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민중의소리 2013-05-09일자 기사 '[현장]복기성은 펑펑 울고, 한상균은 동지들 끌어안고'를 퍼왔습니다.
‘쌍용차 하늘사람’, 171일만에 땅으로 내려온 날

9일 오전 한상균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과 복기성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 이 171일간의 철탑 고공농성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왔다.ⓒ이승빈 기자
4년 전에도 그랬던 듯 싶다. 77일 간의 옥쇄투쟁을 마친 뒤 모든 책임을 지고 경찰서로 향하기 전 한상균 당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동료들과 일일이 포용하며 애써 웃었다. 지금보다 더 젊었던 복기성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은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한상균(52) 전 지부장이 수감생활을 한 3년 동안 노사대타협이라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쌍용차는 마힌드라라는 새로운 주인을 맞았지만, 정리해고자는 거리를 떠돌았고 휴직자 역시 단 한 사람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동료들이 세상을 등졌다는 비보는 계속됐다. 한 전 지부장은 지난해 8월 4일 교도소 문을 나선 지 100여일만인 11월 20일 문기주(53) 정비지회장, 복기성(37) 수석부지회장과 본사 공장이 마주 보이는 송전 철탑에 올랐다. 가을에 철탑에 오른 이들이 모두 땅을 밟은 것은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온 봄이었다.
9일 철탑 앞은 일찍부터 동료 조합원과 노동계·야당 인사들로 북적였다. 양성윤 민주노총 임시비대위원장,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 김정우 쌍용차지부장, 민주당 한명숙·우원식·은수미·장하나 의원,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국장 이훈삼 목사와 예수살기 최헌국 목사,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장동훈 신부 등이 한상균·복기성 두 사람을 기다렸다. 전태일 열사 동생인 전태삼씨는 대한문 농성장 철거 과정에서 다쳐 불편한 다리를 끌고 현장에 나왔다. 전날 저녁 갑작스럽게 공지됐지만 수십 명의 언론사 기자들도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잔뜩 찌푸린 날씨만큼이나 땅 위의 사람들의 마음도 복잡했다. 두 사람이 무사히 내려오는 것이 기쁘지만, 목숨을 걸고 고생한 동지들에게 안겨줄 ‘승리의 꽃다발’이 없어 괴로웠다.

9일 오전 한상균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과 복기성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 이 171일간의 철탑 고공농성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왔다.ⓒ이승빈 기자
한 노조 관계자는 “지난 7일 쌍용차지부 회의에서 농성 해제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농성을 계속 하겠다는 두 사람을 ‘지부 결정’까지 동원해 설득한 것은 복기성 부지회장이 농성을 지속하기 어려울 만큼 건강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과 잘 아는 노조 관계자는 “복기성 동지는 특히 고혈압이 문제인데 약을 먹어도 조절이 안 됐다. 허리와 어깨 상태도 심각하고, 소화가 잘 안 돼 최근에는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 스트레스도 우울증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복 부지회장은 최근 의료진 검진에서도 ‘농성을 계속 해선 안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 전 지부장 역시 저혈당과 지난 겨울 괴롭히던 동상의 후유증으로 손발이 저리는 증상 등으로 고생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이날 두 사람을 기다리며 가장 마음이 복잡한 사람은 아마도 문기주 지회장이었을 것이다.
문 지회장은 지난해 함께 농성을 시작했다 건강이 급속히 나빠져 농성 116일째인 지난 3월 15일 먼저 내려와 병원 치료를 받았다. 한의원을 다니며 치료를 계속 받고 있는 문 지회장은 두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연신 “혼자 내려올 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안하고 괴로웠다. 두 사람 참 고생했다. 앞으로 내가 더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복기성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이 9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인근 철탑에서 171일째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와 비정규직 정규직화,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인 뒤 철탑에서 내려와 부인 전은숙씨와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마침내 땅위로 내려온 두 사람
11시 15분께 시작된 기자회견이 끝나자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고공 30미터 높이의 철탑 농성장으로 향했다.
11시 52분께 양성윤 위원장과 박상철 위원장을 태운 크레인이 천천히 철탑을 향해 올라갔다. 몸이 안 좋아 누워있는 복기성 부지회장은 철탑 밖으로 보이지 않았고 한상균 전 지부장이 악수를 하며 두 위원장을 반갑게 맞았다. 잠시 뒤 복 부지회장이 먼저 부축을 받으며 크레인을 타고 땅으로 내려왔다. 철탑 아래에서 부인 정은숙(40)씨와 동료들이 눈물과 투쟁가, 박수와 함성으로 맞았다. 그는 들 것에 실려 비탈길을 올라 평지로 나왔다. 이어 한 전 지부장이 크레인으로 내려왔다.

9일 오전 한상균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과 복기성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 이 171일간의 철탑 고공농성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왔다.ⓒ이승빈 기자
복 부지회장은 의자에 기대 앉은 채 거의 말을 못하고 지인들과 손을 잡고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 사이 눈물이 그치지 않고 흘렀다. 머리와 수염이 덥수룩해진 한 전 지부장은 건강한 모습으로 감사와 반가움의 인사를 나눴다.
잠시 뒤 마이크를 잡은 복 부지회장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건강 악화로 내려와 죄송하다”며 “고통받으며 억울하게 죽어가는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자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힘겹게 말했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꽤 긴 시간 동안 소회를 밝혔다. 그는 “가을에 올라가서 봄에 내려왔다. 땅 위에 내려왔는데 아직도 기분은 허공에 떠 있는 듯 하다. 시간의 흐름은 반년이 지났으나 가고자 하는 길은 변한 것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지난 가을 아무런 준비없이 올라가 한파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지나 따뜻한 봄을 맞았는데 지금 보니 무서운 것은 추위가 아니었다. 지금도 노동자들이 공장을 떠돌고 철탑 위에서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고 절규하는데 4년 동안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단 한번의 대화에도 응하지 않는 쌍용차가 정말 원망스럽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 전 지부장은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갑을 논쟁’을 언급하며 “ 우리 시대의 갑을 문제는 단순한 언론의 뉴스거리가 아니라 말도 못하고 일터에서 쫓겨나는 10만 해고자이며, 노예로 고착되고 있는 10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 전 지부장은 끝으로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국민대통합 말로만 떠들지 말고 국정조사로 쌍용차 정리해고의 진실을 밝히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바로 잡아야 한다”고 전하며 민주노총 및 양심적 시민들과 손잡고 정리해고 철회와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한상균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이 9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인근 철탑에서 171일째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와 비정규직 정규직화,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인 뒤 철탑에서 내려와 부인 장영희씨와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4년 동안 못 간 가족여행 가고 싶어”
한 전 지부장의 부인 장영희(49)씨는 ‘남편과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자 “4년 전 구속되며 가족여행을 가자고 했는데 석방되고 100여 일만에 다시 철탑농성하면서 아직 못 갔다”고 말했다. 또 장씨는 한 전 지부장이 8일 밤에 통화하면서도 ‘문제도 해결 안됐는데 농성을 접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거듭 드러냈다고 전했다.
기자회견 뒤 동료 및 지인들과 일일이 포옹과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구급차를 타고 평택시 합정동에 위치한 굿모닝병원으로 옮겼다.
노조 관계자는 “이 병원에서 일단 며칠간 정밀검진을 받고 결과에 따라 차후 치료와 요양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9일 오전 한상균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과 복기성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 이 171일간의 철탑 고공농성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왔다.ⓒ이승빈 기자
고희철 기자 khc@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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