까지 계속 노동생산성이 올라간다면 법이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년을 연장한다. 이 경우는 정년 연장이 기업 능력을 강화하기에 청년 고용에도 보탬이 된다. 노동생산성과 임금이 긴밀히 연동만 되어도 정년 연장은 어렵지 않다. 고용유연성이 높고, 노동생산성과 임금을 긴밀히 연동된 미국 등에서는 법적 정년 자체가 없는 이유다.
한국은 ‘슈퍼갑’(공무원 및 공기업)이나 ‘갑’(원청대기업)의 일원이 되면 노동생산성과 상관없이 연공서열과 단체교섭에 의해 임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그 결과가 현대기아차 한국 공장과 미국 공장 사이의 엄청난 임금 격차다. 전자의 평균임금은 한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3~4배지만, 후자는 미국 1인당 국내총생산의 1배다.
반면에 ‘을’이나 ‘병’ ‘정’이 되면, 피골이 상접한 소작인이나 천민 신세가 된다. 60살은 커녕 58살 정년조차도 아득하다. 물론 노동의 질이 낮아서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정부와 시장을 지배하는 10% ‘갑’들은 노동의 질에 따른 공평한 처우 체계(직무직능급제)로 가는 통로인 임금피크제에 대한 합의가 흐릿한 ‘정년연장법’일지라도, 청년 고용을 줄이지 않을 수도 있다. 고용할당이든 정년연장이든, 외주・분사화 하기 힘든 일부 공정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든 하라고 하면 못할 것도 없다. 국민(세금)이나 소비자 혹은 협력업체의 고혈을 빨아서 부담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90% ‘을’들이다. 여기서는 ‘갑’에서나 의미가 있는 ‘60살 정년 의무화법’과 ‘3% 청년고용 의무화법’이 오히려 ‘사오정’(45살 정년) 확산법이자, 청년 고용 배제법으로 된다. 갑과 을, 공공과 민간, 기득권과 비기득권으로 대별되는 신계급사회 강화법이자, 청년 기회・희망 압살법으로 된다. 산업・기업 생태계의 특성상 ‘갑’의 부담을 오롯히 전가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풍선효과가 확실한 사안들을 무슨 ‘의무화법’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을 끊임없이 내놓는 한국 정치는 마치 방 안에서 진짜 총과 칼을 갖고 노는 어린 아이와 같은 느낌을 준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얼마나 파괴적인 일인지도 모르고 주관적 선라는 총칼을 휘둘러대니.......
응당 있어야 할 사회적 논쟁(격론)을 건너 뛰고, 여야 합의로 조용히 통과시킨 정년연장법 처리 과정과 미미한 후폭풍은 한국의 여론·담론 형성·전파자들(교수·언론사·연구기관 등)의 저열한 안목과 공적 책임의식 수준을 보여 준 것처럼 보인다. 이들 다수는 10% ‘갑’의 노동권 강화가 모든 노동에게 좋다는 이데올로기적 사기에 넘어간 것이 분명하다. 교수·공무원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서 방관하고, 50대 초·중반의 언론사 실력자들은 자신이 수혜자라서 쾌재를 부른 것처럼 보인다.
정년연장법 처리 전후 과정은 우리 사회로 하여금, 정치적, 정책적 지식・지혜 생산, 축적, 확산 메카니즘과 정치리더십 선발・훈련 메카니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만든다.
정치학의 대가로 불리는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정치는 권위・권력적 수단(계획, 규제, 폭력, 조세재정, 이데올로기, 선동, 자리 등)에 의해 유한한 가치 혹은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 배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진 권위・권력적 수단과 행위의 일파만파 영향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또한 제대로 된 정치를 하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 예컨대 현세대-미래세대(연금, 재정적자 등), 노인 및 중장년세대-청년세대,
자본(권)-노동(권), 갑(원청)-을(하청), 육체노동-지식노동, 공급자-소비자, 수도권-지방, 수출산업-내수산업, 첨단산업-전통산업, 제조업-서비스업, 고졸자-대졸자(고등교육 재정), 군미필자-군필자(군가산점), 여성-남성 등 처지,조건,요구가 천차만별인 수많은 인간 집단의 이해와 요구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공무원, 교사의 고용임금체계, 복리후생과 연금 수준 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모든 지식은 우리 사회가 어디쯤 있고(역사적 국면, 국민의 삶), 어디로 가야 할지(비전, 전략)를 감잡기 위한 기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정치적 지식・지혜는 한 개인이 쌓을 수 없고, 일조일석에 (벼락치기로) 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업인, 교수, 변호사, 의사, 앵커 등으로 부와 명성을 좀 축적하다가 어느 순간 픽업 되어 뱃지를 다는 방식으로는 무개념 단세포 정치를 벗어 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잘 해야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를 배타적으로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족 의원’이 될 뿐이다. 여성족, 환경족, 복지족, 조직노동족, 의료족, 토건족, 금융족, 검찰족, 국방족 등. 이들은 대체로 ‘10% 갑’의 대변자거나 관료마피아의 대변자가 된다. 자신이 지역구 대표인지 국민 대표인지 헷갈리며, 자신의 지역구로 더 많은 가치를 끌어가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의원이 된다. 가장 나쁜 경우는 노동 vs 자본, 민족 vs 외세, 선 vs 악이라는 허구적 대립구도를 전파하는 시대착오적 퇴물이 된다.
정치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가 아프면 (자신이 아무리 부유하고 건강해도) 이를 진심으로 아파하는 공적 책임의식이 있는 지식인, 전문가, 정치가들의 소사이어티가 필요하다. 맥주나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고부가가치 명품 술이 부재한 현실을 통탄하고, 술 산업 관련 규제의 적정성 등을 소재로 밤새 토론하는 모임이 필요하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서 민중의 한숨 소리를 듣고 괴로워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풍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산업과 동아시아 에너지 협력과 지자체나 동네에서의 구현 방안 등을 고민하고, 정책대안이나 시민운동을 소재로 몇 시간씩 토론하는 공인들의 오래 된 모임 속에서 자신의 지성과 영성을 다듬고 개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좋은 정파나 정당은 바로 이런 소사이어티를 토양과 뿌리로 둔 줄기나 가지다. 정치인은 그 위에 핀 꽃이다.
우리 사회가 어디쯤 있고(역사적 국면, 국민의 삶), 어디로 가야 할지(비전, 전략)를 통찰하고, 이를 정책과 사업을 통해서 진짜로 구현하려고 하면, 지식인, 전문가 네트워크나 소사이어티가 필요하다. 공부도 열심히 한다. 그러나 간절히 원하는 공적 가치가 없고, 그 자리에 자신의 당선, 재선, 삼선, 대선 후보가 들어가면 땅개의원 내지 무개념 단세포 의원이 될 수 밖에 없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의원들 대다수가 당선, 재선, 삼선을 넘어서는, 뱃지와도 바꿀 수 있는 간절히 원하는 공적 가치가 없거나 흐릿하기 때문이다. 비전이나 가치를 공유하는 지식인, 전문가 소사이어티가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양당의 정치독과점을 담보하는 선거법과 정당을 깡통으로, 지역위원장의 거수기로 만든 정당법은 이를 더욱 악화 시켰다고 보아야 한다.
질기디 질긴 무개념 단세포 정치에 이를 간다. 제대로 된 소사이어티와 정당은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가치다. 개념 실종 민주당을 어리하리???!!! 민주당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리???!!! -끝-
* 본 기사는 2013년 5월 8일 한겨레 칼럼 (김대호의 세상 읽기)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김대호 /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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