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노동자 죽이는 손배소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12-25일자 기사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노동자 죽이는 손배소'를 퍼왔습니다.
사실상 노조에 대한 ‘보복’, “쟁의행위를 손배소 대상에서 제외해야”

“내가 못 가진 것이 한이 된다.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 박근혜가 대통령되고 5년을 또...”

지난 21일 노조 사무실에서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최강서(35)씨 유서의 일부다. 노조에 사측의 전방위 압박이 최씨의 죽음을 불렀고, 특히 158억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이 큰 압박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국금속노조 부양지부 한진중공업 지회 최강서(35) 열사와 관련해 트위터에서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사진은 조문객이 끊이지 않고 있는 부산 영도구 구민장례식장 빈소 모습.

한진중공업 사측은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노조의 파업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며,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에 대해 158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200명 남짓의 조합원이 내는 한 달 평균 조합비가 7백여만원임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갚을 수 없는 액수다.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소송은 노조 입장에서는 존폐의 문제다. 사측이 손해배상액의 일부만 가압류를 해도 노조는 활동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다른 회사의 경우 아예 자산 압류, 경매 실시 등을 강행한 경우도 있어 노조에게 손해배상소송은 ‘경제봉쇄’로 받아들여진다.

회사측이 파업이나 노조 활동 등으로 인한 손실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이중 일부를 노조 또는 노조 간부나 조합원의 수입을 가압류 하는 행태는 이제 노사관계의 일반적인 풍경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본력이 취약한 노조와 수입의 대부분이 생계비인 노동자에게는 가히 살인적인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손배소는 노조에 대한 ‘경제봉쇄’.. 압류, 경매 실시도

지난 2010년에는 재능교육 사측이 노조와 간부의 자산을 압류해 경매까지 실시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노조 사무실의 컴퓨터, 프린터 등 집기는 경매로 팔렸다. 노조 차량과 강종숙 학습지노조 위원장 차량도 압류됐으나 워낙 오래된 차량이라 경매에서 팔리지 않아 지난 여름 반환됐다. 다행히(?) 유득규 당시 노조 사무처장의 자택은 감정가보다 채권이 많아 경매가 실시되지 않았다.

심지어 오수영 재능지부 사무국장 자택의 TV, 장롱 등 가재도구까지 압류돼 가족들이 충격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가재도구 경매는 노조 반발로 무산됐고, 서울 성북동의 재능지부 사무실은 다른 이의 명의로 돼 있어 압류를 피했다.

손배소와 가압류를 넘은 압류와 경매의 ‘쓰나미’는 2008년 사측이 ‘재능교육 본사 100미터 이내 점거 금지’ ‘사측 명예를 훼손하는 유인물·현수막 금지’ 등을 내용으로 법원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시작됐다. 법원은 이를 위반하면 회당 100만원을 회사에 지급하라는 가처분을 받아들였고 회사는 이를 노조와 간부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다행히 최근 노사 교섭이 시작되면서 손배 가압류 상황은 일단 가라앉았으나 노사관계가 틀어질 경우, 사측은 언제든 휘두를 수 있는 칼을 쥐고 있는 형국이다.

쌍용차 300억원대 손배소, 110억원 구상금도 해결 ‘시급’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갈등이 끊이지 않는 쌍용차 역시 대규모 손배소와 가압류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쌍용차 노조에 따르면, 노조와 간부들에게는 올해 9월 현재 총 300여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돼 있다. 노조는 회사측이 쌍용차노조와 금속노조 및 간부 개인, 연대단체 활동가 등에게 총 250억원의 손배소를 제기했고 대한민국 정부가 42억원, 경찰 120여명이 약2억원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메리츠화재는 사측에 지급한 보험료 110억원을 노조에 구상금으로 청구한 상태다.

노조 간부들은 임금과 퇴직금, 부동산 등이 가압류된 상태다. 쌍용차노조 한 관계자는 “가압류가 퇴직금에도 걸려있고, 아파트에도 걸려있다. 퇴직금도 한 푼도 못 받았다. 집행간부 아닌 평조합원도 가압류에 걸려 금융거래나 경제활동을 할 수가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때문에 쌍용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고자 복직 외에도 ‘경제적 징벌’에 대한 해결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파업을 비롯한 노조의 쟁의활동은 합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와 연이은 가압류, 압류와 경매 실시 등은 노조 활동 자체를 억누르는 무기로 작동하고 있다.

노조 간부들이 당장 자신에게 가압류나 압류·경매 등이 다가오지 않더라도 사측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 비수가 날아올 수 있다는 압박감이 생긴 것이다. 또 최강서씨처럼 노조 활동에 열성인 이들은 사실상 노조 활동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울분과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민중의소리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국금속노조 부양지부 한진중공업 지회 최강서(35) 조직차장의 유서 내용이 공개됐다. 최 씨의 유서에는 노조에 150억대 손배소를 제기한 사측에 대한 분노와 조합원들에 대한 호소 내용이 담겼다. 박근혜 당선자에 대한 우려도 포함됐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사측은 2003년도에도 노조비를 가압류한 뒤 조합원 개인에게 손배소를 제기했다. 한진중공업이 한두 번 그런게 아니다. 150억을 내려면 무려 조합원들이 꼬박 모아도 200여 년이 걸린다. 이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왜 없겠나”라고 말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선후보도 “노동자들이 손배 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다. 파업 한번 하면 가재도구 가압류되는 일이 재능교육 때 있었다. 한진중공업 김주익씨 올라가 스스로 목을 맸다”며 손배 가압류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경기비정규직지원센터 박치현 변호사는 “헌법상 보장된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민사법인 손해배상소송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노조의 쟁의행위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극히 보기 드물다”고 말했다. 일부 위법이 있더라도 전체적으로 쟁의행위라고 한다면,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행동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어 박 변호사는 “당장은 법원이 판례를 통해 현저한 위법이 아니라면 노동쟁의를 폭넓게 인정하고 보호해야 하고, 법 개정을 통해 일부 위법이 있더라도 전반적으로 노동쟁의로 판단되면 손배소나 가압류 등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희철·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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