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보수언론은 왜 이틀을 못 참았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27일자 기사 '보수언론은 왜 이틀을 못 참았나?'를 퍼왔습니다.
[기고] 지금은 '적자 재정'이 정답이다

1.

보수언론은 단 이틀을 참지 못했다. 선거가 치러진 지 하루가 지나고 21일 아침부터 보수언론은 일제히 이구동성으로 박 당선자에게 공약은 잊어버리라고 주문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공약의 재앙도 걱정해야", 조선일보 칼럼은 "반값세상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중앙일보 세상읽기는 "장밋빛 공약은 싹 잊어라"고 충고하고 나선 것이다. 한마디로 공약폐기 주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박근혜 당선자의 승리 요인 중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그녀가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으로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이미지를 구축한 것 아니었던가? 그런 당선자에게 선거과정에서 국민에게 수없이 반복하고 약속한 공약을 그야말로 잉크도 마르기 전에 헌신짝처럼 버리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포퓰리즘이 문제라는 거다. 공약은 유권자의 표심을 사기 위한 사탕발림일 뿐, 진짜 국정을 행함에 있어서는 신중하고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남발한 공약을 다 지키려 한다면 나라가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특히 각종 지역개발사업이나 이권집단에 대한 공약들은 철저한 타당성 검토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처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것에 대해서는 이를 지키려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핵심 공약을 자의적으로 방기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조롱하는 것이고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정부의 거짓과 부패로 인한 공적 권위의 와해와 이에 따른 사회적 신뢰의 부족은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요인이다. 핵심공약에 대한 경솔한 접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박 당선자가 여당의 환골탈태를 주도하면서 새로운 정책노선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공약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보수언론이 공약폐기를 들고 나온 저의는 사실 뻔하다. 성장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의 해악을 뼛속 깊이 경험한 국민이 이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요구하고 있고, 보수정당을 대표하는 박근혜 당선자도 이를 적극 수용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수구 기득권 세력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이런 개혁적 공약을 공격하여 선거과정을 통해 표출된 민의를 무력화하고 기득권을 지키려 나서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라 하겠다.

우선 당장 떠오른 이슈는 재정건전성 문제다. 새누리당이 소위 "박근혜 예산"을 위해 적자재정 편성과 국채발행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자 보수언론과 논객들은 공약보다 재정건전성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도 때마침 최신 국제기준에 맞춰 나라 빚을 다시 계산해보았다면서 지난해 국가부채가 당초 알려진 것보다 48조원 이상 늘어났다고 발표하여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다. 야당은 조금 다른 시각이지만 국채발행보다 부자증세가 우선이라며 역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 유럽의 재정위기, 미국의 재정절벽 문제, 거대한 재정적자에 장기간 시달려온 일본 등을 보면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해부터 여야가 앞 다투어 복지정책을 내놓을 때 증세 등 재원마련 대책이 없는 복지정책은 근시안적 인기영합주의라고 거듭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재정건전성은 중장기적으로 유지해야 할 목표이지 결코 매년 매순간 지켜야 하는 원칙이 아니다. 국채발행은 중장기적 국가부채 관리방침에 입각해서 유연하게 결정할 문제이지 이를 무조건 재정건전성을 저해하는 해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민간 수요의 부족으로 경기가 침체되었을 때는 정부가 국채발행을 통해 과잉저축을 흡수하고 재정지출을 통해 수요를 팽창시키는 것이 매우 효과적인 처방이다. 이는 케인즈 경제이론의 핵심이며, 역사를 통해 수없이 반복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반정부 친시장 기조를 유지하면서 정부기능을 옹호하는 케인즈 경제학과는 거리를 두어왔던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에는 적극적 재정정책의 유효성과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총수요가 부족한 상황에서 재정건전성 원칙을 단기에 적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경기침체로 세수가 준다고 이에 따라 정부지출을 줄이면 경기는 더욱 악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이나 보수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영국에서 최근 재정긴축을 실시한 결과는 참담하다. 경기침체가 심화하고 실업률이 폭등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GDP 대비 국가부채가 오히려 증가하였다. 국가부채를 줄이려다가 경기악화로 GDP를 감소시켜버린 탓이다. 일찍이 미국에서 대공황이 발생한 후 후버 정부가 단기적으로 재정건전을 유지하려고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폴 크루그만은 (지금 당장 공황을 끝내자)라는 책에서 대공황 때는 몰라서 그랬다지만 지금은 알면서도 왜 긴축을 하느냐고 따져 물으며 재정확대를 주장하고 있다(Paul Krugman, (End This Depression Now), Norton, 2012). 필자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IMF가 긴축재정을 강요한 것을 비판한 한겨레신문 칼럼 (재정건전성의 신화)에서 동일한 논지를 펼친 바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2.

그렇다면 왜 수많은 경제학자나 정치인 또는 논객들이 적자재정에 반대하는가? 때로는 타당한 근거에 입각한 반대도 있지만 오해 또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반대인 경우도 많다.

한 가지 타당한 반대는 총수요 부족이 아닐 때 적자재정이 초래하는 부작용에 관한 것이다. 이 경우에는 적자재정이 물가상승과 이자율 상승이라는 매우 불쾌한 현상을 불러온다. 또한 정부지출이 민간지출을 밀어내는 구축(crowding-out) 효과를 초래하며, 이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물론 총수요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고, 재정확대가 생산과 소득의 증대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내년도 한국경제의 총수요 전망이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년도 성장률을 정부는 3%대 초반, KDI는 3.0%로 전망했으나 전망치가 계속 하향조정 되어왔다. 어쨌거나 이러한 전망치는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상당히 밑도는 것이다. 현재도 이미 경기가 매우 저조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는 내년에 한국경제가 심각한 총수요 부족 상황에 처하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거시안정화 정책 차원에서 국채발행과 정부지출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혹자는 지금 국채발행으로 흡수하려는 과잉저축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잉저축은 총수요 부족과 동전의 양면이다. 국민이 돈이 남아돌아서 과잉저축을 한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돈이 없어서 과잉저축을 한다. 60대 이상 소비성향이 IMF 위기 이후 최저라는 뉴스가 이를 말해준다. 지금도 없는데 앞으로 경제가 더욱 어려워질 것 같아 보이니 더욱 소비를 줄이고 있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 움켜쥐고 있으려 하는 것이다. 과잉저축의 또 한 측면은 소득분배다. 저축성향이 높은 대기업과 고소득층으로 소득이 집중됨에 따라서 경제 전체의 저축성향이 높아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다수 일반국민이 쪼들리는 현실이 과잉저축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재정적자에 대한 또 하나의 반대 논거는 우리가 흥청망청 돈을 쓰고 그 부담을 후대에게 물려주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호소력 면에서 가장 강력한 반대논거이지만 논리적으로는 전혀 말이 안 되는 엉터리 논거다. 이 주장이 호소력이 강한 까닭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도덕적 어필까지 있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 돈을 쓰면 나중에 빚 갚는 부담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을 터이고, 그 부담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부모는 더더욱 없을 터이다.

거시경제학이 일반인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개인이나 개별기업에 적용되는 당연한 논리가 국민경제와 같은 거시경제 시스템에는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은 부자가 되려면 저축을 많이 해야 하지만 모든 개인이 다 저축을 늘리면 소비수요의 감소로 인한 불경기와 소득감소만을 초래할 뿐이라는 '절약의 역설'이 비근한 예다. 국채발행으로 국가부채가 증가하면 미래 세대가 이를 갚기 위해 부담을 져야 한다는 생각도 개인의 사례를 시스템에 적용하여 발생하는 오류다.

우선 국가부채는 꼭 갚아야 할 이유가 없다. 기업도 사정이 어려워지지 않는 한 부채를 갚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출과 채권이 만기가 되면 자동적으로 재대출과 재발행을 하게 된다. 정부는 부도가 날 우려가 없기 때문에 (후술하는 특수한 상황 외에는) 당연히 국채 재발행이 가능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설사 정부가 추후에 채무를 줄이기 위해 일정부분 상환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후대의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이 채무상환 자금조달을 위한 세금을 부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돈은 그들 중 채권을 소유한 자들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따라서 채권상환 시점의 세대 안에서 소득의 재분배는 일어날지언정 그 세대 전체의 소득이 줄어드는 일은 전혀 없다.

물론 정부가 채무상환을 전혀 하지 않더라도 국가부채의 증가에 따른 이자비용의 증가는 피할 수 없다. 이는 분명 재정에 부담이 된다. 하지만 세금으로 조달하는 이자비용 역시 채권소유자에게 동일한 금액의 이자소득으로 돌아가므로 이는 후대의 부담이 아니다. 마치 한 집안 내에서 형제간에 발생한 채권-채무 관계가 미래에 그 집안의 소득 전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채 이자비용의 증가가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재정적 부담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는 해도 실질적인 경제적 비용을 초래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자비용 조달을 위해 세금이 증가하고, 조세부과는 경제적 유인을 왜곡함으로써 일정한 사중손실(deadweight loss)을 발생시킨다. 또한 정부지출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후대의 생산성이 낮아질 것이므로 그만큼 경제적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국가부채의 실질적 경제적 비용이 재정적자에 대한 세 번째 반대이유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비용은 적자재정으로 지출을 늘려 유발한 긍정적인 효과와 비교해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반대이유와 관련해서는 현재 조세의 수준과 국가부채의 크기, 그리고 적자재정으로 어떤 총수요 상황에서 어떤 지출을 하느냐 등의 문제를 따져보아야 한다. 기존 조세의 수준이 높을수록, 국가부채의 규모가 커서 이자비용 또한 클수록 위에서 말한 사중손실이 커진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조세부담률이 20%도 안 되는 매우 낮은 수준이고, GDP 대비 국가부채의 비율도 앞서 언급한 최신 국제기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02.9%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37.9%에 불과하다. 사중손실은 별로 우려할 필요가 없다. 특히 총수요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재정지출이 유발하는 긍정적 효과가 크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재정지출의 내용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처럼 낭비적이고 추후에도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재정적자에 대한 네 번째 반대 근거는 재정적자의 누적으로 국가부채가 커지면 국가신인도가 하락하여 이자율이 상승하고 심지어는 재정위기나 외환위기 등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일반적으로 타당한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GDP 대비 국가부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도 불구하고 매우 낮은 금리가 유지되고 있으며 재정위기나 외환위기의 조짐이 전혀 없다. 반면 일본보다 GDP 대비 국가부채의 규모가 훨씬 작은 남유럽 국가들은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으며, 과거 남미 등 여러 개도국에서는 뼈아픈 외환위기를 겪어야 했다.

결정적 차이는 국채의 보유자가 내국인인가 외국인인가에서 발생한다. 항상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해온 일본의 경우 대부분의 국채를 일본인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부도위험이 전무하다. 최악의 경우 일본은행이 돈을 찍어서 갚으면 되는 것이다. 국채의 부도위험은 없고 경제는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자율이 낮은 것이다. 남유럽 국가들의 경우는 사실 재정 부실보다 경쟁력 저하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어 외채가 증가한 것이 문제다. 즉, 국채의 많은 부분을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고 이 빚은 돈을 찍어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실질적인 부도위험이 생긴 것이다. 애초에 경쟁력 저하는 화폐통합 이후 외국자본이 쏟아져 들어와서 투기 붐이 일고 물가가 상승한 탓이니 결국 위기의 본질은 급격한 자본의 유출입이다. 화폐통합으로 환율조정이나 통화증발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자본유출이 이자율 상승과 재정위기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남미나 한국 등 외화로 돈을 빌리는 경우에 급격한 자본유출은 환율폭등을 초래하고 외환위기로 귀결된다. (미국은 국가부채도 크고 외국인 보유 비중도 크지만 기축통화국이라는 특수 지위로 인해 낮은 이자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은 개방소국은 재정적자 자체 보다는 그것이 경상수지와 외채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경제는 국내에 과잉저축이 존재하고 경상수지가 흑자이기 때문에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이런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많은 경우 재정적자에 대한 반대는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와는 관계없이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다. 경제에서 정부의 공적 역할이 확대되는 것을 막고 사적 이윤창출의 기회를 최대화하며 그 여건을 최적화 하고자 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복지의 확대나 공공부문의 확대를 반대하면서도 이를 내세우면 정치적 편향성이 드러나고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으니까 마치 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처럼 후대의 부담 운운하면서 스스로를 위장하는 것이다. 일찍이 케인즈와 동시대에 독립적으로 유효수요 이론을 개발한 칼레츠키는 완전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에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적절한 통화재정정책으로 완전고용 유지가 가능하지만 자본가와 금리생활자 등이 이런 정책을 반대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던 것이다.


3.

이상의 논의에서 필자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옹호하고 경기침체 시 적자재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채발행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대체로 근거가 없음을 주장하였다. 내년도 예산편성은 상당한 수준의 재정적자가 바람직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과 주장이 결코 방만한 재정운용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재정적자는 수요부족으로 경기가 침체되어 있을 때만 사용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호경기 시에 증세나 정부지출 억제 등 재정긴축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 재정적자가 누적되어 국가채무가 일정수준 이상으로 증가하면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실제적 비용 혹은 잠재적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한 논문에서 단기적으로는 유연하게 재정정책을 구사하되 중장기적으로는 재정건전성의 원칙을 지킨다는 관점에서 복지국가 건설의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유종일,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상호보완성과 추진전략", 최태욱 편,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후마니타스, 근간). "경기하강 시에 지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하여 복지확충과 경기부양 효과를 동시에 도모하고, 경기회복 시에는 조세를 인상하여 재원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복지의 혜택을 먼저 체감하도록 하고 난 후에, 그것도 소득이 증가하고 경기가 활성화되는 국면에서 증세를 실시한다면 조세저항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을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복지확대와 증세를 한없이 추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세부담률이 과도하게 높아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따라서 한정된 복지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재정정책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발생 후 국제공조 하에서 과감한 적자재정 편성으로 경기부양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그 내용은 몹시 잘못되었다. 지출확대보다 경기부양 효과가 작은 감세에 치중했으며, 감세 중에서도 특히 부양효과가 작고 사회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는 부자감세에 치중했다. 지출확대 면에서도 고용창출이나 효율성 면에서 최악인 '4대강 사업' 등 대형토목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낭비했다. 복지확대나 고용창출형 미래지향형 공공투자가 이루어져 경기부양 효과가 크고 그에 따라 세수 증대가 충분히 이루어졌을 경우와 비교해본다면 이명박 정부의 재정정책은 양극화 심화, 일자리 부족, 그리고 필요 이상의 재정악화를 유산으로 남겼다. 그래놓고 자신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갑자기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 차기정부의 손발을 묶는 행위는 참으로 부당한 일이라 하겠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내년도 경제상황을 감안하여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추진하되 중장기적 재정건전성을 위하여 향후 경기 호전시에 과감한 증세를 추진해야 하며 무너진 분배정의를 회복하기 위하여 고소득층과 자산소유계층의 세부담을 대폭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선거공약으로 내놓은 세출구조 개혁, 세정강화, 복지지출 누수방지 등은 당연히 추진해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만으로 재원확보가 어림없다는 것은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새누리당을 이끌며, 대선후보로 뛰며 주창해온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공약을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증세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야당에도 주문하고 싶다. 대선패배에 대한 성찰은 별도로 하고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여당이 갑자기 들고 나온 "박근혜 예산" 6조원 증액과 국채발행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심성 지역사업에 쓰이지 않을지, 낭비성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 우선 아닌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문제제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국채발행을 반대하고 증세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 정치적인 접근인 것 같다. 야당은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공약을 잘 이행하도록 감시하고, 더욱 효과적인 대안을 끊임없이 제기하기 바란다. 복지확대와 경기부양을 위한 적자재정에 더욱 적극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 대규모 증세와 관련해서는 경기회복 시기에 맞추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당과의 대화를 비롯해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일에 주력했으면 좋겠다.


 /유종일 KDI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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