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3-05-06일자 기사 'SNS는 그들만의 ‘확성기’였다'를 퍼왔습니다.
소셜 네트워크 데이터를 통해 지난 대선 결과를 분석해 보았다. 트위터에 유입되는 사람은 다양해지는데, 문재인 후보 측의 ‘허브’들이 그들을 수용하지 못했다. ‘회색인’을 아우르는 정치 비전이 필요하다.
2012년 12월19일 오후, 한 방송사의 생방송 데스크에 앉아 대기하는 나에게 PD가 급한 손짓을 했다. 밖으로 나오니 담당 기자가 사과부터 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미 당선자가 거의 확정된 상황이라, 더 이상 대선 방송에서 양 후보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는 게 데스크의 판단인가 봅니다. 생방송 진행은 힘들겠습니다.”

소셜 네트워크 데이터를 통해 지난 대선 결과를 분석해 보았다. 트위터에 유입되는 사람은 다양해지는데, 문재인 후보 측의 ‘허브’들이 그들을 수용하지 못했다. ‘회색인’을 아우르는 정치 비전이 필요하다.
2012년 12월19일 오후, 한 방송사의 생방송 데스크에 앉아 대기하는 나에게 PD가 급한 손짓을 했다. 밖으로 나오니 담당 기자가 사과부터 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미 당선자가 거의 확정된 상황이라, 더 이상 대선 방송에서 양 후보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는 게 데스크의 판단인가 봅니다. 생방송 진행은 힘들겠습니다.”

ⓒ시사IN 조남진
아 그렇게 되었구나…. 나는 전날 트위터의 상황을 떠올렸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을 때 전 세계에서 애도하던 트윗들보다 많던 버즈 양(언급 횟수)…([그림 1]). 한국은 그야말로 정치의 나라였다. 투표 하루 전날 트윗의 대부분은 문재인 후보 지지였고, 나는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의 이런 전무후무한 열기가 실제 어떻게 반영될지가 궁금했다. 사실은, 선거 기간 내내 마음을 괴롭히던 의문이 남아 있었다. 나는 회사의 프로그래머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과값이 나왔나?” “아직….”

나는 트위터에서 보이는 야권 지지 성향이 사회 전반의 여론을 그대로 반영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특정 행태의 변화를 보면 지지율의 움직임이 어떠할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추정할 수 있었다.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버즈 양이나 리트윗 건수, 혹은 긍정·부정의 센티먼트(sentiment:심리)는 아니었다. 더구나 공론장에서 조직적인 여론 조작이 이루어질 때 그런 기초 지표를 신뢰할 수는 없었다. 다른 대안으로 사람들의 유의미한 행태를 반영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제로 사람들이 주요 트윗을 얼마나 ‘읽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단순히 팔로어 숫자를 더하는 방식이 아니라 복잡한 컴퓨터 계산 알고리즘이 동원되었고, 결과는 투표 당일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내게 전해졌다. ‘RT 최상위 트윗, 읽은 사람 약 60만명. 차상위 트윗부터 읽은 사람 40만명 안팎….’ 진보 성향의 트위터러가 약 60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도층에게까지 메시지가 파급되지 못한, 평소보다도 저조한 임프레션(실질 구독자 수)이었다. 게다가 평균 임프레션은 훨씬 더 저조해서 투표 전날 최고점에서 8만명에 채 미치지 못했다([그림 2]).
결국,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이 여러 개의 트윗을 올리며 전무후무하게 ‘열’을 내고 있었던 셈이다. 사회운동 연구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열광자(zealot)는 있었으나 그들에게 동조하는 중도층은 얇았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며칠 후, 나는 회사의 연구원들에게 대선 과정의 데이터를 다시 체계적으로 분석할 것을 주문했다. 야권의 대선 패배 원인을 두고 앞으로 이런저런 말들이 무성할 테지만, 온라인 소통의 관점에서 야권을 지지하던 행위자들이 보인 행태에 어떤 한계는 없었는지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참신한 광장에서 식상한 확성기로
이런 필요성을 느낀 데에는 내 개인적인 체험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1년여 동안, 트위터를 쓰는 것이 갈수록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들을 새로이 알게 되면서 신선한 체험을 했던 초기와는 달리, 어느새 매번 보는 ‘확성기’들이 담론을 주도하고, 여러 ‘소리통’들이 예외 없이 그들의 말을 퍼 날랐다. 참신했던 광장의 사교 모임은 어느새 ‘명사’(혹은 파워 트위터리안)로 불리는 사람들이 확성기를 잡고 점점 식상해져가는 소리를 쏟아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올해 4월9일,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원회는 (패배 원인 분석과 민주당의 진로)라는 대선 평가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서 평가위는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의 대선 패배 원인으로 계파정치의 만연과 협력의 실종, 부실한 내부 거버넌스, 조직으로서 두뇌 기능의 정지, 수뇌부의 근거 없는 자신감, 과학적인 유권자 조사의 실종, 안철수와의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잘못 설정된 소통 프레임 등을 꼽았다.
타당한 결론으로 여겨졌으나,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찾아내야 하는 컨설턴트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내가 불편했던 주된 이유는, 해당 보고서가 ‘앞으로 민주당이 정신을 차리고 잘 하면 유권자가 저절로 지지해줄 것’이라는 규범적 당위론의 가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유권자가 ‘군자의 도리를 행하면 저절로 따르는 백성’과 같은 상수 값일까? 적어도 그간 내가 분석해온 데이터들은 ‘아니다!’라고 아우성 치고 있었다.
무엇이 변했을까? 대선 기간 ‘문재인’ 버즈를 2011년 10월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을 키워드로 한 트위터 버즈의 평균 임프레션과 비교하면 일단 한 가지 차이가 두드러져 보인다. 서울시장 선거 막판 열흘 동안 임프레션이 꾸준히 올라 투표 전날 평균 45만명이 트위터의 멘션을 보고 있었다([그림 3]). 한국의 트위터 사용 인구가 1년 후인 2012년 12월(대선 즈음)의 3분의 2에 채 미치지 못했을 때 나온 기록이다.
결과의 검증과 해석을 놓고 몇 가지 오해를 사전에 방지해야겠다. 첫째,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트리움의 소셜 버즈 모니터 결과를 요약하면, 박원순 시장이 소셜 공간에서 특별히 자기 캐릭터(이미지)를 잘 만들었거나 소통을 잘 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아니었다. 박원순이 문재인보다 두드러지게 더 매력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오히려 선거 초기에는 나경원 후보 측의 네거티브 캠페인(호화 아파트 전세 논란 등)이 소셜 여론에서도 박 후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선거 막판에는 그런 네거티브 프레이밍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나경원 후보에게 부메랑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나꼼수’ 등 대안 매체가 같은 프레임을 사용해 ‘×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억대 피부과 의혹 보도 등) 스토리의 이슈들을 실어 날랐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선 때 평균 임프레션이 현저히 낮아진 이유를 새로이 대거 유입된 트위터러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특히 조직적으로 동원된 트윗 계정들이 겨우 수백 명 안쪽의 팔로어를 가졌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 지적은 일견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트리움의 구독자 수 추정이 단순히 팔로어 수에 의존하지 않고 최고 임프레션도 정체되어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어마어마한 극소수의 ‘열광’이 과연 대다수 평범한 사용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보았다.
기초 통계분석과 달리, 소셜 미디어 생태계의 네트워크 분석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가 얼마나 공유되고 있는지를 정량화할 수 있다. 이 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클러스터링 계수(clustering coefficient) 등의 지표를 통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쉽게 표현하자면, 링크로 연결된 친구들이 그들 사이에서도 서로 링크로 연결되어 있을수록 클러스터 계수는 높고 따라서 사회적 응집력도 강해진다. 나는 선거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이런 사회적 자본의 링크(link)로 리트윗보다는 멘션(대화)을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람들이 멘션으로 박원순이나 문재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한 소통 네트워크를 비교한 결과, 과연 어떤 특징이 나타났을까? 결론만 얘기하자면, 문재인의 경우 추석을 기점으로 대선 때까지 클러스터링 계수에서 0.5를 계속 밑도는 반면, 박원순의 경우에는 꾸준히 0.5 이상을 유지했다. 즉 문재인 후보의 멘션 네트워크는 소통과 공유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뉴시스 지난해 9월26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왼쪽)가 골목상권 간담회에 참석해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요컨대, 서울시장 선거 기간에는 새롭고 다양한 사람들의 적극적이고 균등한 참여가 꾸준히 늘어나는 한편 이에 맞춰 클러스터링 계수도 증가했으나, 대선의 경우 전체 선거 기간 중 안철수의 후보 사퇴 이전까지 이렇다 할 참여의 증가 없이 기존 지지자에 의한 일방통행만 계속되었다. 요컨대, 문재인 캠프의 경우 대선 과정에서 기존 행위자들의 (식상한) 확성기 담론과 단일화 과정의 실망감으로 인해 소셜 공간에서 필요한 사회적 자본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셜 미디어는 문 후보의 선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나마 대선 기간의 대부분을 고작 20%대의 지지율에 머물렀던 문 후보의 막판 지지율 급증과 트위터상 문 후보에 대한 긍정적인 멘션 곡선은 정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역시 비록 부정 여론이 있더라도 시종일관 긍정 여론이 대부분의 기간을 압도했던 박원순 후보 때와는 중요한 차이가 발견된다. 특히 대선 1차 텔레비전 토론 이전까지, 문재인이 주요 대선 후보였는데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화두(positive)보다는 상대적이고 무색무취한 이야기(neutral)들이 주종을 이룬다( 참조). 그가 직접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텔레비전 토론 이전까지 그만의 확실한 캐릭터와 리더십 전달에 실패해왔으며, 그나마 선거 후반의 개인적 선전과 박근혜 거부층의 위기감이 막판 소셜 미디어에서의 자발적인 지지를 견인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소셜 데이터를 분석한 내용을 정리하자면, 문 캠프 처지에서 보았을 때 사실은 추석 이전부터 이루어졌어야 할 사회적 자본의 결집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문 후보의 캐릭터를 정립하고 어필하기 위한 조직 차원의 성과가 선거 기간 내내 부진한 것으로 드러나며, 선거 후반에 들어서야 유권자들이 경쟁자인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말아야 할(딱히 문 후보를 지지해서라기보다) 이유를 찾고 결집했다.
SNS에서 문재인 지지자의 다양성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보면, 트위터에 유입되는 사람들은 점점 다양해지는데 기존 허브들이 그들의 다양성을 수용할 만한 구심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자의든 타의든 ‘독불장군’으로 비칠 여지를 넓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치 철학과 메시지의 측면에서 특히 후자의 문제는 다양하게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 기간에 트리움이 (시사IN)과 진행했던 포커스 그룹 인터뷰 프로젝트([시사IN] 제263·264호)의 경험을 상기하면, 세상에는 소셜 미디어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허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성향은 정확히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니다.
이런 복합적 현실에 비해 선거 직전 문재인 캠프에서 내보낸 영상 [라스트 찬스(Last Chance)]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불만과 바람이 반영되지 않았다. 공개된 영상을 나와 함께 보았던 한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회사 대표는 “참 잘 만든 영상인데, 유권자 소통에선 완벽한 실패다”라고 평했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원래 자기네가 하고 싶은 얘기만 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돌이켜보건대 지난 대선은, 소통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에 광범위한 회색 지대와 회색인들이 생겨나고 있음을 일깨워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 구성원들에게 민주당 대선평가위가 권고한 향후 민주당의 좋은 처신(good conduct)은 어쩌면 야당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상쇄하는 단초가 될 순 있겠지만, 굳이 현 야당을 지지할 강력한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회색분자’를 비난하던 구시대의 문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공감을 위한 철학과 메시지, 정치적 정체성이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문 후보 지지 세력들이 그런 철학과 메시지를 갖추지 못했어도 국민의 48%는 사실상 박근혜를 당선시키지 않기 위해 막판에 결집했다.
김도훈 (트리움 대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