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이글은 한겨레21 2012-1230일자 제942호 기사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를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밭’이 좋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4월 총선과 12월 대선 패배… 파도가 아니라 조류의 흐름을 살펴본 ‘2012 야권 멸망의 해’

졌다. 야권이 이기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2012년 두 번의 선거에서 모두 졌다. 야권 지지자가 받은 충격이 크다. 아무리 밥을 먹어도 남는 불가해한 공복감 속에서, 그들은 조용히 숟가락을 들었다가 밥을 남기고 일어선다. 축젯날 캠프파이어 장작처럼 타던 정치적 열기는 12월20일부터 보이지 않는다. 2010년과 2011년의 선거 승리를 기억하는 야당 지지자들은 2012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생각한다. 은 지난 5년 동안 야권의 승리와 패배를 되돌아보기로 했다. 개별 선거운동의 잘잘못을 따지는 정치공학보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를 짚고자 했다. 파도의 움직임이 아니라 조류의 흐름을 찾고 싶었다. 진보언론 스스로 패배의 일부였으므로, 그 작업은 타고 남은 장작을 마취하지 않은 맨손으로 헤집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냥 만졌다. 장작 잿더미 아래 불씨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위해서. _편집자

이겨야 정상이었던 건 1972년 대선의 미국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2012년 대한민국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들 정도다. 1960년대는 진보와 대중운동의 시대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냉전이 시작됐다. 자유와 진보를 주장하면 빨갱이로 비난받았다. 1968년부터 여러 민권운동이 벌어졌다. 먼저 흑인 민권운동. 진보언론 대접을 받는 (뉴욕타임스)가 처음으로 흑인 기자를 뽑은 게 1945년이다. 흑인들은 1965년에야 투표권을 획득했다. 도처에 인종차별이 상존했다. 베트남전 반대운동과 여성운동. 최초로 선거권 연령이 18살로 낮아져 젊은 유권자가 변수로 여겨졌다. 베트남전 반대를 명확히 내건 민주당 내 진보파 조지 맥거번이 경선에서 승리해 대선 후보로 뽑혔다. 가수 존 레넌 등 많은 진보적 명망가들도 민주당을 지지했다. 맥거번은 대패했고 보수 공화당 리처드 닉슨이 재선에 성공했다. 닉슨은 이후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cy)이라 비판받았다. 미국 민주당과 시민사회는 예상치 못한 선거참패에 충격에 빠졌다. 진보적 정치 에너지도 급격히 사그라졌다.

» 12월20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고개를 수그렸다. 상처는 깊고 화두는 오래갈 것 같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시민들의 진보적 에너지→야권 대선 패배’는 정확히 2008~2012년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개별 선거 캠페인 대신, 주요 사회적 사건과 선거를 조금 높은 산에서 관찰하면 뚜렷해진다. 관찰은 2007년의 잿더미에서 시작되어야 옳다. 2002년 대선에서 1201만4277명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표를 줬다. 더 왼쪽에 있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95만7148표를 받았다. 5년 뒤 참여정부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진보는 매력을 잃었다. 2007년 대선에서는 688만6802명만 진보개혁 후보에게 표를 줬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1149만2389표를 얻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찍은 355만9963명까지 고려하면, 압도적인 보수의 귀환이었다. 2008년 총선에서도 89석(범진보개혁) 대 184석(보수)으로 참패했다. 자민당이 수십 년간 장기 집권했던 일본처럼 ‘보수정치의 고착화’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야권이 승리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야권이 분열된 것도 아니고 사실상 완벽하게 단일화되었다. 이것은 구조나 조건의 문제라기보다 선거를 승리했어야 할 야권이 못해서 진 것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여전히 패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학자, 정당인, 정치부 기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우려에 반대되는 사건이 잇따랐다. 정치적 에너지 분출이라 부를 만하다. 2008년 5월부터 수개월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이어졌다. 민주당은 물론 진보정당조차 시민들의 자발적 정치 에너지에 개입하지 못했다. 정치적 에너지가 분출되는 사건이 더 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전국에서 5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추모했다. 2011년 가을부터 2012년 여름까지는 ‘안철수 현상’이 벌어졌다. 정치 신인 안철수 전 안랩 대표가 유력한 대선 후보로 지지를 받았다.
야권은 정치 에너지의 덕을 봤다. 2010년 6·2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겼다. 야당은 왼손에 ‘무상급식 등 복지’라는 비전과 오른손에 ‘야권 단일화’라는 전술을 들고 승리했다. 거기까지였다. 정작 이겨야 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졌다.
왜 졌을까? 지금 한국 진보개혁 세력처럼, 1972년의 미국 민주당도 답을 알지 못했다. 맥거번 자신도 대패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대선 패배 직후 인터뷰에서 르포 작가 헌터 톰슨이 “득표 차이가 왜 그렇게 컸는지 생각해본 적 있느냐”고 묻자 맥거번은 “여전히 패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당대 어떤 정치학자와 언론도 설명하지 못했다. 공화당 닉슨이 진보적인 복지정책을 획기적으로 받아들인 점, 반전이 이슈인 상황에서 공화당이 어렴풋하게 베트남전 종식을 내건 점, 진보의 시대에 침묵했던 보수의 반격, 맥거번에 패배한 다른 민주당 정치인의 배신 등이 근거로 거론됐다. 물론 닉슨은 당선 직후 베트남전을 종식시키기는커녕 북폭을 강화했다.
한국의 야권은 왜 2012년에 몰락했을까? 진보적 에너지가 진보개혁적 정당의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결과는 분명하다. 민주통합당의 공천 기득권 논란, 통합진보당 사태, 김용민 막말, 안철수 전 후보와의 단일화 파열음 등 일련의 사건도 분명 눈에 띈다. 에너지와 제도정당 시스템 사이 회로 어디가 끊어진 것일까.

담론만 있고 디테일은 없고

일단 2012년 총선·대선 모두 야권이 이기는 게 자연스러웠다는 의견이 많다. 속칭 밭이 좋았다는 말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대선 전 정권이 바뀌는 게 필요하다는 유권자 여론조사가 정권이 안 바뀌어도 좋다는 의견보다 많았다”며 “야권이 승리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야권이 분열된 것도 아니고 사실상 완벽하게 단일화되었다. 이것(대선 패배)은 구조나 조건의 문제라기보다 선거를 승리했어야 할 야권이 못해서 진 것”이라고 말했다. 고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의 진단도 비슷하다.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무상급식 등 진보적 의제와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대중적 에너지가 선거 안으로 들어오자 선거 지형이 바뀌게 되었다. 4·11 총선 직전까지만 해도 그 에너지가 활발하게 작동했던 것 같은데 총선과정에서 그게 꺼졌다. 총선도 그렇고 대선도 정치세력(야당)의 전략적 실패가 크다.”
제도정당이 에너지를 이용하려고만 했을 뿐,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공통적으로 지적된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생경제 대책을 전면에 부각시켜야 하는데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다투는 사이에 ‘민생이 정치 혁신이다’라고 치고 나간 건 바로 박근혜 후보였다”고 지적했다.
박상훈 대표는 패배 이유로 △붉은색 로고 채택 등 새누리당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혁신을 한 것 △야당은 담론만 있을 뿐 디테일이 없는 점 △민주당 당내 경선 후유증이 치유되지 않아 당이 움직이지 않은 점 △4·11 총선 때 김용민 막말과 대선 때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지나친 언행으로 보수표 결집을 부른 것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된 중도층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점 등을 거론했다.
‘밭이 변했다’는 반론도 있다. 최태욱 한림대 교수는 12월20일치 (한겨레) 대담에서 “정치 지형이 바뀐 것 같다. 저출산·고령화 시대다. 50~60대가 늘어가고 20~30대는 적다. 확대해석하면 보수가 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혼자 단독과반을 하거나 집권할 수 있다는 환상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훈 대표나 고원 교수와 다른 전제 위에 서 있다.
야권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비슷하고 야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민주당, 진보정당, 시민사회, 안철수 지지세력 등이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원론적 지적이 나온다. 고원 교수는 “민주당, 안철수 캠프, 진보정당, 정당 바깥의 진보적 시민사회를 다 아울러도 (야권의) 정치적 역량이 여전히 약한 것 같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철수 현상이 새로운 형태의 리버럴들이 출현한다는 걸 보여줬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정치의 이행기라 민주당 사람들이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리버럴 세력으로 거듭나지 못했다. 대단히 심각한 총체적인 위기라고 봐야 한다.”-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야권이 혁신했구나’라는 믿음 줘야

패배 뒤에는 늘 노선 논쟁이 뒤따른다. 이번에도 그럴 게다. 당 노선을 중도로 틀자는 견해든, 선거 전술 차원에서 중도층을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이든, ‘중도’ ‘리버럴’ ‘자유주의’ 등의 단어가 한동안 야권의 화두가 될 것 같다. 일본식 ‘자민당 1.5당제’(자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해 야당이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정치 지형)에 대한 우려가 다시 나온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12월21일치 (한겨레) 대담에서 “한국 민주주의의판을 바꾸지 않는 한 (야권의 대선 패배가) 되풀이될 것이다. 보수가 압도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집권이 1.5정당제로 가는 건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새로운 리버럴(자유주의 세력)’의 등장을 강조했다. “안철수 현상이 새로운 형태의 리버럴들이 출현한다는 걸 보여줬다. 기존 진보의 고정관념에서 유연한 북핵관, 경제관을 가진 그룹들이 부분적으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정치의 이행기라 민주당사람들이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리버럴 세력으로 거듭나지 못했다. 대단히 심각한 총체적인 위기라고 봐야 한다.” 고원 교수는 “(야권이) 진보와 개혁이 포괄하지 못하는 세력이나 대중의 반감과 비토정서를 대선에서 해소하지 못했다”면서도 “그러나 4·11 총선 이후에도 그렇듯 ‘중도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 되고 자기 혁신의 문제를 해결해서 사람들에게 ‘정말(야권이) 혁신했구나’라는 시그널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겨야 했던 건 미국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게 하나 있다. 맥거번은 닉슨에게 선거인단 기준 520 대 17로 대패했다.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대통령의 득표율 차이는 3.6%(약 108만 표)다. 박상훈 대표는 “더 걱정은 진보 쪽 사람들이 이번 선거를 이길 거라 생각해서 진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 상태가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이게 문제가 뭐냐면 선거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패배의식이 커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현실은) 보수 우위 체제가 아니고 보수가 다수가 아닌데 (패배주의가) 진보적 유권자들을 너무 불활성화 상태로 만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고원 교수도 “진보개혁 세력이 성찰·쇄신해서 정비하면 미국 진보세력이 2004년 패배 뒤 2008년 정권 교체했던 것처럼 (야권이) 좋은 결과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보수 진영의 정치적 미래가 진보에 비해 더 밝은 게 아니다”라며 ‘한국형 1.5당 체제’ 가능성을 잘라 비판했다.

이길 거라 믿었는데 진 선거, 상처 더 커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살아 있는 것만이 위로가 된다. 지식인들의 해석은 아직 야권 유권자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잔치 뒷날 불 꺼진 캠프파이어 장작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처럼, 문재인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은 고개를 떨구고 서성인다. 장작 아래 온기가 남아 있는지는, 시간이 가르쳐줄 것이다.

참고 문헌 (미국사산책 10)(강준만·인물과사상사), (72년 대선의 공포와 증오)(Fear and loathing: on the campaign trail 72·헌터 톰슨·워너)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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