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12-03일자 기사 '중산층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를 퍼왔습니다.
중산층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Ⅰ. 들어가며
대한민국은 푸어 공화국이란 말이 있다.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스펙푸어, 에듀푸어, 프랜차이즈푸어, 실버푸어, 웨딩푸어, 베이비푸어 등 그야말로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가난해지고 또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middle class)의 정의나 기준은 역사적·학문적으로 또는 국가별로 일정치 않다. 단순하게 소득 기준으로는 평균소득 또는 중위소득의 70~150%, 50~150% 등에 속하면 중산층으로 볼 수도 있다. 소득 이외에 주택 등 보유자산, 교육과 직업, 가치관과 도덕성, 취미와 문화 등 여러 가지가 중산층의 기준에 포함된다. 그러나 실제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지 여부이다. 한국은 소득 기준으로 중산층의 비중이 추세적으로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1)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크게 줄고 있다.
중산층의 위기는 한국의 위기라고도 볼 수 있다. 중산층의 감소는 정치와 사회의 불안정, 경제성장 동력의 약화, 시민의식의 저화, 이익집단의 발호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다. 중산층의 붕괴는 양극화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시장의 불균형, 부품소재산업의 취약, 자금 흐름의 왜곡, 금융산업의 낙후성, 높은 집값과 전세값, 사교육 열풍, 사회안전망 부족 등 구조적 문제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
따라서 중산층의 복원은 한국 경제사회 전체를 개조하는 작업과 같아 한 두 사람의 능력으로는 제대로 된 방안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또한 최근 많이 논의되고 있는 복지 확충도 상당기간 중산층을 복원시킬 정도로 혜택이 확대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은 빈곤층, 장애인, 노인 등 우선 지원해야할 복지 사각지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 문제는 불안한 상태를 지속하고 있어 잘못되면 일시에 많은 사람이 중산층에서 탈락하고 한국경제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첫째 한국경제의 역동성 회복, 둘째 양질의 일자리 창출, 셋째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 대책 등 세 가지로 범위를 좁혀 중산층 복원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Ⅱ. 한국경제의 역동성 회복
한국을 표현하는 말의 하나가 ‘Dynamic Korea’이다. 그러나 한국은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살벌할지 몰라도 경제적으로 전혀 역동적이지 못하다.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역동성과는 거리가 먼 의사, 변호사, 교수, 교사, 공무원, 공기업직원 등이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고시 공시와 스펙 쌓기에 매달린다. 뛰어난 인재가 창업을 기피하고, 또 창업을 해서 생존하기도 어렵지만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그리고 대기업으로 발전하기는 더욱 어렵다. 창업자가 돈을 벌면 기업을 계속 키우기보다 기업을 적절히 정리하고 빌딩 등을 사서 편하게 살려한다. 한국은 뛰어난 학생이 이공계를 지원하고 꿈이 있는 사람이 벤처기업을 창업해 성공해 가는 경제 즉 역동성이 있는 자본주의 경제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부 직업과 계층을 제외하고 중산층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불확실해지고 새로이 중산층이 되는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전문직, 교수, 교사, 공무원, 안정적인 임대소득자 등을 제외하고는 항상 불안하다. 또 기업을 하다 실패하면 재기하기 어렵고 아차하면 극빈층으로 떨어질 수 있다. 여기에다 금융의 역할이 미흡하여 돈 없는 사람이 기술과 아이디어만을 갖고 사업을 일으키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중산층이 되어도 집값, 전세값 등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으로 생활이 고단하다. 중산층의 위기와 경제의 역동성 저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이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경제의 역동성 회복 정책은 중산층 복원 정책과 거의 같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경제의 역동성 회복을 위한 정책도 많이 있겠지만 다음의 네 가지 정책 과제를 우선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보수와 직업 안정성 등 종합적 보상수준이 과도하게 높은 전문직과 공무원, 공기업 직원 등의 대우를 낮추어 이들 분야로의 인재 쏠림을 줄여야한다. 이들 직업은 자격증 취득, 시험 합격 후 보수와 신분이 거의 자동적으로 보장된다. 또한 공무원은 공무원 연금이 있고 전문직은 정년이 없어 고령화 시대에 강력한 노후보장 수단까지 갖고 있다. 이에 비해 민간부문은 평균적인 보수 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보수가 높은 일부 대기업도 신분 보장이 안 되고 노후가 불안하여 우수한 인재가 기피하고 있다. 한때 한국 최고의 인재가 몰리던 서울대 물리학과, 전자공학과가 전국의 의대, 치대를 다 채워야 학생을 받을 수 있다. 이공계 위기도 전문직 공무원 등으로의 쏠림 현상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공대로 유명한 독일 아헨대학의 에른스트슈마흐르텐베르그 총장은 2012년 3월 21일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은 이공계 위기가 없다고 하였다. 자동차 회사 등 기업부문의 엔지니어가 의사보다 보수가 높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과 공무원 등만을 갖고는 중산층을 복원해 나갈 수 없다. 특히 공무원 등 공공부문 종사자는 소득 면에서 중산층의 상층부가 아니라 중간정도 되는 것이 선진국의 경우다. 한국에서 상류층과 중산층의 상층부를 점하고 있는 전문직, 교수, 공무원 등의 대우를 낮추면 중산층 중간부분인 대기업 정규 직원의 보수 상승 욕구를 억제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산층의 하층부에 위치하거나 중산층으로 진입하여야 할 계층인 중소기업 근로자나 비정규직의 대우를 개선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분배란 국민경제의 부가가치와 생산에 참여한 경제주체 간에 나누어지는 과정인데 특정 계층이 과도하게 많이 가져가면 다른 계층의 몫은 그만큼 적어질 수밖에 없다. 통계 숫자는 확실치 않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는 전문직 및 공무원, 대기업 정규직, 그리고 중소기업 직원과 비정규직 등 세 계층 간의 보상 수준의 격차가 지금에 비해 훨씬 작았던 것 같다. 또 이때까지는 전반적 소득 수준은 낮았지만 중산층 붕괴 등의 문제는 없었다. 한국의 중산층 붕괴는 성장세 둔화보다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상위 1%, 상위 10% 등 특정 계층으로의 소득 쏠림 현상이 더 큰 요인일 것이다.
둘째는 실직, 사업실패 등의 어려움이 있을 때 잠시 쉬었다가 재기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한국은 좋은 기업에 다니던 중산층이라도 정리해고, 명예퇴직 등으로 직장을 잃으면 실업급여의 수혜금액이 적고 수혜기간이 짧아 직업훈련 등 전직 준비가 거의 불가능하다. 조건이 좋지 않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을 할 수 밖에 없다. 창업에 성공할 확률은 낮고 창업에 실패하면 중산층의 지위를 지키기 어렵다. 또 창업에 성공하거나 중소기업을 장기간 잘 운영하다가도 잘못되는 경우 대표이사 등의 연대보증제로 인해 회사를 잃을 뿐 아니라 개인재산까지 지킬 수 없어 중산층에서 바로 탈락하게 된다. 실직이나 사업실패 시 중산층에서 밀려나지 않고 재기를 쉽게 하기 위해서 두 가지 정책 과제가 필요하다.
먼저 실업급여의 수혜기간, 수혜금액을 확대하는 것이다. 한국은 사회보장시스템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분야에서 복지확대 요구가 강하다. 노령연금 확충, 차상위 계층에 대한 지원확대, 반값 등록금, 양육비 지원 확대, 저임 근로자에 대한 4대연금 등의 다양한 지원확대가 제기되고 있다. 여러 가지 복지제도 중 중산층의 유지 복원에 직접 도움이 되는 것은 실업급여의 확충이고 또 실업급여 확충은 민간부문의 직업 안정성을 높여 경제의 역동성을 높인다.
다음으로 회사의 대표이사 등 실제 경영자의 연대보증제를 폐지하여야 한다. 연대보증제도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으나 아직 한국에서는 회사가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대표이사 등 실제 경영자의 연대보증이 의무화되어 있다. 연대보증제는 기업의 차입은 용이하게 하는 면이 있지만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을 유발하고 중산층 붕괴, 기업가 정신의 훼손 등 부작용이 많은 정책이다. 연대보증제 폐지는 한국경제의 역동성 회복뿐 아니라 기업을 원칙대로 운영해 숨겨놓은 재산이 없는 사람이 사업에 실패했을 때 바로 중산층에서 밀려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방안이다. 그리고 중소기업의 창업과 중견·대기업으로의 성장에도 크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 정책의 시행 과정에서 대출 축소 등의 부작용이 예상되지만 긍정적 효과가 부작용보다 크다면 보완 대책을 마련해 가면서 추진하여야 한다.
셋째는 서민금융기관의 지원 육성을 통해 신설기업, 영세기업, 저신용자 등의 금융접근성을 확대하여야 한다. 금융의 기본적 역할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자금융통 기능이다. 제도권 금융기관이 제 역할을 하면 돈 없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 사업이 잘되어 규모를 늘리는 사람,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사람 등이 적절한 금리로 자금을 융통할 수 있어 경제의 역동성이 강해지고 중산층이 보호된다. 돈 없는 사람이 기술과 아이디어만 갖고도 금융을 이용하여 사업을 일으켜 중산층이 될 수 있고 급전이 필요한 중산층이 대부업체 등 약탈적 금융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기업, 우량 중소기업, 좋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금융이용 기회가 충분하지만 신용도가 낮거나, 상환능력이 있어도 외형적으로 신용상태를 평가하기 어려운 계층은 제도권 금융의 이용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행은 우량고객 대출, 주택담보대출 등 안전한 대출만 선호하고 있는 데다 신협 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기관은 위축되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금융은 소액거래로 취급비용이 큰 데다 차입자의 신용도가 낮아 위험도 크기 때문에 서민금융기관이 은행 등과 경쟁하면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지원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
먼저 신협과 새마을금고의 예금과 출자금에 대한 세제 혜택은 최소한 현재 수준에서 상당기간 유지되어야 한다. 아울러 자기앞수표 발행, 펀드판매 허용 등 업무 규제는 완화하여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거액여신 등 건전성 규제는 강화하여 부실화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신협중앙회와 새마을금고연합회를 농협중앙회, 수협중앙회처럼 특수은행화하여 폭넓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특수은행화한 연합회와 중앙회는 단위 신협과 개별 새마을금고와의 업무경합이 발생하지 않도록 소매금융업무 취급은 엄격히 제한하여야 한다.
넷째는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로 대표되는 한국경제의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중산층의 살림을 빠듯하게 하고 서민층이 중산층으로 올라가기 어렵게 하는 주요 요인의 하나가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에듀푸어 등에서 나타나듯이 부동산과 교육 문제이다.
높은 부동산 가격은 중산층을 힘들게 할 뿐 아니라 국내기업의 경쟁력 약화, 외국기업 유치의 어려움, 국내기업의 해외이전 등을 통해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 그간 한국의 부동산시장은 잘못된 정책으로 수익성, 안정성이 매우 높아 투자자금이 몰렸다. 재벌, 성공한 기업가와 금융기관 경영진, 고위 관료, 고소득 전문직 등 상류층뿐 아니라 중산층마저도 많은 사람이 부동산 투자를 최고의 재테크 대상으로 생각했다. 한국경제의 난제가 되어 있는 하우스푸어 문제도 이와 관계가 깊다. 이명박 정부와 정치권 등에서는 하우스푸어의 손쉬운 해결을 위해 거래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주택가격 상승을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주택가격이 재상승한다면 한국경제는 경제정의 훼손, 경쟁력 약화, 양극화, 젊은 세대의 좌절 등의 구렁텅이 속에서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하우스푸어의 대책도 집값 전세값의 하향 안정화 속에서 찾아야 한다.
제대로 된 렌트푸어 대책도 필요하다. 우선 주택, 상가, 사무실 등의 임대현황과 임대소득 규모 등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기초통계를 국토부, 국세청 등이 합동으로 작성 공표하여야 한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임대소득 과세 투명화, 임차료의 소득공제 확대, 저소득층에 대한 임차료 지원, 임대료 상한제 등을 종합적으로 연계 시행하는 방안을 수립하여야 한다.
한국은 초·중·고의 입시를 위한 사교육비와 대학에서 스펙을 쌓기 위한 사교육비는 거의 세계 최고일 것이고, 대학등록금 등 공교육 비용도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교육비 부담은 중산층의 발목을 잡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 중산층이 되어야 할 젊은이들을 좌절시키고 있다. 교육문제는 사회경제시스템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국의 사교육 열풍은 근본적으로 시험에 의해 얻어지는 전문직 자격, 교수와 공무원, 공기업과 대기업 정규직 등의 혜택이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비해 시장의 경쟁을 통해서 얻어지는 보상 즉 창업과 연구개발 등의 혜택은 크지도 않고 불확실하다.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합리가 완화되어야 하겠지만 교육 자체에서도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초·중·고의 공교육 정상화, 대학 입시 등 대학 개혁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중·고등학교의 공교육 정상화와 관련해서는 내신제도의 혁신, 무학년 학점제, 교육중심 학교제도 만들기 등 현직 교사인 이기정 선생이 제안한 방안들이 훌륭한 정책대안이라고 생각된다.2)
Ⅲ. 양질의 일자리 창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한국경제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정책과제이다. 당연히 중산층의 복원을 위해서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구직자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참여정부뿐 아니라 이명박정부까지 나름 연구와 노력을 많이 했어도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해관계자에 대한 끈질긴 설득이 필요하고 정책효과가 늦게 나타나는 정책보다는 시행이 쉽고 효과가 빠른 정책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금리인하, 환율인상, 부동산경기 부양, 토목공사 확대, 특정분야에 대한 재정지원 확대, 재계총수와의 회동을 통한 투자 및 고용확대 요청, 인턴이나 공공근로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요즈음 일자리 창출방안의 하나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에 대한 지원 육성도 잘못 시행되면 반짝 효과로만 나타날 수 있다. 사회적 기업 등에 대한 단순한 재정지원 확대는 경제적 효과가 토목공사 확대보다는 크겠지만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확대보다 적을 수 있다. 경쟁력 있는 사회적 기업보다 서류를 잘 꾸미는 사회적 기업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성장잠재력이 있는 사회적 기업도 정부 지원에 익숙해지다 보면 장기 생존능력이 약화되기 쉽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에 대한 지원은 직접적인 재정지원보다는 창업자에 대한 교육 및 훈련, 세무 회계업무 등의 지원, 관련 통계 제공 등 간접 지원과 인프라 구축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의 지원은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지만 경쟁력과 생존력 있는 사회적 기업을 키워내 장기간에 걸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이해 당사자의 반발과 시행과정의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있어 추진이 쉽지는 않지만, 시행된다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정책 세 가지만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외국에서는 괜찮은 일자리로 자리 잡고 있는 직업 중 한국에 없는 직업을 찾아내 도입하는 것이다. 한국의 직업 종류가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에 비해 많이 적기 때문에 도입할 수 있는 직업은 많을 것이다. 한 두 개의 새로운 직업만 제대로 자리를 잡아도 수 천 개 이상의 괜찮은 일자리가 항구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등의 척추치료사와 에너지절감시설원, 독일의 스포츠재활치료사 등이 있다. 이들 직업은 해당국에서 괜찮은 전문직으로 자리 잡고 교육기관도 많이 있어 고용 및 생산효과가 크다. 한국도 이들 직업은 국내에서 수요도 있고 인력공급도 가능하여 양질의 일자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국내 도입에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척추치료사, 스포츠재활치료사 등과 같은 새로운 직업이 생겨남으로써 손해를 볼 수 있는 집단의 반대가 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책당국이 강한 의지를 갖고 끈질기게 이해관계자를 설득해 나간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둘째는 지방은행을 포함 은행 신규설립을 조금씩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한국의 은행 수는 지주회사 기준으로 특수은행 포함 14개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미국은 6,500개, 독일은 1,800개, 작은 스위스도 400개 정도이다. 더욱이 이들 나라는 은행이 이렇게 많음에도 은행 설립을 희망하는 경우 설립 요건을 갖추어 신청을 하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설립 인가를 내주고 있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은행은 물론 상호저축은행 마저도 신규 설립은 하나도 없이 합병·퇴출 등을 통해서 수가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과 우량고객 대출 등 안전한 대출만 하고도 많은 수익을 내고 있는 것은 신규 진입 금지로 인한 기존 은행의 이익 보호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은행수가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지면 은행 수익이 줄어들고 나아가서 부실은행이 생길 수 있다. 은행 수익이 어느 정도 줄어드는 것은 예금자, 대출자 등 금융소비자의 이익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좋은 점도 있고 작은 은행 1~2개가 부실화되는 것도 금융시스템 전체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다만 대형은행이 부실화되거나 소형은행이 연쇄적으로 부실화되는 것은 위험하다. 이러한 두려움이 은행설립 확대를 수용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대전·충청지역이나 강원도와 같이 지방은행 설립을 희망하는 지역에 지방은행이 생기고, 서민전문은행, 인터넷전문은행 등 전문화된 소형은행 몇 개가 생긴다고 은행산업의 기본구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지방은행을 포함 소형은행 2~3개를 우선 설립 허용하고 이들이 잘 적응해 나가면 은행설립 폭을 넓혀 나가면 될 것이다.
인구 5,000만 명인 한국은 은행원수는 비정규직 포함 10만 명, 신협 새마을금고 상호금융 등이 5만 명, 증권회사가 5만 명 정도이다. 이에 비해 인구가 8,200만 명인 독일은 은행원수가 거의 70만 명에 이른다. 은행설립이 조금씩 확대되면서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인 은행원수도 같이 늘어날 것이다. 다만 은행설립 확대정책이 성공하려면 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검사·감독을 책임지는 금융 감독당국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직 체계를 개편하여야한다
셋째는 외국에 비해 인력이 부족한 의사 등 전문직의 정원을 늘리는 일이다. 이 정책은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전문직의 보상 수준을 낮추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의사 등 전문직의 반발이 거셀 것이다. 한국의 의사 수는 2009년 기준 한의사 포함 인구 1,000명당 1.9명으로 OECD평균 3.1명보다 크게 적다.(의사 수의 증가율이 높아 2024년에는 OECD평균 수준에 근접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한 의료산업의 수출산업화 주장도 한쪽에서 강하게 제기되기도 한다. 의료산업이 수출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의사·간호사 등 의료자원이 충분하고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의사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산업의 수출산업화를 주장하는 것은 국민이 굶어죽는데도 식량을 수출하자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입시생의 의대·치대 쏠림현상을 감안할 때 의사 정원을 조금 늘린다 하더라도 질이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또한 농어촌 지역의 의사 부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 정원확대를 위한 방안3)의 하나는 지방의대 정원의 일정비율(예 10~20%)의 특례입학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특례 입학생은 졸업 후 일정기간 농어촌 지역에서 의무적 개업 또는 근무하도록 하고 정부는 6년간 특례 학생에 대해 학비를 지원한다. 이 방안은 일자리 창출, 농어촌 의료서비스 확대, 경제력이 없는 우수 학생에 대한 학비지원 등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는 정책이다.
Ⅳ.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 대책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되고 있지만 그 심각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위기란 것이 터져봐야 아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의 정확한 정보가 부족한 것도 판단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첫번째 평가는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 문제는 부담스럽지만 한국경제 규모, 금융기관의 건전성 등을 생각할 때 감내할만한 수준이고 장기적으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서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고, 두번째 평가는 채무자가 버틸 때까지 버티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늦게 나타나는 것일 뿐 조만간 시스템리스크로 번질 것이며 특히 최근 경기둔화와 고용악화로 인해 그 가능성은 더 커졌다는 생각이다.
현재는 두 가지 평가가 팽팽한 상태이나 분명한 것은 첫번째 평가대로 금융시스템이 망가지는 상태로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중산층의 몰락은 확대된다는 것이다. 또 두번째 평가대로 시스템리스크로 확산된다면 한국경제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지게 된다. 한국의 은행은 거의 비슷한 자산구조를 갖고 있고 가계도 자산의 70~80%를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우스푸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하우스푸어는 아직 최초 대출수준은 유지하고 있지만 원리금 상환부담이 소득에 비해 커서 겨우 버텨내고 있는 계층이다. 특히 원금 상환은 거의 하지 못하고 이자만 어렵게 갚고 있는 계층이 더 심각하다. 또한 현재는 소득으로 그럭저럭 원리금을 상환하고 있지만 조만간 정년퇴직 등으로 소득이 줄어들면 이들과 비슷한 하우스 푸어에 포함될 계층도 있다. 둘째 하우스푸어는 보다 심각한 계층으로 실직, 사업 악화 등으로 신용대출, 제2금융권 대출, 카드론 등의 추가 대출을 받아 다중채무자가 된 사람들이다. 이들 계층은 소득이 크게 늘어나거나 집을 비싸게 처분할 수 있지 않는 한 대부분 연체 경매 등의 과정을 거쳐 중산층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이나 우리은행 등에서 제시하고 있는 하우스푸어 대책은 두 번째 계층 중 막 연체상태에 들어간 하우스푸어를 대상으로 하며 이들이 집을 팔거나 맡기고 연체이자 대신 5~6% 이자를 부담하는 방식이다. 통상 하우스푸어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연체 상태에 들어가기 때문에 연체이자 대신 정상이자를 부담한다고 해서 극적인 상황개선이 없는 한 이들이 원금을 갚고 하우스푸어에서 탈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하우스푸어 대책은 다중채무자가 된 두 번째 계층과 아직 빚을 늘리지 않고 버티고 있는 첫째 계층으로 나누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실효성이 있다. 단 하우스푸어 대책은 부동산 투기자에 대한 불필요한 보호라는 반대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면서 금융시스템의 안전판 구축과 중산층 몰락 방지라는 관점에서 수립됨과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다중채무자에 대한 대책
다중채무자에 대한 대책은 연체 직전 또는 연체 초기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전적 혜택과 경매 등 법적 조치에 들어가는 사람을 위한 사후적 대책으로 나누어 봐야 한다.
첫째, 사전적 대책은 감독당국의 창구지도 등을 통해 다중채무자에게 자구 노력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갖게 하는 방안, 그리고 새누리당이나 우리은행 자체안과 같이 연체이자를 정상이자로 전환시켜 부담을 줄이고 시간을 갖게 하는 방안이 있다. 이러한 방안은 하우스푸어에게 잠시 여유를 주지만 문제를 뒤로 미룰 뿐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벌어 논 시간 내에 하우스 푸어의 소득증가와 주택가격의 상승 등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나중에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 있다.
둘째, 사후적 대책은 통합도산법 등을 보완하여 개인회생제도와 파산면책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채무변제가 불가능해진 하우스푸어가 바로 극빈층으로 떨어지지 않고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주택보유자에 대한 개인회생제도의 탄력적 적용, 개인회생자에 인정되는 최저생계비 인상, 파산면책자에 대해서도 가족수에 따른 차등 최저생계비 적용, 개인회생기간의 단축 등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학계와 민주당 등에서 어느 정도 연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채무자의 고의적인 채무 면탈을 최소화하면서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빚이 크게 늘어나지 않은 하우스푸어를 위한 대책
아직까지는 버텨내고 있는 하우스푸어에 대한 지원 대책은 세입자 영세사업자 등과 형평성면에서 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하우스푸어가 한계에 봉착해 빚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다중채무자가 되고, 늘어난 원리금 상환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면 중산층에서 밀려나게 된다. 중산층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다중채무자가 되기 전에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집값 상승이며 이것 때문에 정책당국도 거래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집값 상승을 계속 유도하게 된다. 한국에서 집값이 다시 한번 상승한다면 한국경제와 국민전체가 받는 타격은 엄청날 것이다. 이들 하우스푸어에 대한 대책은 집값의 과도한 하락에 따른 중산층의 붕괴와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방지하고, 한편으로는 집값 상승기대도 없애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가 제안하는 대책의 기본 골격은 다음과 같다.
• 가칭 “주택안정기금”을 설립하고 조직운영은 주택금융공사 등에 위탁한다. 동 기금은 정부, 한국은행, 국민연금, 금융기관 등의 소액 출자와 주택안정채권(정부보증채) 발행으로 재원을 조달한다.
• 동 기금은 일정조건4)을 충족하는 하우스푸어의 주택을 구입하여 주택을 판 사람에게 매입 우선권을 부여하고 임대한다.
• 기금의 주택매입가격은 중산층 붕괴방지, 금융시스템 보호, 집값 상승기대 해소 등을 위해 중요한데 2007년경 최고가격(국민은행 자료)의 50%이내에서 주택담보대출 금액까지로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
• 매입대금은 대출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대출은행에 주택안정채권으로 지급하여 주택담보대출과 상계한다.
• 채권금리는 은행의 평균자금조달금리 3%에 0.1%p 정도 가산한 금리로 발행하고 채권만기는 5년(추가 논의 필요) 정도로 한다.
• 임대료 산정금리는 채권발행금리에 0.1~0.2%p 가산한 3.3% 내외로 한다.
• 대출자가 기금에 매각한 주택을 다시 매입한 경우에는 임대료 산정금리와 은행의 평균 주택담보대출 금리와의 차이와 재산세 등 기금이 주택 유지에 지출한 비용이 있다면 부담하도록 한다.
• 동 기금은 주택금융공사 등 기존 조직의 활용과 은행의 업무지원 등을 통해 운영관리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임대료 산정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 있다.
다음으로 동 대책의 기대효과를 살펴보면
정부입장에서는 임대료가 제대로 들어온다면 재정부담이 별로 없이 금융시스템과 하우스푸어의 안전판을 마련할 수 있다. 단 정부보증채 발행에 따른 정부보증채무는 증가하나 이에 상응한 자산(주택)이 증가하고 환매되지 않은 주택은 향후 공공임대주택으로 사용 가능하다.
은행의 입장에서는 자산운용수익은 감소하나 부실가능성이 큰 주택담보대출이 정부보증채라는 무위험자산으로 전환되는 것이고 동 무위험자산의 수익률이 은행조달금리보다 높기 때문에 건전성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 정대영 | 송현경제연구소 소장
가계의 입장에서는 주택담보금리와 임대료 산정금리와의 차이인 2%p 정도 이자 부담이 줄어들고 만기연장과 원금상환 부담이 해소된다. 또한 집을 기금에 싸게 팔았더라도 되살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별 손해는 없다. 다만 기금에서 주택담보대출 금액으로 매입하기 때문에 매각 후 추가 여유자금은 확보할 수 없다.
주택시장은 다중채무자의 규모와 하우스푸어의 기금 매입가격에 대한 수용성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으나 주택가격이 기금의 매입가격인 최고가격의 50% 수준을 심리적 지지선5)으로 하여 가격이 안정되고 거래가 늘어날 수 있다.
동 제안은 개인적 구상안이기 때문에 빈틈과 보완할 점이 많을 것이다. 기금의 주택매입 기준가격, 제도 시행기간, 임대료 미상환자에 대한 대책 등 더 많은 논의와 실무적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어렵더라도 동 제안을 구체화할 수 있다면 상당수의 하우스푸어가 중산층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아주고 최악의 경우 은행시스템이 망가지는 것을 방지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1) 유경준, ‘중산층의 정의와 추정’, 2008.6, KDI, 김용기, ‘한국 중산층의 변화와 경제사회적 결과’, 2010.8, 삼성경제연구소
2) 이기정, ‘교육대통령을 위한 직언직설’, 2012.9, 창비
3) 2012년 8월 12일 공공의료 확충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서울대 김진형 교수가 주장한 방안 중의 하나이다.
4) 주택가격 6억원 이하 1가구 1주택자도 자기 집에 거주하는 자를 1차 대상자로 하고 시행과정에서 조정 가능
5) 정책당국이 매입 기준가격을 통해 주택가격에 대한 어떤 지지선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많을 것이고 또 그 수준을 최고가격의 50%로 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을 것이다. 기금의 매입 기준가격은 최고가격대비 실거래가격이 50% 가까이 떨어진 수도권 외곽지역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지지선으로 작용할 수 있고, 반대로 주택가격이 조금 떨어진 지역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상승 기대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정대영 | 송현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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