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당신이 지금 교사라면, '스마트폰 절도' 생활기록부에 적겠습니까?


이글은 2012-12-30일자 기사 '당신이 지금 교사라면, '스마트폰 절도' 생활기록부에 적겠습니까?'를 퍼왔습니다.
[학생부장일기37] 학교생활기록부 인플레를 벗어나려면

겨울방학이다. 보충수업에다 자율학습까지 학기 중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과지만, 아이들에게 방학은 지난 1년을 차분히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학교 공부 때문에 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과외 활동을 짬을 내 할 수 있는 더없는 기회이기도 하니, 아이들에게 방학은 학교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활력소다.

교사의 방학 일정 또한 수업을 하고 자율학습을 감독해야 하는 처지니 아이들과 대동소이하지만, 방학이 없다면 하기 어려운 매우 중요한 업무가 몇 가지 있다. 올해 수업을 반성하고 다음 학년도 수업을 설계하는 것은 기본이고, 수업 능력 함양과 생활지도 방법에 관련된 다양한 연수에 참여하는 일도 방학이 아니면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챙겨야 할 게 바로 아이들의 1년간의 생활을 담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를 작성하는 일이다. 주로 담임교사에게 부과된 일이긴 하지만, 생기부의 영역에 따라서는 학교의 모든 교사의 원활한 협조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확인할 수 있는 학교의 사실상 유일한 공식적 기록이므로,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신경이 곧추서게 된다.

주소나 가족사항 같은 개인정보와 출결상황을 확인하는 것부터 진로희망·수상과 봉사활동 실적·학업성적·독서활동기록... 나아가 행동발달상황과 종합의견에 이르기까지 점검하고 기록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학생 개인의 학교생활 일체가 총망라돼 있는 것인데다 대학입시에 우선 반영되는 중요한 판단자료인만큼 오타 하나 나오지 않도록 꼼꼼하게 확인한다.

있는 그대로 적었을 뿐인데 '막말' 하는 학부모


▲ 체벌이 사라진 현실에서 교사로서 생활기록부는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되기도 한다. ⓒ sxc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저녁시간인데도 퇴근하지 않고 책상 위에 관련 자료를 수북이 쌓아놓고 일일이 확인하면서 생기부에 입력하는 교사들을 보노라니 몇 해 전 생기부로 인해 겪은 가슴 아픈 경험이 떠올랐다. 제자와 그의 부모가 생기부에 기록된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며 수정해달라고 요구한 일이다. 그 아이의 1학년 때 담임이었는데, 2년이 지나 졸업을 앞두고 원서를 쓸 즈음 자신의 생기부 출력물을 들고 부모와 함께 다짜고짜 찾아온 것이다.

내용인즉슨 이랬다. 그 아이는 학업성적도 우수하고, 교내외의 각종 경시대회 실적도 많아 다른 친구들에 비해 생기부 기록 내용이 풍성했다. 그런데, 그의 생기부의 유일하다시피 한 '흠'이 있다면 지각이 많고 다른 친구들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다는 기록이 남았다는 점이다. 1년 내내 아침 조회가 시작된 다음 등교하기 일쑤고, 청소시간에 무슨 일이 맡겨지든 제대로 해내는 법이 없었으니 그렇게 적은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와는 같은 청소구역을 맡지 않길 바랐고, 어쩔 수 없이 함께하게 되면 그냥 '투명인간' 취급하며 그의 몫을 다른 친구들끼리 나눠서 했다. 그러면서도 수행평가 보고서를 집에 두고 올라치면 감점당하기 싫어 점심시간에도 밥을 굶은 채 외출증을 끊어 집에 다녀오는 열의를 보이는, 거칠게 말하자면, 철저히 제 잇속만 챙기는 그런 친구였다.

학년 말 생기부에 '있는 그대로'를 적었다. 아무렴 미우나 고우나 담임교사였는데, 이기적이라든지, 게으르고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며 직설적으로 기록할 수는 없었다. 그저 지각이 많았다는 사실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다소 부족하다고만 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것들만 보완된다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 있는 시민이 될 수 있으리라 적었다.

그런데, 그와 부모는 '어찌 담임교사가 자신이 교육한 제자에게 배려심이 부족하다고 쓸 수 있느냐'고 따져 물은 것이다. 그것도 50년 동안 보존되는 법정 장부인 생기부에. 화를 억누르지 못한 탓인지 '아이의 앞으로의 인생이 이것으로 인해 피해를 받게 되면 당신이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는 '막말'도 쏟아냈다.

너무나 안타깝고 솔직히 적잖이 화도 났지만 정중한 자세로 요구를 거절했다. 2년 전의 기록인데다 사실을 왜곡한 것도 아니니 수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 아이 담임교사 시절 또래 친구들 대부분과는 지금까지도 이따금 전화를 주고받는 등 돈독한 사제관계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 일이 있은 후로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아이와는 연락이 끊겨버렸다.

그때는 아이와 부모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 옳았다고 확신했지만, 솔직히 지금이라면 많이 망설였을 것도 같다. 생기부의 기록 역시 교육 행위의 일환일진대, 그것으로 아이의 습관과 행동이 교정될 수 없다면 사제간의 '감정의 앙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교사의 한결같은 바람일 텐데, 생기부 기록이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을 낙인찍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학교생활기록부식 표현 : 소심하다 → 신중하다나태하다 → 여유로운 성격 지녔다이기적 성격 → 자신의 일에 몰두하면 다른 것에 거의 신경 쓰지 못한다

체벌이 사라진 현실에서 교사로서 생기부는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소란스러운 학급 분위기를 다잡을 때도, 몇몇 막 나가는 아이들을 겁줄 때도 "학년 말 생기부 기록할 때 보자"며 을러대는 건 나름 효과가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 순간을 제어하려는 '협박성 멘트'일 뿐 실제로 학년 말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1년 내내 담임을 괴롭힌 몇몇 아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벼르고 있다가도, 실제로 생기부를 정리해야 할 학년 말 컴퓨터 자판 앞에만 앉기만 하면 화가 봄에 눈 녹듯 풀려 버리곤 한다. 인지상정인지는 모르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담임교사가 아무리 제자가 못마땅하기로서니 어떻게 나쁘게 적겠느냐는 '자기 검열'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심하다는 '신중하다'로, 나태하다는 '여유로운 성격을 지녔다'라고 적고, 이기적인 성격은 '자신의 일에 몰두하면 다른 것에 거의 신경 쓰지 못한다'고 표현하고, 괴팍하고 엉뚱한 경우에는 '창의력이 뛰어나고 용기 있다'고 기록한다. 수업 시간 떠들지 않으면 '집중력이 좋은 것'이고, 무슨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호기심이 많고 적극적'이라고 적는다.

한창 커가는 아이들의 행동을 긍정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과장되고 편향된 까닭에 일선 학교현장에서는 이를 흔히들 '생기부 인플레'라고 부른다. 이러다 보니 몇몇 머리 굵은 아이들은 담임교사는 물론, 교과 담당 교사들을 찾아가 자신의 생기부에 이렇게 적어달라며 내용을 꼼꼼하게 적은 메모지를 건네기도 한다.

교사 입장에서 생기부에 어떻게 적어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 입장에서야 제 입맛에 맞는 내용이 기록되는 것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그러나 아이들 스스로의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만한 내용을 생기부에 적는다는 것이 황당할 뿐만 아니라, 교사 고유의 평가권이 훼손되는 것이기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무너진 생기부 신뢰도, 해법은...

일각에서는 고등학교 생기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고들 한다. 그것은 일선 고등학교의 내신 성적 부풀리기만을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단순히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인플레'로 인해 여러 생기부 기록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판에, 계량화된 성적조차 부풀려지면 도대체 입시전형에서 뭘 보고 판단하느냐는 볼멘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애먼 고등학교 교사들만 탓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우선 생기부 자체의 한계가 뚜렷하다. 일례로 특정 과목을 한 학기에 끝마치는 집중이수제 등 교육과정의 다양화를 반영해내기 어렵다. 말하자면, 단위 학교마다 학년별 교육과정 운영이 차이가 생기는데, 전학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다. 행정적으로야 뭘 못할까마는 교육적인 접근이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생기부의 독서활동기록 영역은 교사에게는 다소 황당한 업무다. 수많은 아이들의 독서활동을 일일이 확인하고 수준을 점검해 교사의 시각에서 기록한다는 건 애초 무리다. 고작 아이들이 남긴 괴발개발 독후기록에 짧은 평을 다는 수준이거나, 아예 교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적어줄 수밖에 없다. '독서활동기록 자체가 소설'이라는 말이 떠도는 이유다.

생기부의 봉사활동영역도 '봉사'의 의미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시간 기록'만 남은 지 이미 오래다. '확인서'야 마음만 먹으면 어느 기관에서든 쉽게 구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 입시를 위한 의무화된 봉사활동 시간 채우기는 식은 죽 먹기다. 소중한 가치를 상실한 채, 아이들에게도 교사에게도 생기부 기록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어디 이뿐일까.

이러한 생기부 기록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변화해야 한다. 우선 오직 입시전형자료로 쓰기 위해 대학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계량화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학교 안팎의 교육활동 일체를 점수화하려는 순간, 추구해야 할 가치는 사라지고 숫자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기성세대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는 편견을 벗어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미성숙한 존재라며 아이들에게 투표권도 주길 꺼려하면서, 학창시절의 그릇된 습관과 치기, 심지어 실수 한 번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건 누가 봐도 잔인하다. 코흘리개 아이도 우리 사회는 한 번 낙인찍히면 재기가 불가능한 곳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이걸 대체 기록할지 말지 확신이 안 선다며 한 동료교사가 도움을 청해왔다. 학급 아이 하나가 스마트폰을 훔친 죄로 선도위원회에 회부돼 닷새간 일과 중에 교내 청소를 한 사안이다. 이미 깊이 뉘우치는 데다 피해 학생과 학부모가 용서를 한 마당이지만, 다른 아이들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저 교과부가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며 강조하는 학교폭력과는 다른 사안이라고만 말하고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생기부에 '절도'라는 두 글자를 주홍글씨처럼 남길 수도, 그렇다고 아이들의 잘못에 대해 무턱대고 용서, 곧 기록상 묵인할 수도 없는 현실에서 교사들의 고민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서부원(erne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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