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7일 월요일

“민주화 뜻 거꾸로 이해하는 젊은이, 기성세대 책임”

이글은 경향신문 2013-05-26일자 기사 '“민주화 뜻 거꾸로 이해하는 젊은이, 기성세대 책임”'을 퍼왔습니다.

ㆍ‘분단고통과 통일…’ 출간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ㆍ“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 ‘제2 MB’ 되어선 안돼”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80)는 최근 (분단고통과 통일전망의 역사)(선인)를 출간했다. 국토와 민족이 분단된 과정을 되새기고, 앞으로의 통일을 전망하는 내용이다. ‘통일로 향하는 분단시대의 근현대사 이야기’가 부제인 책은 조선 8도 중 경기도만 조선 왕조 통치 아래 두고 남부 4개도는 일본의 지배, 북부 3개도는 청국의 지배로 두자는 청일전쟁(1894) 무렵 일본의 음모를 시작으로 한반도의 분단사를 상세히 파고든다. 

강 교수는 ‘책을 내면서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라고 붙인 책머리에 평화주의자로서, 열린 민족주의로서, 그리고 미래지향적 인간주의자로서 분단 문제에 접근했다고 밝혔다. 탈냉전시대라는 21세기에 남북한이 여전히 지난 20세기의 냉전주의적 생각에 묶여있는 것은 아닌가, 평화통일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냉철히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책을 냈다고도 했다. 

지난 2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만난 강 교수는 “우리 민족사회가 당면한 합리적 통일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 책을 썼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분단질곡이 역사상 어떤 연원과 조건에서 빚어진 것인가를 알고, 과거에 어떤 분단 위험이 있었고, 그 극복방편으로는 어떤 것이 제시되었는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에 분단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24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제6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령자인 유경순 박사를 만나 격려하고 있다. 강 교수의 사재로 설립된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에서는 매년 근현대사 우수논문 을 선정해 해당 연구자에게 지원금을 수여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책머리에는 ‘또다시 우리 땅의 전쟁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2013년 4월4일에 강만길 씀’이라고 씌어 있다. 북한의 개성공단 출입 제한 조치가 이뤄진 지 이틀째 되던 날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최근 중국시진핑 주석을 만나 6자회담 복귀를 언급했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은 물론 남북대화 재개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강 교수는 최근 정세에 대해 “남북이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역지사지하고, 화해 분위기로 돌아서야 분단과 동북아 평화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대북 정책, 통일 문제에서 제2의 이명박 정부가 되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의 의미도 거론했다. “박정희 군사정부 때 미국과 소련, 미국과 중국의 데탕트에 영향을 받아 발표한 7·4남북공동성명은 남녘에서 박정희 종신 집권을 위한 ‘유신’의 ‘멍석 깔기’가 됐다”면서도 “통일을 평화적으로, 주체적으로 한다는 내용을 담은 7·4남북공동성명은 이후 평화통일론을 정착시키는 출발점이 됐다”고 했다. 강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그런 것을 잘 이어받아 (대북, 통일, 평화정책을) 잘하길 바란다”고 했다. 

강 교수는 5·18광주민주화운동 직후 항의집회 성명서 작성 등으로 해직됐다가 1983년에야 복직했다. 최근 5·18 왜곡과 폄훼 문제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꺼렸다. 논란이 된 한 아이돌 가수의 ‘민주화’ 발언을 두고는 “젊은이들이 본래 뜻을 모르고 거꾸로 이해하는 것은 역사가 역행한다는 이야기”라며 “시대 상황에 흔들려 본질을 잃은 교육 문제와 후진 세대를 옳게 가르쳐야 할 책무를 못 지킨 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했다. 

24일은 강 교수가 설립한 ‘내일을 여는 역사’ 재단의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매년 그해 가장 우수한 근현대사 논문을 뽑아 주는 상으로 올해로 6회째를 맞았다. 학술 활동을 통해 한국 역사 연구와 사회 진보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됐다. 지원금은 강 교수의 사재로 마련됐으며 선정된 우수연구자에게는 2000만원 이 지급된다. 

올해 수상자는 (1980년대 변혁적 노동운동의 형성과 분화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역사학연구소의 유경순 박사다. 학생운동가들이 왜 노동현장에 투신했는지, 변혁적 노동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지를 분석한 논문이다. 한국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제시된 민중민주주의와 ‘노동해방’ ‘평등사회’라는 대중적 주장을 평가하고, 사상적 기반과 주체역량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조직 건설 에 나선 ‘조급성과 관념성’, 상호 대립·갈등의 ‘내부 정치’의 한계, 조직 간 상호 배타의 ‘정치조직 간의 정치’ 문제를 지적한다. 심사위원장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큰 사건인데도 자료 수집의 어려움 때문에 학문적 접근이 어려웠던 1980년대 ‘변혁적 노동운동사’를 풍부한 문헌 자료와 구술자료를 토대로 촘촘히 엮어내는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유 박사는 “구술을 해준 76명의 노동운동 관련자 분들께 감사의 말을 드린다”며 “큰 구도를 정리하는 데 급급해 치밀한 분석이 결여됐는데, 앞으로 더 나은 내용으로 보충,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강 교수와 유 박사는 이날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처음 만났다. 강 교수는 “첫해부터 논문 심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며 “연구 지원이 더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는 자극제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그만두던 2007년부터 강원도 양양 하조대에서 살고 있다. 매일 한 시간씩 산책을 하며 틈틈이 집필하고 있다. 그는 “우리 나이에 계획적인 일을 하기 어렵다. 정년하고 두 번째 쓴 책인데, 앞으로 뭘 쓸지 고민할 것”이라면서 “좌이대사(坐而待死·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림)할 수는 없잖으냐”며 웃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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