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깔때기’ 정봉주 감옥 갔다 오더니…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2-30일자 기사 '‘깔때기’ 정봉주 감옥 갔다 오더니…'를 퍼왔습니다.

정봉주 전 의원이 29일 오후 서울 북촌의 한 찻집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정봉주 전 의원 출소 후 첫 인터뷰
 “성찰 없인 살아남지 못해…국민 행복해진다면 선거 져도 돼
”87년 넥타이부대였던 50대를 우리가 내치지는 않았는지…
‘48% 지지’ 반성으로 지켜내고 ‘51% 반대’ 공감으로 다가가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진지해졌다. 특유의 독설이 사라졌다.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깔때기’도 줄었다. ‘반성하는 정봉주는 재미없지 않으냐’는 질문에 “지금 성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답했다.29일 서울 종로구 북촌의 한 찻집에서 출소 뒤 첫 언론 인터뷰에 응한 정봉주 전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성원한다며 야권의 자성을 촉구했다.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는 게 진심이냐고 재차 물어도 “진심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 전 의원은 “박근혜 당선인이 집권하니까 이민을 가겠다거나 실정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다. 박 당선인의 성공에 국민들의 삶이 달려 있다. 진심으로 성공하길 바라고, 그들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다 실현해 국민들이 행복하다면 다음 선거에서 져도 상관없다. 우리(민주당)는 나름대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또 “성공의 가장 기본적 조건은 생각이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박 당선인이 만일 쌍용차 농성촌과 고공농성장을 찾게 되면 민주당으로선 정말 싸우기 힘든 상대가 된다. 우리로선 뼈아프지만 그렇게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25일 출소하자마자 첫 행보로 서울 중구 대한문 옆 농성촌을 찾은 바 있다.정 전 의원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48%의 지지를 얻은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 “선전했다”고 평가하면서도 “48%가 정말 우리 표인가. 민주당이 언제 48%의 지지를 얻어봤나. 우리가 이 지지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민주통합당 의원 한명 한명이 내가 잘못했다고 반성해야 하는데, 겉으로는 반성한다고 하고선 안에서는 서로 남 잘못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정 전 의원은 “(문 후보를 지지한) 48%를 지키는 것은 반성이고,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한) 51%에게 다가가는 것은 공감”이라는 말도 했다. “박 당선인을 찍은 50대는 6월 항쟁 때 넥타이 부대였고, 2002년 노무현을 찍었던 사람들이다. 혹시 우리 사회가 그 세대를 존중하지 않고, 지금 있는 곳에서 나가라고 하지 않았는지 뼈아프게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세대를 떠나 박근혜 당선인을 찍은 51%에 대해 야권이 너무 몰랐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가 51%를 너무 몰랐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복기해야 한다”고 밝혔다.야권의 주요 패인에 대해 정 전 의원은 다양한 의제를 이끌어내지 못한 데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5년간의 실정을 심판하려면 전선을 넓혔어야 했다. 의원들 한명 한명이 대선 후보만 따라다닐 게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싸워야 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환경, 물가, 양극화, 교육, 등록금 등으로 전선을 넓히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다.민주통합당을 비롯한 개혁진영의 진로와 관련해선 약자를 보호하고 기득권에 맞설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과 정권은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한다. 노동자 탄압이 21세기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반면 투쟁의 방식은 아직 그대로다. 상대가 정말 난감하게 생각하는 투쟁의 방식은 쌍용차 해고자를 상담하는 ‘와락’의 활동이나 재능기부, 문화공연 같은 것”이라며 앞으로 이런 투쟁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정 전 의원은 비비케이(BBK) 주가조작 의혹 폭로에 대해 “전혀 후회하진 않지만, 다시 맡는다면 더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비비케이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는 “당시엔 잘못이 있다고 말하는 것에만 급급했다. 하지만 비비케이는 너무 어렵고 복잡한 사안이었다. 듣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얘기했어야 했다”고 회고했다.투옥되기 전까지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를 진행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나꼼수를 했다. 비판하는 국민이 많아지면 정부는 절대 엇나갈 수 없다. 물론 나꼼수의 여러 한계가 있지만, 기존 언론이 다루지 않은 것을 쟁점화했다는 점에서 대안언론의 움직임은 계속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1년간 감옥생활을 했지만 그의 표정은 인터뷰 내내 밝았다. 정 전 의원은 “감옥에서의 1년은 하늘이 내게 준 기회였다. 나꼼수 하다가 총선에서 당선됐으면 스스로를 연예인처럼 생각했을 거다. 감옥 안에서 독서와 운동에 열중하면서 자신을 가다듬었다. 나중엔 내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나 착각할 정도였다”며 웃었다.정 전 의원은 앞으로 9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그는 상관없다고 했다. “좁은 의미의 정치를 못할 뿐, 넓은 의미의 정치는 계속할 수 있다. 내년 1월에 책을 출간할 계획이고, 지역에서 시민사회기구를 만들어 공익적인 일을 도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에 그는 “이젠 정치가 국민들에게 웃음을 줘야 한다. 나처럼”이라고 덧붙였다. 특유의 ‘깔때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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