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3-05-28일자 기사 '윤창중 스캔들 풀리지 않은 의혹'을 퍼왔습니다.
‘제2의 윤창중’을 막기 위해서라도 명확한 진상조사와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 누가 도주를 도왔는지, 대통령 보고 시점이 왜 늦었는지 청와대가 밝혀야 한다.
지난 1월 초, 한 인수위원과 기자단의 오찬 자리.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의 청와대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윤창중 대변인은 뉴스가 잘 나오지 않는 철통보안 인수위의 ‘뉴스메이커’였다. “뉴스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한다”라고 기자들에게 호통 치는 등 ‘기행’을 일삼는 윤 대변인에게 여러 차례 놀란 기자들은 인수위원을 다그쳤다. “정말 안고 가나? ‘윤창중 논란’ 박(근혜)은 모르나?” 기자들의 질문에 인수위원은 머쓱하게 웃었다. “왜 모르나. 당선인이 직접 포털 사이트를 통해 검색해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윤 전 대변인의 칼럼을 좋아한다는 말이 ‘정설’로 회자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보는 기사 스크랩에도 윤 전 대변인의 칼럼이 꼬박꼬박 보고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기간 새누리당 당사 4층 기자실 엘리베이터 옆에는 윤 전 대변인이 칼럼세상 대표 시절에 쓴 글이 붙어 있곤 했다. 언론은 물론 여야 정치권이, 심지어 친박계 내부에서도 부적절한 인사라는 평이 나온 윤 전 대변인의 청와대행은 그만큼 박 대통령의 ‘개인 작품’이었다.

ⓒ시사IN 이명익 5월11일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차에 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5월15일 44개 언론사 정치부장단과의 만찬에서 한 말은 자신 역시 피해자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전문성을 보고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인물이 맡으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그런대로 절차를 밟았는데 엉뚱한 결과가 나와 저 자신도 굉장히 실망스럽고 생각을 많이 한다.” 사과 대상에 대통령을 포함시켜 ‘과잉 충성’ 논란을 빚었던 이남기 홍보수석의 5월10일 기자회견은 이러한 박근혜 청와대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한 장면이었다.
꼬리 자르기도 시작됐다.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5월16일 기자간담회에서 사임한 이남기 홍보수석을 ‘희생양’으로 지칭하며, “이남기 수석이 정리되면서 사건도 마무리되지 않겠느냐”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친박 좌장 격으로 복귀한 김무성 의원은 같은 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공직자 금주 선언을 촉구하며 스캔들의 원인을 개인의 술버릇으로 돌렸다.
대변인 인사는 박 대통령 ‘개인 작품’
신의진 원내 대변인은 5월13일 브리핑을 통해 일찌감치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고 나섰다.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위 소집’이라든가 ‘청문회 개최’ 요구는 섣부르다.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친박계인 최경환 신임 새누리당 원내대표 역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윤창중 건을 놓고 국회가 할 게 뭐가 있느냐. 국정조사나 청문회는 불가하다”라고 선을 그었다. 여당은 대통령 ‘보위’에 일단 팔소매를 걷어붙였지만, 이후 조사 결과에 따라 청와대와 함께 후폭풍에 휘말릴 여지를 남긴 셈이다.
이번 윤창중 스캔들에 대한 사실 공방과 법적 책임 여부는 일차적으로 미국 사법 당국의 수사와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건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문제는 당·청이 합심해 꼬리 자르기를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건에 대한 새로운 의문이 연일 불거지고,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은폐·축소했을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정수석실은 윤 전 대변인 귀국 직후인 5월9일 관련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미에 동행했던 홍보수석실 관계자 전원의 행적 전반에 대해서도 감찰 활동을 벌였다. 주미 대사관이나 문화원의 보고를 통해 얻은 ‘사실들’도 여느 기관보다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윤 전 대변인은 5월11일 돌발 기자회견을 통해 민정수석실의 조사 내용을 “날조된 것”이라고 전면 부인했다. 그러자 민정수석실은 윤 전 대변인의 진술 내용(‘엉덩이를 만진 사실이 있다’ ‘피해 여성이 방에 왔을 때 알몸 상태였다’ 등)을 비공식으로 언론에 알리며 윤 전 대변인 개인의 부적절한 처신만을 부각시켰다.
이후 불거진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NCND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로 일관하고 있다. 애초 5월12일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기자회견에서 민정수석실 조사 결과도 함께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내부 이견으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해명해야 할 쟁점 중 핵심은 윤 전 대변인의 한국행, 즉 도주를 도운 ‘윗선’의 정체다. 곽상도 민정수석은 “이런 사람을 대통령 곁에 있게 하는 게 좋은지 안 좋은지는 누구든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귀국 지시를 사실상 시인했지만, 윗선의 정체를 확인해주지는 않았다. 또한 “청와대의 귀국 지시가 있었다고 해도 법상 문제될 게 없다”라는 발언으로 빈축을 샀다.
꼬리 자르기, 은폐·축소 멈춰야
더불어 대통령 보고 시점도 논란이 되었다. 이남기 홍보수석은 박 대통령이 윤 전 대변인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께 아무 때나 불쑥불쑥 들어가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경직된 청와대 분위기를 드러냈다. 윤 전 대변인은 5월8일 오후 1시30분 귀국길에 올랐고, 박 대통령은 “9일 오전 9시~9시30분에 보고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대통령 일정 중 대변인 귀국이라는 중대 사실을 22시간 가까이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셈이 된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가 내놓은 수습책은 즉각적인 후속조치보다 ‘대통령 순방 시 공직기강팀이 동행한다’ ‘청와대 인사위원회에 인사추천권을 보장한다’ ‘재발 방지를 위한 매뉴얼을 내놓겠다’ 따위다. ‘앞으로’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방미 당시 250쪽 분량의 ‘미국 방문 행사 책자’와 78쪽 분량의 ‘대통령 해외방문 행사 준비지침’이 수행단 전원에게 배포되는 등 매뉴얼이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었다. 보고 없이 야간에 숙소를 벗어나는 식의 개별 행동 금지를 명시한 이 매뉴얼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이 숙소인 페어팩스 호텔을 벗어나 승용차로 10분 이상 떨어진 W호텔에서 술자리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수행단 지침을 위반한 것이 된다. 또한 주미 한국문화원이 윤 전 대변인에게 별도 차량을 제공한 것 역시 매뉴얼을 위반한 ‘과잉 예우’였음이 드러났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을 지낸 윤여준 전 장관은 5월14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을 저지른 사람이나 수습하는 윗사람들이나 어쩌면 수준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라고 탄식했다. ‘윤창중 성추문 스캔들’은 청와대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제2의 윤창중’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건 자체에 대한 수사와 더불어, 청와대의 부실 대응에 대한 명확한 진상조사 및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5월16일 발표한 5월 셋째 주 주간 정례 조사는 “내각 구성 이후 ‘인사 문제’ 지적이 점차 줄었으나, 윤창중 사태 이후인 5월 3주에는 다시 급부상해 부정 평가자 두 명 중 한 명이 인사 문제를 꼽았다”라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응답은 51%로 일주일 전보다 5%포인트 떨어졌다.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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