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프레시안 2012-12-30일자 기사 'MB정권 5년 동안의 처절한 외침들'을 퍼왔습니다.
[인권오름] 봄이 올까? 물음을 간직한 채 우리의 돌을 굴리련다
대선이 끝났다. 개표 소식으로 뒤숭숭한 밤,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잠자리에서 여러 편의 꿈을 꿨다. 그중에서 한 꿈의 내용은 대강 이랬다. 한 강의실에서 인권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데 아무도 듣지 않는다. 칠판에 몇 자 쓰려는데 뭔가가 칠판을 가로막아 한 자도 쓸 수가 없다. 외면하는 칠판을 돌아서니 역시 외면하는 사람들의 얼굴뿐이다.
한동안 말을 멈춘 나는 결국 강연 포기를 선언했다. 그런 나에게 대한문에 데려가 달라고 누군가가 찾아왔다. 나는 시큰둥하게 그냥 저쪽으로 가면 된다고 대답하고 보니 길이 꽉 막혀있다. 그런 꿈에서 깨어나니 새벽인데 벌써 옆 공사장에서 철근을 우당탕탕 나르는 일꾼들의 소리, 부식 차량의 메가폰 소리가 골목을 채우고 있다. 또 아침이 시작되나 보다.
오늘 아침 따라 지난 5년간 첩첩 쌓여온 문제들이 더 무거워 보인다. 아니, 문제들이 아니라 그 짐을 짊어져 왔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와 외침들이 들린다. 어떻게 새겨듣고 챙겨야 할지 가슴을 긁어대는 외침들이다.
2008년 5월 2일 청계천에서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촛불 문화제가 시작돼 두 달간 이어졌다. 대통령은 두 번씩이나 사과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물대포와 최루탄이 동원됐고 촛불시민들에 대한 무더기 사법처리가 감행됐다. 진압에 동원됐던 한 의경이 양심선언을 했다.
제게 있어 저항은 주체성을 가지고 제 삶을 만들어나가는 일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니고 자신의 삶의 색채를 더해가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은 누구에게든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억압하는 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지금껏 억압들에 대해 순응하며 살아온 제 삶을 내던지며 저항을 통해 제 삶을 찾아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촛불 집회가 계속되는 한편에서 노동자들의 긴 고통의 시간도 이어졌다. 2008년 5월에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힘겨운 싸움이 진행형이었다. 그해 5월 16일은 기륭전자1000일, 재능학습지 150일, 뉴코아 330일, 이랜드 330일, KTX 승무원 800일 투쟁을 기록했다. 그 시간 동안 그녀들은 1인 시위, 점거투쟁, 단식, 3보 1배, 삭발 등 안 해본 것이 없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와 징계를 받고 구속, 수배, 민형사상 손해배상청구와 형사고발 등 받을 수 있는 고통은 다 받은 그녀들은 이렇게 외쳤다.
그들이 ["우리는 더 이상 1회용 소모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당한 인권을 가진 노동자입니다." 이 한마디를 지키는 일에 왜 이렇게 힘들고 긴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탄식할 때, 그래도 우리는 그 탄식이 보여준 그들의 투쟁에서 움트는 희망을 봅니다. … 이제 우리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버틴 이 작고 여린 희망에 힘을 모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노동부와 검찰과 회사 스스로가 불법 파견을 인정하고도 그에 대한 피해를 복원하지 않는 회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법을 만들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어처구니없는 국회를 우린 또한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우리가 지금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면, 비정규 법안을 바로잡는 일에 나서지 못한다면 우리도 시대의 죄인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 희망은 연대로 오는 것임을, 어둠은 끝내 희망으로 오는 빛을 이길 수 없음을 확인합시다.(2008년 5월 16일, 기륭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농성 투쟁 1000일, 1000인 선언문)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진전을 오랫동안 호의적으로 봐왔던 국제인권단체들이 염려의 눈길로 바뀌어 한국의 인권상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국제앰네스티(AI) 등이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긴급호소와 권고 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들끓는 분노로 일어선 이상, 사람들은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귀 기울이지 않는 지도자들은 분명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2008년 5월 연례보고서 발표 기자회견, 아이린 칸,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2008년은 시작에 불과했다. 2009년 새해 벽두의 용산 참사, 한여름 쌍용자동차에서의 대규모 정리해고, 생수와 의약품의 반입까지 가로막힌 77일간의 공장점거파업, 그리고 이어진 살인진압이 남긴 상흔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두 사건은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규와 "함께 살자!"는 호소를 남겼다.
예술인, 종교인은 진선미를 추구한다.고통받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진실은 임기가 없다. 임기 후에 보자!치부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드러나면 비틀거리게 될 것이다.
같이 살자는 상생의 요구가 묵살되고 일부만이라도 살아남자는 정글의 법칙이 관철된 것이 쌍용차 노동자가 아닌 누군가의 성공일까요? 인권이 설자리를 잃고 경제적 계산만이 남은 자리에서 소수가 살아남았음을 합리적인 해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러 분야의 인권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공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해 감시‧비판하라고 만든 국가인권위원회마저 퇴행을 거듭했다.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21% 조직축소를 단행했고 '무자격자'란 별칭을 얻은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임명됐다. 정권의 인권위 무력화는 현실이 되었고, 국가인권위는 피디수첩 사건, 촛불시위 등 정권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북한인권만을 유독 강조했다. 현병철은 이명박 정권 말기에 연임되기까지 했다.
5년 내내 국가인권위에 대한 비판과 반발이 끊이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그중 하나의 사건은 수상거부였다. 2010년, 국가인권위가 세계인권의 날에 수여하는 상을 받게 된 수상 예정자들이 "인권위는 상을 줄 자격이 없다"며 수상거부를 한 것이다.
인권에세이로 선정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많은 내용들이 '언론, 표현의 자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위가 직접 선정한 작품들에서 이야기하는 인권의 '반도 못 따라가고 있는' 인권위의 모습을 제대로 돌아보아야 한다. 인권위원장으로서 자격이 없는 현병철 위원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온 것에 대해 책임지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나마 우리를 술렁거리게 한 것은 '희망버스'의 출현이었다. 2011년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 만에 내려온 김진숙 씨의 고공농성을 지지하기 위해 전국에서 여러 차례 희망버스가 모여들었다. 왜 숱한 이들이 그 버스에 올랐는지를 김진숙 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2차 희망버스 때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평택에서 부산까지 걸어서 왔습니다. 물집이 터져 온통 상처투성이가 된 저 발들을 사진으로 보면 생각했습니다.저들은 어떤 마음으로 걸었을까? 15명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묻은 저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을까?3차때는 우리 조합원들이 쌍용차에서 자전거를 타고 부산까지 왔습니다. 지친 해고자동생의 자전거에 끈을 묶고 달리던 비해고자 형의 사진을 봤습니다. 형은 동생이 얼마나 안쓰러웠을까요. 동생은 형한테 얼마나 미안했을까요.최루액, 물대포를 맞고 곤봉에 찢겼던 그 무서운 밤을 보내고, 애가 타는 거리를 두고 돌아서야 했던 그 무참한 낮을 보내고, 다시와준 여러분 전 여러분이 참 눈물겹습니다.
'혹시나, 혹시나' 하다가 '결국'이었다. 2012년 3월 7일 구럼비 바위 발파가 시작됐다. 달려가 본 현장은 아비규환이었고 지금도 24시간 공사강행으로 아비규환일 것이다. 보다 못한 이들이 최근 11월 말에는 강정해군기지 예산안 통과를 막겠다고 한겨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머리를 깎고 단식노숙농성을 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대선이 끝났고 그 예산안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할지가 새 정권이 내놓는 우리의 인권과 자연을 향한 대답의 시작일 것이다.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너는 부서지고 깨어져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너의 슬픔 너의 아픔 너의 피눈물 고통과 함께 한단다.~♬ ('강정아' 노래가사, 강우일 주교 글, 권성일 곡)
대선과 더불어 실시된 보궐선거로 당선된 서울시 교육감의 첫마디가 '학생인권조례를 시급히 손보는 것'이라 한다. 거리에서 학생인권조례 발의를 위한 서명 운동에 발을 동동거리며 갈증과 배고픔을 참던 숱한 얼굴들이 아른거린다. 9만 7천여 명의 주민발의로 성사된 서울학생인권조례를 간단히 손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 어린이‧청소년 인권조례까지 통과된 마당이다. 인권에 대한 의무에는 '역행과 퇴행의 금지'라는 것이 있다. 지금 손보겠다는 인권의 주인인 아동이 이런 말을 했었다.
가끔 어른들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에 먼저 다가서면 '넌 아직 애라서 안돼' 라는 말과 '넌 못 하는거야' 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어린 저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런 말을 들으면 많이 속상합니다.
지난 5년 숱한 장례식을 지켜봐야 했다. 23분의 쌍차 노동자와 가족들, 박지연, 황유미, 이윤정, 김주영 ….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노동자들과 활동보조인 없이 화마에 쓰러져 간 장애인뿐만이 아니다. 살인단속에 쫓겨 다치고 병든 이주노동자들, 일제고사와 경쟁강화에 자살한 청소년들,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고 애도하지 못한 죽음, 살아 있을 때 그 손을 붙잡지 못한 죽음들이 너무 많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서울 대한문 앞에 '함께 살자!' 농성장이 들어선지 한 달이 넘었다. 이들의 요구엔 늘 '대선 이후에'란 답이 돌아왔다. 이제 그 때가 왔다. 이제 '이후'는 없다. 지금 우리의 삶이 요구하는 바에 대답해야 한다. '함께 살자'를 고민하면서 나는 아래와 같은 구호들을 지어보았다. 내 컴퓨터 한 귀퉁이에 저장돼 있던 것인데 오늘 아침 문득 열어보고 싶었다.
함께 살자! 서로 돌보자! 쫓겨난 이들을 제자리로!
선거기간 동안 숱한 약속과 다짐이 있었다. 지키지 않는 게 차라리 좋을 약속도 있고 꼭 지켜야 할 약속도 있다. 그들이 약속을 내건 대상 속에 과연 나와 동료들이 끼는 사람인지 끼지 않는 사람인지조차가 고민이 되는 오늘이다. 잠시 후 평택 쌍용차 앞 송전탑에 올라있는 노동자들을 응원하러 가는 버스가 대한문에서 출발한다. 그렇게 지금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다. 나와 우리의 자리를 지키고 우리의 돌을 함께 굴리련다. 봄이 올까란 물음은 오래오래 간직한 채.
(이 글은 "MB정권 5년 동안의 외침들"이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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