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진의 미디어 이야기]미디어 융합과 탈융합
캐나다 사이몬 프레이저 대학의 진달용 교수가 최근 “De-Convergence of Global Media Industries"라는 재밌는 저서를 출간했다. 남의 역작을 ‘재밌다’는 말로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다. 모두가 융합을 말하는데 진교수가 탈융합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컨버전스라며 매체 융합에 박차를 가했지만 실상 융합은 회사의 위기를 가져왔고, 다시 쪼개지는 방향으로 선회하더라는 것이다. 덩치를 키우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융합의 효과보다는 혼란만 가중되었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오히려 2000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미디어사들은 융합을 멈추고 거꾸로 탈융합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2013년 현재 글로벌 마켓이 덩치는 1조 6,1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렇게 성장한 데는 인터넷의 힘이 컸다. 인터넷 중심으로 글로벌 마켓이 성장해왔지만 앞으론 통신 기반이 대세가 될 전망이다. 인터넷 혹은 모바일 중심으로 미디어 기업이 융합하고 시장을 개척해가리라 예상해도 크게 틀리진 않다. 이미 모바일 폰이 슈퍼 플랫폼 행세를 하고 있고, 기술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그리고 수용자의 이용 행태로 그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쉽게 생각해서 기술 진전에 힘입어 산업을 합치고, 슈퍼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내놓은 일, 즉 모두 엎치고 덮치는 편이 최상의 전략처럼 보인다. (Big is Beautiful).
이노베이션을 앞자리에 세운 스티브 잡스도 그 전략에 골몰했었다. 작은 애니메이션사였던 Pixer가 형님 격인 디즈니사에 합병을 제의했던 것도 iPod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콘텐츠를 내보낼 적절한 기기만 마련된다면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매체 융합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성공을 거둘 것으로 믿었다. 미디어 시장에서 신문을 제외한 인터넷, 영화, 방송, 광고회사들의 융합이 가속화되었다 (진 교수는 신문은 항상 로컬 중심이고, 언어의 문제가 있어 융합 과정에서 소외된다고 한다). 진교수의 통계에 따르면 1990년대 인수합병이 붐이 불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 이르면 그 정점에 이른다. 이후에도 꾸준히 융합이 꾀하지만 정점에서 하강하는 기세를 보이고, 최근 들어서는 융합이 아닌 탈융합의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가? 미국 중심적 설명이긴 하지만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미국 경제를 비롯한 전 세계적 불황이 왔고, 2001년 미국의 911 폭발 사건, 그리고 시장의 포화상태가 그 이유다. 진 교수는 그에 덧붙여 중요한 요인으로 융합으로 인한 융합한 기업 내 문화적 갈등도 꼽고 있다. 그런 이유로 융합 이후 시너지 효과 창출에 실패했고, 회사 이미지를 제고시키지도 못해 융합사들의 시장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후 탈컨버전스가 새로운 답으로 등장한다. 융합했던 것들을 다시 쪼개는 일이다.
탈 컨버전스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마뉴엘 카스텔스는 이미 이를 예견하고 있었다고 진 교수는 주장한다. 카스텔스는 90년대 시작된 미디어 융합은 크게 효율성을 제고할 수 없어 수익 창출에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진 교수는 카스텔스의 예상이 맞았다며 탈 컨버전스의 예로 Viacom와 CBS그룹 간 합병을 예로 든다. 다양한 케이블 채널을 가졌던 Viacom은 CBS네트웍과 연계하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키고,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했다. 2004년 2월 1일에 있었던 제 38회 슈퍼볼 실황 중계에서 그 기대가 크게 어긋나지 않을 거라는 힌트를 주기도 했다.
자넷 잭슨이 가슴을 노출한 사건으로 유명해진 그 슈퍼볼 경기는 시종일간 Viacom의 여러 회사들과 CBS가 손을 잡고 다양한 형태로 캠페인을 벌였고, 자넷 잭슨의 음악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렸다. MTV, Nickelodeon, TV Land, MTV,com, Country Music Television 등의 채널들이 동원되었다. 매번 이런 식으로 주요 홍보 아이템이 있을 때마다 두 그룹은 시너지를 내고자 했고,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재 두 회사는 쪼개졌고, 뉴미디어 파트를 맡은 Viacom은 MTV, Paramount Pictures, BET를 거느리고, CBS그룹은 CBS네트웍, 출판사업 그리고 Outdoor Group을 운영하고 있다.
융합을 꾀했던 AOL-Time-Warner도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다. 이들은 다시 AOL, CNN, Cable, TIME 등으로 디 컨버전스를 행했다. 일반 회사들이 M&A를 통해 시너지 효과 창출에 실패한 경우가 50%인데 비해 미디어 회사들의 융합은 68.7%의 실패율을 보였다고 한다. 미디어 융합은 성공보다 실패의 확률이 높은 셈이고, 실제로 공룡화되었던 융합사들이 실패를 거듭했으니 진 교수의 주장은 신뢰를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탈 컨버전스 이후에는 같은 업종끼리 컨버전스를 하는 일은 늘고 있다. 인터넷 회사와 인터넷 회사, 콘텐츠 회사와 콘텐츠 회사 이런 식으로 말이다. Google이 Youtube를 인수합병한 것이 그 예다. 그런 점에서 탈 컨버전스 시대, 같은 업종끼리의 컨버전스 혹은 통합은 콘텐츠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Content is King).
이종 미디어 산업간 컨버전스를 줄어들고 있지만 동종 산업 간의 합병이 새로운 답으로 등장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콘텐츠 산업에서 동종 사업간 합병이 빈번해지면 당연히 동종 업계의 새로운 강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 융합으로 인해 복합 미디어산업(conglomerates)가 강자였다면 이젠 특정 미디어 분야(영화사업, 방송사업, 신문사업)의 강자가 등장하게 된다(Newly Dominant Players). 미디어 산업 전체에서의 독과점이 과거 걱정이었다면 점차 특정 업종에서의 독과점이 가능해지리라는 예상이다. 방송의 강자, 신문의 강자, 영화의 강자 그런 식으로 말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종편을 시작한 신문의 경우 세계적 경향성을 역으로 해석했거나 홍보했고, 그럼으로써 곤경에 처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월간지를 더 잘 살려서 일간지를 살리고 (유료)온라인 신문으로까지 이끄는 작업을 시도하는 신문사가 있다니 주목할 만한 일이긴 하지만 억지 부리다시피 해 마련한 방송 사업은 내내 부담이 될 거라는 것은 최근 경향에 맞추어 보면 많이 틀린 전망은 아닐 듯하다. CJ는 어떨까?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 산업이지만 점차 복합 미디어 산업화로 진전되고 있음에 비추어 보면 위험스러워 보이기도 하다. 물론 외국의 사례를 들어 공식인양 받아들이고 그에 대입해 예상하는 일은 무리에 가깝다. 하지만 경고음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긴 하다.
진달용 교수의 역작은 여러 군데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유럽에서 탈 컨버전스로 국제 컨퍼런스를 열 예정이라 한다. 카이스트에서 교수 생활을 할 때보다 더 훌륭한 업적을 내는 것 같아 매번 융합, 복합, 창조산업을 외치는 우리 환경이 연구 등과 같은 창의적 작업을 해내긴 얼마나 열악한 곳인지를 스스로 보여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계속 건필하길 바라며 좋은 책 선사해주심에 감사드린다.
원용진 / 서강대 교수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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