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내 생의 짐과 멍에는 무엇인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종교전문 조현기자의 블로그 휴심정 2012-12-27일자 '내 생의 짐과 멍에는 무엇인가?'를 퍼왔습니다.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인 강제균 할아버지와 소. 사진 강재훈 기자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8~30).”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이들은 모두 나에게 오시오. 내가 편히 쉬게 하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시오. 그러면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

나는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행복한 일’이 없어서 인가? 아니면 ‘행복감’이 없어서 인가? 행복과 행복감이 같은 건가요? 평균 성적이 60점 밖에 못 받던 아이는 65점만 되어도 행복해 하는데 늘 1~2등을 다투는 아이들은 행복감이 없이 긴장으로 살아갑니다. 삶의 멍에와 무거운 짐도 그 자체가 불행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는 무엇이 무거운 짐이고 멍에인가? 번뇌와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이고, 우환과 불행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그것들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대면(對面)이 필요합니다. 내 삶의 정황들을 정확하게 목격하는 것이지요.

가정이나 사업에서나 내게 요구되는 것들이 고난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장애를 가진 자녀, 노부모의 치매와 병환, 부채, 알콜 도박 게임 중독, 저질러 놓은 사고...

돌발적이거나 일시적 사태는 누구나 기꺼이 감당합니다. 그러나 기약 없이 반복 지속되고 개선될 징조가 보이지 않는 압도적인 사태들은 정말 어쩔 수가 없습니다.

당해보지 않고서야 이해불급이지요. 허덕이고 지치고 좌절합니다. 무거운 멍에에 짓눌립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일까? 내 운명이나 팔자가 이런 걸까? 슬픔이고 분노이고 고통입니다.

내 무거운 멍에의 실체가 무엇이고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알고 싶다면, 이렇게 내 삶을 압도해 오는 사태들을 대면하십시오. ‘대면(對面)’이란 감정이 아닌 이성의 작용입니다. 슬픔이나 분노에 묶여서는 실체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냉철하게 관조하고 목격하는 것이 대면입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자기 성찰 능력’입니다.

자세히 바라보면 네 가지가 보입니다. 1) 내 행위에서 생긴 일 2) 내 행위와 상관없이 나에게 다가온 일 3) 현재 진행 중인 일 4) 앞으로 다가올 일 등입니다.

어떤 일이건 나와 어떤 상관이 있을 때만 내게 짐이 되고 멍에가 됩니다. 그러므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란 말은 성립이 안 됩니다. 제 3자라면 누가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이 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짐이 되고 부담이 되고 신경이 쓰여진다는 사실 자체로 나와 상관을 갖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런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짐이 되는 것은 두 가지 때문인데 ‘의무감’ 과 ‘두려움’ 입니다. 고통도 번뇌도 분노도 미움도 모두 의무감과 두려움에서 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의무감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의무감은 현재의 것이고 두려움은 미래의 유형이지요.

일어난 일, 내게 요구되는 일의 요청이 내 자신에게 있었건 가족에게 있었건 국가 사회로부터 왔건 간에 ‘내가 이 일을 해야 한다’ 혹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가 바로 의무감입니다. 의무감이란 법적 책임의 의무가 가장 낮은 단계이고 관습적 사회적 의무도 있고 도덕적 의무가 가장 고결한 의무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고 측은지심에서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도덕적 의무감이고요, 세금을 내고 군대에 가고 교통신호를 지키는 것은 법적 의무감이고요, 결혼을 한다. 부모님을 모신다. 관혼상제에 참석한다든가 하는 것은 관습적 사회적 의무감입니다. 의무를 피하면 뭔가에 걸리게 되므로 걸리지 않으려다보니 멍에로 느껴집니다.

두려움이란 아직 현실화 되지 않은 어떤 문제가 다가오고 있는 미래의 실체입니다. 부채 상환 독촉 날이 다가온다. 죄를 지었는데 밝혀질 것 같다. 내 자녀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직장을 잃게 되면, 승진에서 탈락되면... 일이 어떻게 될런지 알수 없는 미궁 때문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확정된 일이라도 현재로 실행되기 전까지는 미래의 일이니까 100%가 아닙니다. 미래의 일 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겠지요. 내 생애의 무거운 짐과 멍에는 무엇인가요?

의무감과 두려움 문제를 해결하면 짐이 가볍게 되겠지요. 가볍다는 것은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감당할 힘을 갖는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그 해답을 당신에게서 찾으라고 하십니다. “나에게 배워라. 내 짐은 가볍고 내 멍에는 편하다.”

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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