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2일 수요일

국정원을 어찌할 것인가


이글은 시사IN 2012-12-12일자 기사 '국정원을 어찌할 것인가'를 퍼왔습니다.
지난 5년간 국정원은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대북 정보 수집은 실패했고, 정권 안보에만 신경을 썼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선 주자들이 국정원 개혁 문제를 주요하게 다뤄야 한다.

문정인/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90820 시사IN 한향란

이번 대선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후보들의 공약이 사뭇 비슷하다는 것이다. 외교안보 분야 공약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신뢰 혹은 평화 프로세스를 통해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한·미 동맹을 유지하는 가운데 중국과의 관계도 중시하겠다는 견해이다. 그래서일까. 주요 두 후보가 똑같이 간과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국가정보원 개혁 문제다. ‘국가 안보의 첨병’이자 ‘최후의 보루’라는 국정원이 현 정부 임기 동안 심각한 난맥상을 보였음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은 그간 여러 문제로 도마에 오른 바 있다. 대북 정보 실패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국정원은 김정일 사망 후에도 공식 발표 전까지 그 징후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새 지도자 김정은이 대동하고 나타난 젊은 여인의 정체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했다. 천안함 피폭이나 연평도 포격 같은 사건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사이 국정원의 전통적인 고유 업무 가운데 하나였던 북한 측과의 비공식 채널은 사실상 망실되고 말았다.

게다가 지난 5년간 국정원 해외 파견 요원들이 주재국 정보 수집보다는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북한과 연계된 재외국민이나 외국인 활동을 견제하는 데 더 열심이었다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권위주의 체제의 관행이 되살아난 듯한 분위기다. 

오늘날 국정원의 난맥상은 촛불시위에 대한 MB 정부의 트라우마로부터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집권 2개월 만에 발생한 촛불시위가 100일 이상 지속되면서 정권은 존립 자체에 위협을 느꼈고, 어린 학생들까지 시위에 참가하자 청와대는 경찰과 국정원에 그 배후를 찾아내라고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나섰다. 존재하지 않는 배후를 찾기 위해 애쓰던 정보기관의 발걸음은 곧장 정치적 반대 세력으로 향했다. 2009년 2월 인사청문회에서 “정치가 체제 전복세력의 침투 대상이므로 (국정원이) 정치 정보를 수집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한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 후보자의 말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보기관이 나서서 집권 세력 비판을 헌정질서 위협으로 인식하는 우를 범한 셈이다. 

이렇게 문제의 본질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정권 안보와 국가 안보를 혼동하는 일이다. 대통령이나 정보기관 수뇌부가 이러한 오류에 빠지면 ‘국가정보목표 우선순위(PNIO)’ 설정에서 국내 보안을 대북 정보나 해외 정보 수집보다 우선시하는 실책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국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철칙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 개인의 호불호에 구애받지 않고 객관적인 자세로 국익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MB 정부에서 이 원칙은 크게 흔들렸다. ‘북한 붕괴론’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설령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붕괴론에 집착한다 해도 국정원은 그런 생각이 과연 타당한지 검증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MB 정부의 국정원은 오히려 상부의 인식에 편승해 북한의 붕괴를 촉진하는 대북 심리전 공작에 매진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 과정에서 북한 관련 부서들은 축소·폐지됐고, 이전 정부에서 활약했던 상당수 전문가들은 ‘부역세력’이라는 오명을 쓰고 옷을 벗어야 했다. 대북 정보 실패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정보 업무와 무관한 대통령 측근이 요직 독차지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정원의 사유화 경향이다. 역대 정부가 모두 대통령 측근을 국정원에 포진시켰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 정부처럼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다. 거의 5년 내내 정보 업무와는 무관한 대통령 측근들이 원장을 포함한 주요 보직을 독차지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승진과 보직에서 전문성보다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우선되는 분위기 속에서는 국정원이 정권 안보를 위한 기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문제가 이렇다면 필요한 ‘진짜 개혁’의 방향 역시 분명하다. 먼저 국가 안보와 정권 안보 사이의 구분이 법률적으로 명시돼야 하며 국가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도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또한 해외·대북 정보 기능과 국내 보안 기능을 분리하는 과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해외·대북 정보 기능이 국내 보안의 볼모로 잡히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산업 스파이와 사이버 해킹, 국제 범죄 등 다양한 영역까지 뻗어 있는 업무 범위도 다른 부서에 넘겨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전문성 없는 인사를 정권 핵심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국정원 주요 보직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에게 맡겨도 좋을 만큼 그간 국정원은 능력과 열정이 뛰어난 훌륭한 인력을 키워왔다. 이제는 이들에게 국정원을 돌려줘야 할 때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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