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정책·금융·실물 하나도 확실한 것 없다


이글은 이코노미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3-01-01일자 제33호 기사 '정책·금융·실물 하나도 확실한 것 없다'를 퍼왔습니다.
집중 기획 한국 경제 4대 변수 진단- ① 국내외 4대 변수 진단


경제 전문가들은 새해 상반기에 국내 경기가 바닥을 칠 것으로 내다본다. 하반기 들어 완만한 상승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반기가 되더라도 지금 같은 조건에서는 본격적인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상당 기간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변수가 있다. 원-달러 환율 급락이다. 국제 투기자본이 몰려들어 예상을 뛰어넘는 급락세를 보인다면 국내 경제가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반대로 오랫동안 바닥을 다진 미국 경제가 본격적인 상승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국내 경제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물론 가계부채 증가와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도 큰 변수임이 틀림없다. _편집자

정책·금융·실물 하나도 확실한 것 없다

환율급락·가계부채·경제민주화·미국경제 4가지가 새해 국내 경제 결정한다
새해 국내 경제를 좌우할 변수는 무엇일까? 유럽의 재정위기를 꼽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악재가 거의 노출된 유럽은 큰 변수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미국 경제의 회복 여부가 중요한 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 급박한 문제도 있다.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기업들의 수출이 큰 지장을 받게 된다. 국내 소비와 부동산 시장을 억누르는 가계부채 문제는 해결 기미가 없다.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도 불확실성투성이다. 2013년 국내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4가지 변수를 살펴본다.

정남기 (이코노미 인사이트) 편집장

새해 국내 경제는 가장 어려운 시기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에 경기가 약간 살아난다는 전망이 있지만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3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3.1%로 내다봤다. 세계경제 성장률 3.4%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3.2%, 한국개발연구원(KDI)은 3%로 예측했다.
이런 예측도 불확실하기 그지없다. 국내 경제를 크게 뒤흔들 변수들이 곳곳에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당장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면서 수출 전선이 흔들리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새해 국내 경제를 좌우할 주요 변수로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 원-달러 환율 급락, 가계부채 증가, 미국 경제의 회복 여부 4가지를 꼽고 있다.

원화 가치 급등에 흔들리는 거시경제

당장 코앞에 다가온 변수는 원-달러 환율 하락이다. 환율 하락은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의 상승을 의미하고, 이는 국내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과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환율 하락으로 수혜를 보는 업종도 적지 않다. 내수 업종들이 그렇다. 문제는 환율 하락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는 데 있다. 급격한 환율 변동은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큰 리스크가 될 수밖에 없다.
원-달러 환율은 2011년 말 1151.8원에서 2012년 12월21일 현재 1074.3원으로 6.7% 하락했다. 환율은 2012년 6월까지도 1150원대를 유지했으나 하반기 들어 급락세로 돌아섰다. 중요한 것은 새해 추가 하락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1천원대 중반을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1천원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본부장은 "국가 신용등급이 상승하고 환율이 하락하면서 외국 자본이 정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밀려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원화 강세를 예측한 투기성 외국 자본이 대거 몰려들면서 환율이 예상보다 훨씬 더 하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말 936.1원까지 하락했다.
수출 기업의 경우 환율이 1천원으로 하락하면 매출(원화 기준)이 2011년 말 대비 13.17%나 줄어들게 된다. 영업이익률이 7%였다면 거꾸로 6%의 영업손실을 본다는 얘기다. 그동안 높은 환율로 재미를 봤던 삼성전자·현대차 등 수출 대기업들에는 비상이 걸린 셈이다. 반면 내수 기업과 가계는 수입 물가 하락 덕분에 상대적으로 이득을 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처럼 외화 부채가 많은 기업도 큰 이득을 보게 된다. 원화 강세가 되면 원금 상환 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라 전체적 손익을 따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정부는 대부분의 경우 수출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시중의 달러를 사들이거나 국내 달러의 해외 유출을 장려하는 방법으로 환율 하락을 저지해왔다. 예를 들면 내국인의 국외 부동산 투자를 장려하는 것 등이다. 새 정부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된다. 급속한 환율 하락으로 인해 거시경제 운용 방식 자체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백화점 업계가 겨울 세일에 들어간 2012년 11월 말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소비자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최근 유통업계는 유례없는 불황을 겪고 있다(왼쪽). 2012년 10월 미국 메릴랜드주 풀스빌에서 주택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미국은 1인 가구용 주택 판매가 2년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신장률을 보이는 등 경기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오른쪽). 뉴시스/뉴시스 REUTERS

걱정되는 것은 수출 대기업들이 수익성 하락을 보전하기 위해 납품 업체들의 단가를 일방적으로 후려치는 일이다. 이 경우 환율 하락에 따른 손실은 납품 중소기업과 그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환율에 따른 손실이 교과서대로 수출 대기업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결국 급격한 환율 하락은 경제적 약자들에게 큰 부담을 지울 가능성이 높다. 물론 새 정부가 경제민주화 차원에서 대기업의 횡포를 얼마나 강력하게 단속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경제 전문가들이 첫 번째로 꼽는 변수 중 하나가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 시장의 침체다. 정부의 노력으로 가계부채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웃돌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2012년 3분기 가계신용(금융사 대출과 판매신용을 합친 것)은 937조5천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명목 GDP 성장률 2.4%를 크게 넘어선 수준이다.
현재 937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규모는 미국과 유럽처럼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거쳐야 할 상황이다. 증가율이 둔화되는 데 만족하지 말고 절대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디레버리징을 인위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오히려 잠복해 있던 가계부채의 불씨를 키워 실제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결국 과격한 해결책보다는 가계부채 증가율을 최대한 낮추면서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점차 축소해나가는 점진적 해결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금융 당국의 치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

소비 억누르는 가계부채 부담

큰 문제는 가계부채에 짓눌려 국내 소비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명활 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국내 소비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요인은 가계부채 증가와 이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침체"라며 "가계부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대 규모를 줄여야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가계부채가 부동산 시장 회생은 물론 내국인들의 소비 증가 여부를 좌우하는 결정적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기업과 가계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의 학습 효과 때문에 또 다른 위기 상황에 대비해 극도로 소비지출을 줄이고 있다.
가계부채 부담 때문에 부동산 가격도 오르기 어려운 형편이다. 부동산 가격은 가계부채 증가율 상승세와 비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취득·등록세 감면, 양도세 중과세 부과 유예 연장 등 갖가지 미시적 정책을 동원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시장이 반응하지 않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 장기화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돈이 묶인 상당수 기업들을 추가로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도 있다. 이미 웅진이 PF로 무너졌고, 상당수의 다른 기업들도 PF의 덫에 걸려 고전하고 있다. 이 상태가 1년 이상 지속된다면 적잖은 기업들이 비슷한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

박근혜 전 새누리당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정부의 경제정책 변화도 예상된다. 가장 큰 관심은 박 당선자가 추진하는 경제민주화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라는 것이다. 거시경제와 상관없이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국내 경제가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당선자의 경제 분야 공약은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 경제민주화,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등 창조경제 구현, 한국형 고용복지 모형 구축, 가계부채 해결 등 7대 정책 과제, 지분매각제도 등 집걱정 덜기 종합대책 5가지로 요약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민주화 공약이다.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비정규직 차별 해소,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진입 규제, 하도급 또는 납품(입점) 업체에 대한 불공정 행위 근절 등), 공정거래 관련 법 개선(공정위 전속고발권제 폐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집단소송제 도입 등),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근절(부당내부거래 규제 강화, 특가법상 횡령에 대한 형량 강화, 지배주주나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 행사 제한 등), 기업 지배구조 개선(신규 순환출자 금지, 공적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 다중대표소송제 및 집중투표제의 단계적 도입 등), 금산분리 강화(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 축소 등)가 그 뼈대다.
비록 민주당의 공약보다는 약하지만 그동안의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에서는 훨씬 더 나아간 것이다. 이것들만 제대로 시행해도 국내 경제 시스템은 획기적으로 변하게 된다. 물론 이 공약들이 다 실현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통령에 취임하면 현실론을 앞세워 용두사미로 흐지부지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기업들은 경제위기와 저성장 시대 진입을 이유로 경제 활성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등 박근혜 정부 내의 몇몇 경제민주화 추진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재벌 대기업 및 관료들과의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2012년 10월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국회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증가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지만 가계부채 증가율은 여전히 경제성장률을 넘어서고 있다. 뉴시스

미국 경제의 급속한 회복 가능성

다만 어느 때보다 경제민주화 요구가 높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공약이 공수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재벌 대기업과 총수 일가들의 부당한 내
부 거래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규제가 가해질 것이다. 횡령 등 재벌 총수 일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화될 게 확실하다. 이런 일이 몇몇 재벌 대기업 손보기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인 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13년에도 유럽 재정위기가 세계경제의 가장 큰 변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과 중국이 훨씬 크다. 특히 반등 조짐을 보이는 미국 경제의 회복 여부가 관건이다. 교역 규모 등을 감안할 때 국내 경제에서 유럽연합(EU)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데다 유럽 재정위기는 대부분의 악재가 이미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경기 하락기에 접어든 중국이 연착륙에 실패하거나 완만한 회복기에 접어든 미국이 본격적인 경기 상승세를 탈 경우 그 파장은 훨씬 클 수 있다. 고영선 연구본부장은 "새해 유럽이 2~3번 출렁거릴 수 있지만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오히려 미국과 중국이 클 것"이라며 "중국 경제의 연착륙 및 미국 경제의 회복 여부가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활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도 "2013년 글로벌 경제의 핵심은 미국"이라며 "미국 경제가 새해 2%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거의 무제한적으로 돈을 뿌린 상황인데다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친 뒤 상승하고 있고, 고용 상황도 호전되고 있어 재정절벽이 해소되는 등 계기가 주어지면 경제가 급속하게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용·주택 등 거의 모든 지표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인다. 2012년 10월 신규 주택 착공 호수는 전월 대비 3.6% 증가해 4년3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보였다. 더불어 은행들도 대출을 늘리고 있다. 실질가처분소득 증가에 힘입어 실질소비지출도 증가하고 있다. 고용 지표 역시 크게 좋아졌다. 미국 노동부의 11월 고용 동향을 보면, 실업률이 4년 만에 가장 낮은 7.7%를 기록했다. 이런 회복세는 그동안 기업과 가계의 구조조정이 상당 수준 이뤄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은 2006년 초부터 하락해 거의 7년 동안 바닥을 다진 상태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는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이 속속 낙관론으로 돌아섰으며, 일반 국민도 2013년 경제를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미국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국 경제가 정상 궤도에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가 38%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3개월 전인 2012년 9월 조사의 33%에 비해 5%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중국 경제의 회복도 중요하다. 한국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이르고 있어 중국이 휘청일 경우 국내 경제는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상황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몇몇 지표만 호전됐을 뿐 연착륙 여부가 매우 불확실하다. 따라서 2013년 세계경제의 회복 여부는 미국에 달려 있다. 미국 경기의 회복은 대미 수출 물량이 많은 중국 경제 회복의 견인차가 될 것이고, 대중 수출이 많은 국내 경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불확실성투성이인 국내 경제 상황을 크게 반전시킬 수 있는 변수라고 하겠다.

jnamki@hani.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