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푸어의 난립과 제도권의 선택적 수용


이글은 미디어스 2012-12-30일자 기사 '푸어의 난립과 제도권의 선택적 수용'을 퍼왔습니다.
[2012년 결산기획③ 사회] : 노동자 생존권 투쟁 뒷전에 청년세대 포섭 빈번

편집자주> 다사다난이란 진부한 표현으로 늘 부족한 한 해가 또 저물어간다. 뭔가를 뺏긴 것 같은, 뭔지 모를 억울함과 허탈감의 시간 속에서도 누군가는 올 한해를 정리해야하고, 그 유산들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미디어스)가 아직 끝나지 않은 2012년을 결산한다. 대중문화, 정치, 미디어 이슈의 순이다. 들뜰 시간도 없이 훌쩍 이른 연말이지만, 부디 차분히 더듬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천의봉, 최경승 씨가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에 있다. ⓒ뉴스1

‘푸어’라는 언어가 난립했다. 올해 동안 사용된 말만 해도 하우스푸어, 에듀푸어, 렌트푸어, 웨딩푸어, 베이비푸어, 소호푸어, 실버푸어, 워킹푸어, 리빙푸어 등 십여 개에 이른다. 말인즉슨 집을 사도 그것 때문에 빈곤하고, 사교육 때문에 빈곤하고, 월세 때문에 빈곤하고, 결혼 때문에 빈곤하며, 아이 때문에 빈곤하고, 자영업을 해도 빈곤하고, 나이가 들어도 빈곤하고, 일을 해도 빈곤하며, 빚을 졌기 때문에 빈곤하단 얘기다. 한국 사회의 모든 행위가 ‘푸어’로 연결되고 있는 셈이다.

‘하우스 푸어’ 중심의 푸어 난립

하지만 이러한 ‘푸어 난립 현상’의 핵심에 ‘하우스푸어’가 있다. 하우스푸어엔 이중성이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자산증식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던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 기대한 만큼의 수익을 거두지 못하면서 개인의 경제생활을 힘들게 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하우스푸어’라 불리는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약자가 아님은 분명하나, 그들조차 ‘푸어’를 자처하게 된 현실이 한국 사회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이 ‘푸어’라고 지칭받게 된 현실은 한국 중산층/중간계급의 공포를 보여준다. 2010년에서 2011년까지만 해도 보수담론은 김광수 경제연구소 등이 주도적으로 민 ‘부동산 하강론’을 괴담으로 치부했다. 노무현 시대 말기에 정점을 친 집값을 감당하기 위해 빚을 끼고 아파트를 산 이들이 손해를 볼 수 있으리라는 점을 부정했다. 신문 지면은 건설업체의 영향을 받아 쓰여진 것만 같은 부동산에 대한 장밋빛 전망으로 넘쳐났다. 물론 중간계급들은 그러한 전망을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문제가 생기자 갑자기 그들만이 이 사회의 약자인 것처럼 대두되었다. 조중동이 대변하는 주요한 독자들이 투자에서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되자, 갑자기 그들의 투자 실패의 책임을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처럼 온 언론이 떠들기 시작했다. 물론 하우스푸어 문제를 전적으로 개인들이 감당해야 할 것으로 남겨두는 것도 현명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부채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해야 할 일을 아파트 경기를 정부가 떠받치거나 매입해야 한다고 얘기한다면 이는 ‘있는 자들의 투자실패’만 보존해주는 불공정한 국가기구를 요구하는 일이 될 것이다. 푸어가 난립하는 가운데 언론의 주목을 받은 하우스푸어 현상은 한국의 담론이 대변하는 계층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었다.

▲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지난 8월 16일 하우스푸어 관련 간담회를 주최한 모습 ⓒ뉴스1

빈소에서, 철탑에서 싸운 노동자들

‘푸어’도 때깔 좋은 푸어만을 취급하는 담론 환경에서 한국에서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한  해이기도 했다. 이명박 시대의 파업 이후 문제 해결이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수십 명의 망자가 나온 쌍용자동차 문제는 국회 청문회까지 갔지만 아직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작년 ‘희망버스’의 성공 이후 여러 시민들의 관심 속에서 투쟁을 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자들은 사측을 향해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는 취지의 철탑농성을 수십일 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을 제대로 된 협상테이블로 끌어내지도 못하고 있다. 법원은 그들에 대해 농성을 하려면 앞으로 한전에 하루 3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한 상태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가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빈번했다. 역설적으로 진보정당 운동이 지리멸렬해진 시점에 민주당 역시도 심각해진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중도층 유권자를 대변하게 된 시점에 ‘좌클릭’의 일환으로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들의 치유센터 ‘와락’을 방문하고 눈물 흘렸다. 쌍용자동차 국회 청문회에선 민주통합당 은수미 의원이나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 같은 야권 의원들만이 아니라 새누리당 의원들마저도 이 해고는 잘못된 일이라는 관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기업의 해고할 자유를 막지 말아야 한다는 방통대 김기원 교수와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 생각하는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 문재인 후보의 ‘좌클릭’이 선거를 망쳤다고 보는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 등 민주당이 ‘노동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움직임을 가지는 것에 불만을 가진 이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아마도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고 노동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가지려 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이들의 시선과 갈등을 빚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갈등을 빚을 기회도 없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당선인이 된 상황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있는 것 같다. 수 명의 노동자가 대통령 선거 이후 절망 속에서 죽음을 택했다. 물론 이는 대통령 당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손배가압류와 같은 파업노동자에게 가혹한 법적 제도가 여전히 실행되는 현실에 기인한다. 파업 도중에 사측에 손해를 끼쳤단 이유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금액을 노동자가 부담해야 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비극을 막기가 어렵다. 작년 ‘희망버스’의 투쟁의 성과 속에 현장복귀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마저 그 합의가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않아 고통받는 현실은 시민사회의 협조를 받은 노동운동 마저도 성과를 내기 힘든 이 사회의 현실을 드러내주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 문제가 어떤 식의 갈등을 낳게 될지 지금으로선 짐작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청년세대 포섭, 문제해결로 이어질 것인가?

▲ 지난 14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부산시 '우중 유세'에 동참한 손수조 전 새누리당 의원 후보와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의 모습 ⓒ뉴스1

그러나 2007년 대선 정국에서부터 ‘88만원 세대’라는 호명을 받은 청년세대에 대한 정치권의 포섭은 어느 때보다도 빈번했다. 대표적으로 하버드대학 출신의 벤처기업 경영인인 이준석이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으로 활약하고 대선 정국까지 박근혜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청년유니온의 초대 위원장인 김영경 역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활약했다.
정치권이 청년세대 포섭에 들어간 상황은 지난 몇 년간 주요한 사회문제로 호출된 청년문제에 대한 대응이란 점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멤버의 포섭이 있을 뿐 구체적인 정책 프로세스가 실행되지 않는다는 점에선 우려되는 지점도 적지 않다. 특히 청년문제를 청년정치인의 육성으로 대체한 현실은 청년문제가 가지고 있는 사회문제의 복합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그 결과 청년세대의 부모세대라 볼 수 있는 50대들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느끼게 되었고 이들의 정치적 의사가 이번 대선에서 적극적으로 표출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 정치권은 또 다시 50대들의 문제에 주목하게 될 것인데 이런 방식의 대처가 ‘임기응변’ 내지는 ‘주먹구구’에 가깝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이러한 측면을 잘 지적한 것도 이준석 위원이었다. 그는 대학등록금 문제를 ‘청년세대’ 문제가 아니라 그 부모세대의 문제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박근혜 당선인 역시 청년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공약을 낸 만큼 그것을 어느 정도로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다. ‘청년세대 포섭’이 ‘청년 정치인의 포섭’을 넘어 실질적인 사회문제 대책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여부는, 내년에도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한윤형 기자  |  ahrima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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