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역사'가 없는 이유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12-26일자 기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역사'가 없는 이유'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이동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공식 개관행사가 열리던 26일 오후 광화문에서 이동기 서울대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를 만났다. 그는 졸속으로 진행된 박물관 건립준비나 다양성을 무시하는 정부의 일방적인 태도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미 개관에 앞서 진행된 ‘사전개관행사’에 참가해 박물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난 후 그의 심기는 더욱 불편해져 있었다. 

“박물관은 싸이의 말춤을 보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을 오는 경기장은 더더욱 아니지요. 지금 대한민국 공동체의 정체성을 성찰하고 미래지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이 ‘성찰과 고민’이 없습니다. 이곳에 오느니 차라리 싸이 뮤직비디오나 2002년 월드컵 영상을 한 번 더 보는 편이 더 낫습니다”

 
ⓒ제공 : NEWSIS 역사정의실천연대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앞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졸속 개관 중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헬무트 콜과 이명박의 차이 대한민국과 독일의 차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100대 국정과제에 따라 약 448억원을 들여 광화문 옛 문화체육관광부 청사를 리모델링해 건립한 국내 최초의 국립 근현대사 박물관이다. 이동기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건립한 역사박물관이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의 집'과 여러모로 닮아있고 또 여러모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1983년 서독의 헬무트 콜은 집권하자마자 현대사 박물관을 짓겠다고 나섰습니다. 보수정권의 노림수였지요. 이명박 정권이 집권과 동시에 박물관을 짓자고 나선 것과 유사한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우리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당시 콜 정부는 ‘위대한 독일의 성공과 긍정적인 민족사’를 다룬 현대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 독재나 민족학살과 같은 어두운 과거는 묻어두고 싶었다. 마치 이명박 정부가 민주화를 빼고 경제성장의 ‘신화’를 강조하기 위해 박물관을 건립하려던 것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콜 정부의 시도는 장벽에 부딪혔다. 역사는 ‘성공’과 ‘실패’가 아닌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에 따른 다원적인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특히나 국가범죄와 인권유린 등의 사회갈등은 시대상의 반영이며 이를 성공과 실패로 재단할 수 없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여론은 콜 정부에게 불리한은 방향으로 흘러갔고 결국 정부는 비판의견을 받아 들여야 했다. 

수백명에 달하는 역사학자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의견서가 배포됐고 이들의 주장은 같은 학자들이 주축이 된 ‘학술자문위원회’에서 검토, 추진됐다. 박물관 개관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독일 국민들은 1994년이 되어서야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의 집’을 가질 수 있었다. 1983년 개관 추진 발표 이후 12년 만이었다. 

총체적 부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국은 독일과 달랐다. 수십명의 역사학자들이 주축이 된 ‘학술위원회’에서 모든 것을 총괄하며 전문성을 담보했던 독일과는 달리 한국은 역사검증과 전시계획 전반에서 학자들이 철저하게 배제됐다는 것이 이동기 교수의 지적이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대통령이 위촉한 29명의 건립위원회가 사업을 추진했다. 이동기 교수는 “29명의 건립위원중 각 부처 차관들이 10명에 달했고 19명의 민간인사들 중에서도 역사학 전공자는 4명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전문성이 결여된 부실 박물관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박물관 건립의 뼈대가 됐던 연구용역도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었다. 이 교수는 “연구에 참가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경제학자나 군사전문가 등으로 분류될 만한 사람들이었다”면서 “엄밀한 의미의 한국현대사 연구자들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일부 학자들에 대해서는 이름을 거론하며 “뉴라이트계열이라고도 볼 수 없는 듣보잡”이라고 맹비판했다. 

ⓒ제공 : 청와대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개관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이들 연구자들이 불과 두 달여 만에 1천페이지가 넘는 용역보고서를 작성. 제출했고 보고서의 70%가량을 차지하는 해방 이후 현대사 부분의 감수자가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였다는 것이 이동기 교수의 설명이다. 

전문성의 결여는 곳곳에서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이동기 교수는 "창피한 수준"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이동했다'는 식의 초등학교 역사책 수준의 서술이 버젓히 전시되어 있는가 하면 명백하게 사실과 다른 설명도 있었다”고 개탄했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설명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고 4.19 혁명 설명은 한쪽 벽면에 무미건조하게 나열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아주 기본적인 역사검증 조차도 부실로 진행된 탓이었다.

건립초기부터 제기됐던 '편향성' 논란을 피해하기 위한 꼼수 역시 '창피한 박물관'을 만드는데 한몫했다는 것이 이동기 교수의 지적이다. 이 교수는 “졸속으로 진행된 연구용역 결과 마저 올해 국정감사 기간에 야당위원들의 질타에 수정에 수정을 거치면서 박물관은 맥락과는 전혀 맞지 않는 전시배치를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술이 아예 없다거나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사실이 누락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갑작스럽게 박물관에 배치공간을 늘리거나 줄이면서 더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동기 교수가 박물관을 둘러본 결과 1960년대를 설명하는 공간에 느닷없이 등장한 남북관계에 대한 설명은 7.4 남북공동성명과 6.15, 10.4 선언으로 이어지고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까지 한꺼번에 서술되는 "쌩뚱맞은"결과를 낳았다. 

이 교수는 졸속과 전문성 결여가 결과적으로 역사박물관에 ‘역사’가 사라지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단순히 유물과 문서만을 나열하면서 ‘정체성 논란’에서는 자유로워 질 수 있었을지 몰라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설이라는 박물관 본연의 역할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행동전에 나서야 할 때”

이동기 교수의 지적대로 전문성과 역사성이 결여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7일 부터 시민들을 맞는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바로잡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황에서 앞으로 적어도 5년간은 지금 이대로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매일 매일 시민들을 맞을 것이다. 이동기 교수는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움직임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역사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보다 전문적이고 역사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재조명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 이동기 교수의 주장이다. 역사학계와 박물관 관계자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단체 혹은 기타 조직을 통해 구체적인 행동전에 돌입하자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재조명 작업의 결과물을 전시회 형태로 기획해 서울역사박물관이나 서대문형무소 등 가능한 공간을 활용, 일반에게 공개하고 전국순회를 갖는 등 여론전에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이미 개관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대한 광범위한 ‘보이콧 운동’도 제안했다. 역사학자는 물론 역사교사등과 연계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이교수의 지적이다.

홍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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