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일 수요일

노동이 부정되는 학교, 자본이 점령한 교육


이글은 미디어스 2013-05-01일자 기사 '노동이 부정되는 학교, 자본이 점령한 교육'을 퍼왔습니다.
[교육 살펴보기]
몇 년 전, 어느 고등학교 교실에 걸렸다는 급훈 하나가 알려진 적이 있었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당시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무척이나 씁쓸한 반응을 나타냈다. 단지 입시경쟁에 왜곡된 교육의 현실이 드러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급훈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장을 가거나 미싱을 하는 노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을 천박한 것으로 규정하고,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는 교육.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와 노동이 언제 존중받아 본 적이 있었느냐만 되돌아 보건대, 교육영역에서 노동의 가치에 대한 폄훼와 부정은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87년 6월 항쟁으로 헌법이 바뀌고, 곧이어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다. 전국에서 노동조합의 깃발이 휘날렸고, 노동의 권리와 노동자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년 뒤, 교사들은 노조를 만들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출범. 정부와 보수 세력들은 어찌 신성한 스승이 스스로를 감히 비천하고 불온한 노동자라 주장할 수 있냐며, 1519명의 교사를 거리로 내쫓았다. “우리도 노동자요”라는 교사의 목소리가 부정되는 현실 속에 노동에 대한 교육이 학교 안으로 들어오기는 어려웠다.
이런 현실에 맞서 교사들은 노력했다. 교육의 영역 속에 ‘참교육’이란 이름으로 노동에 대한 고민이 조금이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실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10년 만에 전교조의 합법화가 이뤄지고, 비로소 교사도 노동자라는 그 당연한 요구가 사회적으로 인정되었다. 노동을 보장하는 교육으로 향하는 길이 조금은 열렸다고 보았지만, 전경련 등 자본의 움직임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 차세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자본은 먼저 교과서를 분석했다. 그들과 뜻을 함께한 학자들은 사회와 경제, 역사과목 교과서의 내용이 빈부격차 등 시장경제의 한계를 과도하게 지적하고, 대기업의 부정적 측면만을 부각해 기업가정신을 부정하는 등 반시장적이고 좌편향되어 있다고 규정했다. 헌법에서 규정한 노동3권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교과서들을 두고 말이다.
이어진 건 교과서의 직접 개발. 그들은 2007년부터 (차세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등을 개발하고 일선 학교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교과서의 내용은 시장과 기업에 대한 찬양 일색일 뿐, 노동을 위한 자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노력의 대미는 2011년 발표된 ‘사회교육과정 개정시안’이었다. 중·고교 사회·경제 교과서의 집필 지침이 되는 시안은 앞서 전경련의 교과서 개발에 참여한 연구자가 주도한 것이었다. 시장의 한계와 정부 개입을 다룬 부분이 삭제되었다. 노동의 사회적 중요성, 노동자의 역할을 다룬 내용도 없어졌다. 노동과 노동자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건 개인금융과 자산관리의 내용이었다. 최종 고시에서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빚어졌기에 몇몇 내용들이 수정되었지만, 친기업적인 방향은 결코 수정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자본은 노동의 교육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하는 것 또한 항상 잊지 않았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노동인권교육 실시에 대한 뜻을 비쳤을 때, “계급적 성향의 교육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념노동운동가 양성을 꾀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비난했다. 이미 자본으로 교육의 영역이 기울어진 현실이지만, 노동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늘어나지는 않을까봐 온갖 생색을 부린 것이었다.
자본은 치밀하고 성실했다. 그러나 교육에서 노동의 가치를 옹호하려는 측은 어떠했나. 전교조는 전경련의 경제교과서가 논란이 되었을 때, 민주노총과 함께 노동교과서를 제작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대의원대회 사업으로 통과시켰지만 어찌 된 이유에선지 교과서는 제작되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노동교과서에 들어갈 내용은 각론 혹은 단행본의 형태로 발표했다고 하나 자본의 모습과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한편, 교육과정 내에서 노동이 부정되는 것과 함께, 교육현장인 학교를 유지하는 노동 역시도 그 존엄을 위협받고 있다. 정교사 수는 그대로인 채 어느새 기간제 교사의 수는 3년 내 50% 이상이나 증가했다. 행정실 등 학교 곳곳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만성적인 고용불안,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조건이 그들의 노동을 옥죄고 있다. 비록 이제 그 주체들이 조직화되고, 조금씩 저항들이 나타나고 있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또 이젠 전교조 역시도 합법화 14년 만에 정부의 탄압으로 법외노조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다.
123주년 노동절인 지금 우리에게 놓인 난망한 현실들. 물론 교육이 사회와 분리된 것이 아니기에,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가 철탑에 올라가도,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꿈적 않는 반노동적인 사회의 모습이 교육에서도 자연스레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육이 사회를 유지하는 재생산기구이기에, 즉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지금 현실이 더 암담하다.
앞으로 반전이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오늘 전교조가 노동절을 맞아 공동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업의 내용으로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인권을 다룬다고 한다. 좋은 소식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렵다. 지금은 단기적인 실천을 넘어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실천이 필요할 때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존중받는 교육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자본만큼 더 치밀하고 성실해져야 한다.



전누리  |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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