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대변인이 밀봉 봉투 뜯고 그대로 읽은 ‘깜깜이 인사’


이글은 경향신문 2012-12-27일자 기사 '대변인이 밀봉 봉투 뜯고 그대로 읽은 ‘깜깜이 인사’'를 퍼왔습니다.

ㆍ인선 배경 묻자 “잘 모른다”… 보안 중시에 검증 소홀 우려ㆍ“연말 영화제 시상식 온 듯”

2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4층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들어섰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1차 인선 발표를 맡은 윤 수석대변인이 A4 용지 크기의 노란 서류봉투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테이프로 밀봉된 봉투를 뜯어 열고, 인선 내용이 담긴 종이 3장을 꺼냈다.

윤 수석대변인은 내용을 잠깐 훑어본 뒤 읽기 시작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연말 영화상 시상식 하나”라는 말이 나왔다. 발표가 끝난 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명단을 언제 받았느냐’는 질문에 윤 수석대변인은 명단이 든 봉투를 들어 보이며 “밀봉을 해왔기 때문에 저도 이 자리에서 (뜯어보고) 발표를 드렸다”고 했다. ‘명단을 지금 받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인사에 있어서 보안이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저도 지금 여러분 앞에서 공개했다”며 웃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윤창중 수석대변인(오른쪽)이 27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인수위원장과 부위원장 등을 발표하기 위해 밀봉된 봉투를 뜯고 있다. | 박민규 기자

기자들은 인수위원회와 국민대통합위, 청년특별위의 조직상 지위나 자문기구 여부,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과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지위체계 등을 물었다. 윤 수석대변인은 “동급이냐 아니냐 그런 개념이 아니다” “구체적 하이어라키(체계)는 말하기 어렵다” “제가 아는 내용이 없다”고 답변했다.

윤 수석대변인은 추후 인수위원 발표 시기도 “(박 당선인이) 밀봉해서 주시면 발표하겠다”고 했다. 인선 기준 가운데 ‘애국심’ 항목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는 “평가 기준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상 아무런 답변도 못한 셈이다.

‘밀봉 시비’가 일자 윤 수석대변인은 “명단을 받아서 밀봉은 내가 했다”며 “(인선 내용을) 미리 복사해서 (기자들에게) 나눠준다면 오후 2시 엠바고를 서로 100% 지키겠느냐. 내가 발표하고 복사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내용을 파악해 알리기보다는, 박 당선인에게 ‘보안을 지켰다’는 점을 확인시키는 것을 중시한 셈이다.

그는 이날 오전에도 인수위 인선 발표 시간과 장소를 묻는 질문에 “모른다”고만 했다. 앞서 지난 24일 당선인 비서실장과 대변인단 임명 때 박선규 대변인은 “속보가 나오기 10분 전에 연락받았다”고 할 정도였다.

진영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왼쪽)과 김상민 인수위 청년특별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박민규 기자

박 당선인의 ‘깜깜이 인사’ 스타일은 보안을 유지함으로써 인사의 혼선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비밀리에 사람을 고르다보면 걸러야 할 것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잘못된 인선을 할 위험성도 많다. 또 당선인이 일방적으로 인선하고 그 배경이나 의미조차 알려주지 않고 발표케 하는 것은 전형적인 ‘불통’ 인사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당 관계자는 “수석대변인조차 인선 배경과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국민과 소통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보안을 중요시하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인사를 잘하는 것이 최종 목표일 텐데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