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3-05-14일자 기사 '윤창중이 나쁘다는 것, 언론만 모르는 듯'을 퍼왔습니니다.
[기자수첩 ]나쁜 놈, 이상한 시스템, 너무 센 권력
‘쏠림 현상’은 한국 사회를 읽는 중요한 ‘코드’가운데 하나이다. 온갖 것의 앞에 ‘국민’을 붙여 소비하는 행태는 이 쏠림을 정당화하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말하자면 지금 ‘국민 나쁜 놈’이다.
성추행을 했고, 거짓말을 했다. 국가의 품격을 송두리째 훼손했고, 도주로 국제적인 망신을 자처했다. 뭐라고 더 보탤 말도 없다. 이것보다 더 나쁠 수 있을까 싶은 그야말로 '천하의 나쁜 놈'이다.
그래서인지 언론의 ‘쏠림 현상’ 역시 대단하다. 이 나쁜 놈이 얼마나 나쁜지를 입증하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이 다 기사화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윤창중은 변태’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 하는 언론도 있는 것 같고, 윤창중이야말로 유사 이래 가장 악랄한 거짓말쟁이라고 조롱하고 싶은 언론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쁜 놈을 나쁘다고 말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이미 국민 나쁜 놈이 된 이의 행적을 깨알같이 파헤치는 것은 별다른 위험부담도 없고, 특별한 기개가 필요하지도 않은 일차원적인 행위다. 그가 청와대 대변인으로서 공적 업무를 수행하던 와중에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단 점에서 이런 고발 자체가 언론의 존재 근거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벌써 이틀째 윤 전 대변인의 속옷 착용 여부에 주목하고, 피해자와의 구체적 동선 및 행위를 캐며 2차 가해스런 보도들을 내놓은 것은 ‘선정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행태다.

▲ 윤창중 전 대변인은 박근혜 인사 1호로 불렸다. ⓒ뉴스1
정작, 언론에게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 나쁜 놈을 걸러내지 못한 그리고 어쩌면 나쁜 짓을 은폐하려 모의했었는지도 모를 시스템의 문제를 캐는 것이다. 윤 전 대변인은 박근혜 인사 1호로 불렸다. ‘박근혜의 잘 못 끼운 첫단추’라고 불린 그는 인수위 대변인에 임명될 때부터 온 사회가 들끓게 했다. 그에 대한 비판은 간단히 요약하면 ‘도저히 깜량이 안 되는, 너무나 천박한’이었다. 하지만 묵살됐다. 비판을 배제하며 아랑곳 하지 않게 그를 임명한 것은 오로지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였다.
이후 그는 버려질 것이란 세간의 예상을 비웃듯 청와대 대변인에 안착했다. 정작 이때 언론은 이에 대해 인수위 시절만큼 떠들진 않았었다. 한 번 지나간 비판이라는 판단과 함께 이명박 정부 이후 언론의 주된 정서가 되어버린 ‘그러려니’의 작동이었다. 윤 전 대변인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처음부터 그는 도저히 청와대 대변인 직무에 어울리지 않는 인식과 사고방식의 존재였다. 언론인 시절 그가 쓴 칼럼과 논평들을 보면 그는 애초부터 성인지적 관점이 전혀 없는 흘러간 불구의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이 전혀 걸러지지 않은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라면, 이 인물이 ‘사고’를 친 이후 시스템이 보인 대응은 이상함 그 자체이다. 왜 그런 인물이 걸러지지 않았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밝혀지고 있는 정황을 보면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윤 전 대변인을 ‘은닉’하고 도주에 협조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단 생각이 든다.
모든 조직 가운데서도 가장 상명하복에 충실한 의사결정 방식을 갖고 있을 청와대에서 이런 결정이 수석들의 자발적 판단으로 이뤄졌단 것은 도무지 믿기 힘든 일이다. 대통령이 몰랐다면 그것도 문제지만, 행여 대통령에게 보고를 해놓고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수석들이 거짓말을 한다면 더 큰 문제이다. 윤 전 대변인의 귀국을 대통령이 지시했단 사실을 감추기 위해 있지 않은 자발성을 과시하고 있는 경우라면 말이다. 이와 관련해 궁색하다보니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할까 보고하지 않았다’는 진술까지 나왔는데 이건 정말 갈수록 태산이다.

▲ 모두가 반대했던 그가 대변인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쩜 저 서류봉투에 단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수위 대변인에 임명된 그는 '월간 박정희' 서류봉투를 들고 세상에 등장했다. ⓒ뉴스1
그렇다면 나쁜 놈과 이상한 시스템을 낳은 근본적 배경은 무엇일까? 다른 이유는 없다. 대통령이 홀로 너무 세기 때문이다. 다른 권력 부분과 비교할 때, 그렇지 않아도 너무 센 대통령의 권력은 박근혜 정부 들어 사실상 완벽한 1인 지배 체제로 수렴되었다. 수석들은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할까봐 보고를 못하고, 비서관들은 대통령의 시선이 두려워 그를 회피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 전체가 박근혜 대통령의 한 마디에 다들 벌벌 떠는 풍토라는 지적이 높다.
이렇다 보니 그 나쁜 놈이 권력질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그를 호명했는데, 감히 누구도 제어하지 못했던 것이 이미 이 파국의 예고였다. 뒤늦게 청와대 일각과 새누리당 관계자들 사이에서 “윤창중을 임명했으면 안 됐다”는 후회가 나오고 있지만 소용 없다. 오히려 이후 수습 과정에서 보인, 현재 같은 권력 구조라면 제2의 윤창중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 세상이 모두 이상하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라도 대통령이 'OK'하면 도리가 없는 형편이다. 그리고 이런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권력 독점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떠받치는 구조 속에서 청와대가 운영된다. 이런 상황에서 합리적 시스템은 작동할 수 없다. 대통령의 의중이 곧 의사 결정의 전부인데 오히려 시스템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된다.
결국, 윤 전 대변인이 나쁜 짓은 대통령의 신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은 오만함 속에서 발현된 것이다. 방미 수행단 내부에 균형과 견제의 원리가 작동하는 일말의 합리성이라도 있었다면 아마도 대변인이 인턴과 몇 시간이나 술을 마시고 호텔방으로 그를 불러 성추행을 하려는 짓은 저지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범죄를 분명하게 처리하지 못한 채 동반 막장이 되어버린 집단적 미숙함 역시 대통령이 너무 무서워 쉬쉬하다 일을 그르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윤 전 대변인이 종편에 출연할 당시 그 충성심을 높이 샀다고 한다. 충성심만 있다면, 나쁜 놈 좋은 놈 이상한 놈 가리지 않고 기용한 절대 권력, 그리고 그 충성심의 정도로 완전히 위계화 된 이상한 조직 속에서 윤창중 사태는 또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관심을 쏟아야 하는 건 결국 이 부분이다. 나쁜 놈, 이상한 시스템 그리고 너무 센 권력 말이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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