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5-22일자 기사 '이따위 강령을 통과시킨 조직이 집권할수 있을까?(1)'를 퍼왔습니다.
민주당 개정 강령 정독 소감
지난 10년 동안 민주당, 민노당 강령 관련 글을 잡지와 연구소 뉴스레터 등을 통해 꽤 여러 번 발표했다. 그만큼 강령을 유심히 보고, 국내외 정당들의 강령과 비교도 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편향되고 편협한 486과 시민단체들의 주장 모음집’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민주당 개정 강령(2013.5.4)은 당혹감과 깊은 좌절감을 던져 주었다. 나도, 민주당도, 진보도, 대한민국도 미래가 참 암울하달까 우려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지난 10년 동안 ‘쇠귀에 경 읽기 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런 느낌은 오버다. 무엇보다도 내 얘기를 ‘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게다가 쇠귀에 들리도록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서, 천둥처럼 큰 소리로 ‘경’을 읽지도 않았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담론의 탁류에 맑은(?) 물 한바가지 부었다고 해서 물이 맑아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과대망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소모적 갈등과 고통의 원흉인 정치와 지식사회의 지독한 혼미, 무능을 고발하기 위해 기록 남기기 차원에서 이 글을 쓴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고 그 이유를 길게 설명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내 얘기는 강령의 문구도 문제지만, 강령을 낳은 모체인 민주당의 리더십, 조직구조, 문화는 더 문제라는 것이다. 즉 지도자 및 의원들의 저열한 통찰력, 학습능력과 안목이 첫 번째 문제고, 소상인 연합회와 자기 가치의 중요성만 아는 편협하고 편향된 계파 및 시민단체 연합회와 비슷한 조직(계파) 구조와 문화가 두 번째 문제고, 정치와 정당의 영혼인 강령을 몇몇 글쟁이와 전문가들이 골방에서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외주하청 품목 정도로 여기는 지적 풍토가 세 번째 문제라는 얘기다.
민주당의 사실상 주인인 당원, 지지자, 지도부는 비유하자면 중요한 계약서의 상세 내용을 보지 않고--봐도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덜컥 사인한 격이다. 그러나 편협, 편향된 가치, 주장을 가진 집단 일수록, 민주진보의 정치적 독점 대표체인 민주당의 강령은 (실력자들이 당의 정책노선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을 때) 반드시 확보해야 할 좋은 먹잇감이 아닐 수 없다. 강령을 뜯어보면 이들의 공작 내지 손때가 보인다. 이들은 가치, 이익, 이권을 보장하는 문구를 쑤셔 넣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단언컨대 2013년에도, 2011년에도(민주통합당 창당), 2008년에도(민주당 당명변경)에도, 열린우리당 시절에도 당의 강령을 꼼꼼히 읽은 의원, 당직자, 지지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민노당, 진보당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경영(개혁) 비전・전략과 집권 전략을 깊이 고민한 바탕위에서, 나름의 강령 윤곽(골조)을 그리고, 강령에 대해 시비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양한 집단으로 구성된 국민 전체를 어떻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지, 지속가능한 성장과 통합을 어떻게 이룰지를 깊이 고민해 보지 않고, 단지 자신이 잘 알고 중시하는 가치의 구현(확대, 강화)이 진보요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1980~90년대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의 관성일 것이다. 이 판단이 맞다면 아마 이것이 민주당의 0번째 문제일 것이다. 물론 이는 진보와 보수가 공유하는 대한민국 정치의 최대 문제 일 것이다.
만약 한국 주요 정당의 강령들이 유럽 집권 정당들의 강령처럼, 구절구절 마다 빼어난 시대・현실 인식(통찰력)과 굵직하고, 일관되고, 적확한 해법(비전)을 순도 높게 농축시키고 있다면, 이는 모순부조리를 깨는 강한 송곳과 드릴이 되어, 현실을 바꾸는 거대한 힘으로 전화 될 수 있을 것이다. 1848년에 나온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그랬던 것처럼......그러나 민주당 강령은 전혀 그런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편향된 가치・이익 집단은 원하는 문구를 집어넣는데 성공하여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볼 때, 민주당의 ‘진보적 가치・정체성 사수대(?)’와 ‘우클릭 저지 투쟁위원회(?)’는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한반도 평화 통일” 이라는 문구를 온전히 보존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 강령 개정 작업을 주도한 이상민 의원은 저 사수대와 투쟁위를 달래기 위해 이렇게 해명했다.
첫째, 민주당의 그동안 3대 정책 기조였던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한반도 평화와 통일” 부분은 명확하게 그대로다. 다만 “경제민주화와 함께 기업의 건전하고 창의적인 경영 활동에 대한 존중과 지원”, “보편적 복지를 통한 복지국가의 완성 추구 및 복지와 함께 선순환하는 질 좋은 성장 지향”,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 실현” 등을 덧붙였을 뿐이다.
둘째, 종전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모든 통상정책을 국민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전면 재검토한다”를 “자유무역협정을 포함한 모든 통상정책에서 국익과 국내산업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며, 피해 최소화 및 지원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적극 마련한다”로 개정한다. 현재 80여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거나 협상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포괄적으로 “모든 자유무역협정”으로 한 것이고, “전면 재검토” 부분은 비현실적이란 비판을 수용해 삭제했다. 상대국에 대한 재협상 요구는 주권국가로서 당연하고 언제나 가능한 것이므로 굳이 명기할 필요성이 없었다.
셋째, 북한 인권과 관련해 “인도적 지원과 남북 화해협력을 토대로 해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 북한 주민의 민생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노력한다”는 부분을 신설했다. 북한 인권 문제가 새누리당 등으로부터 반북 대결주의를 조장하기 위한 정략적 도구로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고 “인도적 지원과 남북 화해협력을 토대로”를 명기했다.
한심한 일이다. 문제의 본질, 즉 모순부조리가 뭔지를 분석하지 않고, 또 자명해 뵈는 진보적 가치들--큰 정부, 강하고 많은 규제, 강한 노동권 등--이 한국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실사구시 하지 않고, 그저 1960~70년대 유럽에서 풍미하던 진보적 가치(진보적 ‘개념어’)만 부여잡고, 진보연하고 있으니!!!
농담반 진담반 말한다면, 민주당이 적어도 지금 강령보다는 훨씬 나은 강령을 만드는 간편한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세계 정당사에 유례가 없겠지만, 강령 몇십 페이지를 공개경쟁 입찰(강령 콘테스트)에 붙이고, 당원과 지지자들 수천 명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강령 문구는 좀 나아질지 몰라도, 문제의 뿌리인 지도자들의 안목, 조직 문화, 조직(지배) 구조 등은 여전히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강령의 철학, 가치, 정책 등도 당과 지지자들의 심장과 혈관 속에 녹아들 수가 없다. 걸어 놓고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중고등학교 교실의 급훈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당의 영혼과 안목과 체질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허접한 강령을 그대로 두고, 몇 년에 걸쳐 두고두고 비판과 질책과 조롱을 받는, 타산지석으로 만드는 것이 당과 대한민국 발전에 더 낫지 않을까 한다.
이제 강령의 문구를 소재로 민주당의 안목, 문화, 구조를 말하겠다.
위기(문제)인식과 핵심 대립물
강령의 정수는 강령 전문(前文)에 명기되는 시대(현실) 및 위기(문제)인식과 핵심 대립물이다. 그래서 유럽의 유력 정당들은 수많은 정책의 모태인 시대의 성격/특징에 대해서, 강령 서문에서 길게, 집약적으로 서술해 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는 이 중요한 부분이 유령(허수아비) 때리기거나, 너무 모호하거나, 하나마나한 말로 점철되어 있다. 선진국 베끼기 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국인데, 이상하게 강령에 서술된 시대(현실) 인식 등은 선진국 정당을 베끼지 않고, 1980년대적 철학, 가치를 버무려 이상한 소리를 늘어 놓는다.
핵심 대립물은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를 구조화, 단순화해야 명료하게 알 수 있다. 정치세력이 누구인지, 뭐하는 존재인지를 알려면 표방하는 장밋빛 비전이나 지지・옹호하겠다는 집단과 가치만 봐서는 잘 모른다. 위험을 무릅쓰고, 대의를 위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치열하게 싸우는 지가 정치인 및 정치집단의 본질이다. 핵심 대립물과의 위험한 투쟁 과정에서 정치인의 통찰력, 용기, 강단, 진정성, 깜냥, 본질이 드러난다.(그런데 민주진보 진영이 거의 다 공감하는 싸움은 용기가 필요한 싸움이 아니다.) 배가 물살을 가를 때 저항과 하얀 파도가 생기는 것처럼, 구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가동하면, 정책 속에 숨어있는 칼날이 튀어나오면서 이해관계자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개혁의 본질과 위기와 피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개정 강령 전문의 위기, 시대 인식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는 민주통합당 강령과 거의 같다. ‘토건’이라는 표현을 ‘무분별한 개발’로 바꾼 것 외에는......
현재 대한민국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성장과 경쟁 지상주의, 무분별한 개발과 개방 만능주의에 기반을 둔 체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화와 특권․기득권 강화, 환경파괴라는 대재앙을 가져왔다. 중산층의 붕괴와 서민경제의 파탄, 실업의 증대와 비정규직의 확대, 청년실업과 경쟁교육의 강화,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문제 등으로 국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불안해졌다.(중략) 우리는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는 무분별한 세계화와 시장만능주의를 극복하고, 성 평등 가치가 보장되는 사회제도와 노동․교육․혁신에 바탕을 둔 발전체제를 실현한다.
즉 민주당은 “성장과 경쟁 지상주의, 무분별한 개발과 개방 만능주의에 기반을 둔 체제”와 “무분별한 세계화와 시장만능주의”를 주적으로 설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사실 반신자유주의의 대중적 버전(풀어먹이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상주의, 만능주의, 무분별’은 그 앞에 어떤 가치를 붙여도 반대할 수 없는 주장이 된다. ‘성장, 시장, 경쟁, 개방, 세계화’를 붙여도 되고, ‘정부, 복지, 협동, 연대, 생태, 평화(남북화해)’를 붙여도 반대할 수 없는 주장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무슨무슨 만능주의자, 지상주의자는 이 지구상에 없다는 사실이다. 지상주의자, 만능주의자는 마녀나 유령 같은 존재이자, (친북, 종북, 빨갱이처럼) 고무줄이라는 얘기다. 이걸 학술용어로 허수아비 때리기라고 하던가?
문제는 이 뿐이 아니다. ‘지상주의, 만능주의, 무분별’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피해의식의 산물이다. 당연히 시장 원리, 경쟁 원리, 자율책임, 개방 등 소위 우파적 정책에 대한 강한 거부감(알레르기 반응)을 갖게 만든다. 다시 말해 ‘성장, 시장, 경쟁, 개방, 세계화’를 피해의식 가득한 눈으로,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만약 보수가 비슷한 조어를 사용하면 당연히 ‘정부, 복지, 협동, 연대, 생태, 평화(남북화해)’를 피해의식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어있다.
‘성장, 시장, 경쟁, 개방, 세계화’와 ‘지상주의, 만능주의, 무분별’을 대충 결합한 문제(현실) 진단은 기본적으로 사회경제적 양극화, 특권․기득권 강화, 환경파괴, 중산층의 붕괴, 서민경제의 파탄, 실업의 증대, 비정규직의 확대, 청년실업과 경쟁교육, 저출산과 고령화 등 핵심 모순부조리를, 개인과 기업의 이익•이윤•탐욕 추구의 자유를 너무 풀어놓은 데서, 즉 시장=경쟁 원리를 너무 거침없이 흐르도록 한데서 발생했다고 본다. 따라서 대안의 핵심은 개인의 탐욕 자체와 이것을 날뛰게 만든 글로벌화된 시장, 경쟁, 개방, 자유화, 유연화 등에 규제라는 고삐를 채우고, (보편적) 복지로 이 충격을 완화하는 것을 정책기조로 삼게 한다.
그런데 과연 한국은 시장과 경쟁(소비자선택권)에 너무 많은 것을 맡긴 사회일까? 이것은 우리의 가계부를 펼쳐놓고 소비 항목 하나하나의 시장구조를 실사구시해 보면 진위를 알 수 있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지금 한국의 노동시장, 금융시장, 부동산시장, 자동차 및 유류시장, 통신서비스 시장, 민간보험 시장, 보건의료시장, 유통 시장, 대학과 공공부문, 정치시장과 언론(종이 신문 및 방송)시장 등 우리의 삶을 규율하는 대부분의 영역은 대체로 시장원리=소비자선택권과 공급자 경쟁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의 세련된 규제, 감독, 보호의 손길도 잘 작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한국의 대부분의 시장영역에서는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가 판을 치고, 소비자 보호가 너무 미흡하다. 본래 갑-을의 힘 관계가 크게 차이가 나도, 불공정거래에 대한 감시, 감독이 허술해도 ‘갑’은 ‘을’을 가혹하게 빨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은 설상가상으로, 산업차원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개념이 완전히 상실된(연대성도 공평성도 국민경제의 균형감도 쌈싸먹은) 갑의 조직노동이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높은 권리, 이익을 누리기 위해, 신의 직장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한다. 결론은 갑의 노사가 담합하여,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고, ‘을’이나 소비자를 가혹하게 빠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이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갑의 노사가 담합하여 ‘을’을 가혹하게 빨면, ‘을’ 역시 인간의 직장을 만들기 위해, 아니 생존을 위해서라도 병을 가혹하게 빨아야 한다. ‘병’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또 생존을 위해서 ‘정’을 가혹하게 빨아야 한다. ‘정’도 생명체인 이상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먹이사슬의 끝단부(영세기업, 청년, 외국인노동자 등)에서는, 그야말로 처절한 생존 경쟁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일에 비해 누리는 처우가 낮을 수밖에 없다.
또한 ‘하는 일’에 비해 높은 권리,이익을 누리는, 귀족(성안 사람) 같은 슈퍼 갑이나 힘센 갑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성밖 사람들은 사활적인 경쟁을 벌인다. 이 경쟁은 주로 입시, 고시를 통해 일어난다. 노동의 질(성과, 직무, 실력)이 아니라 교육, 시험을 통해서 제공되는 사람의 소속, 즉 학위, 학벌, 자격증, 사원증이 인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반지상주의, 반만능주의는 이중구조를 해결할 수가 없다.
한국 사회는 거의 모든 분야가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힘 있는 존재들이 사는 곳은 시장, 경쟁(소비자 선택권), 개방화, 유연화 원리가 흐르지 않는다. 보호규제(진입장벽, 경쟁제한장벽)가 너무 튼튼하다. 슈퍼 갑이나 ‘갑’ 지위를 이용하여 전후방 가치생산생태계를 약탈한다. 우리의 생산력 수준(1인당 GDP) 및 외부노동시장 수준에 비해 너무 높은 처우를 누린다. 당연히 이곳에서는 해고가 살인으로 된다. 때문에 기업은 고용(직영)에 대한 공포가 극심하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고용에 대한 공포, 긴 노동시간, 종업원들의 우리의 생산력(1인당 월 200만원, 년 2400만원, 2010년 기준) 수준에 비해서도, 외부노동시장 수준에 비해 훨씬 높고 안정적인 처우 요구 등은 괜찮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을 수밖에 없다. 이는 국내투자와 고용을 몹시 움츠리게 하고, 고용률을 낮추고, 임금근로자 비율을 낮추고, 불완전 고용인력을 늘린다. 그 결과 한국은 근로소득세 면세자들이 너무 많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도 너무 크다. 중위 소득 기준 저임금 노동자도 너무 많다.
결국 한국 사회는 하는 일(노동의 양, 질)과 누리는 처우의 균형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경제적 지대나 불로소득이 너무 많이 발생한다. 산업구조, 정치집단, 조직노동, 공공부문, 부동산, 금융, 각종 불합리한 규제 등이 이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킨다. 바로 이것이 미국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힘없는 존재는 완전히 그 반대다. 중소기업 노동자, 식당아줌마, 건설노가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회적 약자들의 노동시장은 너무 개방되어 있다. 글로벌 시장・경쟁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너무 불안하고, 유연하다. 보호규제도 적고, 노조의 보호막도 없다. 갑의 풍요와을, 병, 정의 피폐는 동전의 양면이다. 먹이 사슬 최상층부와 끝단부의 극명한 대비도 동전의 양면이다.
기본적으로 한국 특유의 과잉 시장(경쟁)-과소 시장(경쟁), 과잉 개방-과소 개방, 과잉보호-과소 보호, 과소 유연성-과잉 유연성 등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국은 신자유주의가 만들고자 한다는 과잉시장, 과잉경쟁이 문제가 아니라, 갑들의 과소 경쟁-과잉 착취와 사회 전반적인 엉뚱한 경쟁(좋은 곳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과 독점권을 보장하는 면허 따기 경쟁)이 문제라는 얘기다. 그런데 민주당 강령에 흐르는 철학, 가치, 피상적 문제인식으로는 이 독특한 이중구조 한국 사회를 제대로 개혁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강령 속에 흐르는 철학, 가치, 문화를 환골탈태하지 않고서는 집권할 수도 없고, 집권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계속)
김대호 itspolit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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