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8일 화요일

[사설]시대착오적 관권선거 망령 되살아나나


이글은 경향신문 2012-12-17일자 사설 '[사설]시대착오적 관권선거 망령 되살아나나'를 퍼왔습니다.

경찰이 그제 밤 11시쯤 ‘국가정보원 직원 불법선거운동 혐의사건 중간수사 결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인터넷 댓글을 단 혐의로 고발된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컴퓨터에서 댓글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자료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 후보가 마지막 TV토론에서 이 문제로 공방을 벌인 뒤 1시간여 만에 배포됐다. 살인·유괴 같은 강력사건이 아닌 한 심야에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경찰의 대선 개입 의혹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지난 13일 김씨가 컴퓨터 2대를 제출했을 때 경찰은 “분석에 1주일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수사결과는 사흘 만에 나왔다. 경찰은 2대의 하드디스크만 분석했을 뿐 포털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은 조사하지 않았다. 김씨가 휴대전화와 이동식 저장장치(USB), 타인의 컴퓨터 등을 통해 댓글을 올렸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 부분은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김씨의 온라인 ID와 닉네임이 40개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는데도 추가 수사 가능성을 사실상 일축했다. 더욱 보기 민망한 것은 수사결과 발표 과정을 둘러싼 경찰 내 난맥상이다. ‘심야 기습 발표’의 주체를 두고 서울경찰청과 수서경찰서 측의 말이 수시로 바뀌었다고 한다.

5년 전 17대 대선 때는 검찰이 선거판의 ‘키 플레이어’ 노릇을 했다. 이명박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과 관련해 ‘이 후보의 형 상은씨 소유가 아니다’라면서도 실소유주는 밝히지 않는, 모호한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검찰은 이 후보의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도 무혐의 처리하며 이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추락한 위상 탓에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경찰이 이를 틈타 선거국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행태가 경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국정원은 대선을 이틀 앞둔 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발언 여부와 관련된 자료를 검찰에 제출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 자료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포함됐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만약 자료에 ‘대통령 지정기록물’이 들어 있을 경우 국정원의 제출행위는 실정법 위반이 될 소지가 크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거나 관할 고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한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열람과 제출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도 어제 문 후보의 4대강 사업 관련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고 한다.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기관들이 여당 대선 후보의 도우미를 자청하고 나선 것인가. 시대착오적 관권선거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행태는 유권자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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