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3-05-25일자 기사 '[시론]일베와 국가보안법, 차별금지법'을 퍼왔습니다.
최근 “종북주사파”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현실적 수사 대상이 될 수” 있어 그 호칭의 허위사용은 그 대상을 범죄자로 칭하는 것이라서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는 판결이 이정희 전 의원과 전교조가 낸 명예훼손 소송에서 나왔습니다. 몇 달 전 대법원은 “대머리”라는 허위호칭에 대해 대머리로 알려진다고 해서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지 않는다며 명예훼손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 이에 비춰보면 “주사파” 등의 칭호도 평소 같으면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묘사 정도로 인정되었겠지요. 실제로 1980년대 “주사파”라는 말은 폄하 의도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상 “주사파”가 처벌 대상이 되니 주사파가 아닌 사람을 “주사파”라고 칭하는 것은 그 사람의 평판을 범죄자 수준으로 부당하게 저하시키는 것이 되어 명예훼손이 성립되는 것이죠. 결국 국가보안법 좋아하실 분들이 국가보안법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 것이죠. 국가보안법의 역습입니다.
그런데 재역습을 당할 수도 있어요. “종북주사파” 호칭 사용이 그 대상을 국가보안법 처벌대상으로 칭한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손배·유죄 대상이 되어버리면, “매카시즘” “종북몰이”라는 호칭 사용도 똑같은 이유로 역시 명예훼손 대상이 됩니다.

최근 들어 일간베스트(일베)를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분들이 많은데 만약 일베에 대해 명예훼손 판결이 내려지면 “일베충”이란 호칭을 썼다고 해서 명예훼손 책임지는 분들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법으로 말을 규제하는 건 신중해야 합니다. 명예훼손은 무한순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차별금지법의 연장선상에서 약자에 대한 차별과 피해를 초래할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을 가진 언사를 법으로 규제하는 건 찬성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이미 “장애를 사유로 장애인을 모욕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5·18 피해자들을 포함한 학살 피해자들은 아직도 보호대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사실 학살이 아니더라도 살인, 강간 등의 범죄 피해자들도 모두 보호대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말이 단순히 허위라고 해서 그 허위주장이 어떤 피해를 미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말을 규제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지만원씨 무죄 판결은 좋은 예입니다. 5·18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공고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만원씨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고 5·18 피해자들의 평가가 낮아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타인들이 가지는 평판을 보호하려는 명예훼손 법리로 보아 올바른 판결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별적인 언사가 약자들에게 명백하게 끼칠 정신적 피해를 방지하는 차별금지법입니다.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이 존재하고 차별금지 사유에 “국가범죄 피해 사망 사실”도 포함한다면 지만원씨의 5·18 왜곡은 달리 평가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차별금지법을 만들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베의 5·18 왜곡에 대해 법적 규제를 하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잡으려다가는 무한순환 속에서 공적 사안에 대한 토론이 어려워집니다. 당장 천안함 사망자들과 천안함 의혹 제기의 관계도 위험해집니다. 이번에 일베의 일탈에 대해 법적 규제를 하고 싶다면 차별금지법부터 멋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 공짜는 없습니다.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 조항을 폐지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6·25전쟁 때 인민군에게 목숨을 잃은 분들에게 북한 입장에 대한 동조는 학살자 찬양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태인들 앞에서 나치를 찬양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결국 차별금지법으로 ‘국가범죄 피해 사망자 혐오발언’을 금지시킨다면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 조항을 폐지하기도 어려워질 겁니다. 어떤 길을 갈지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충분히 논의한 뒤에.
박경신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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