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8일 화요일

성미산마을에서 ‘건강한 시민’으로 잘 크고 있는 내 딸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5-27일자 기사 '성미산마을에서 ‘건강한 시민’으로 잘 크고 있는 내 딸'을 퍼왔습니다.
[데스크칼럼] 박원순시장과 성미산마을을 ‘종북좌파’라 ‘낙인질’ 하는 언어폭력에 관해

“아빠, 종북좌파가 뭐야?” 최근 중학생인 딸이 물었다. “앵! 왠 종북좌파?” 요즘 중고생들까지 ‘일베’를 한다더니 우리 딸에게도 전염됐나? 설마하는 생각과 함께 잠깐 이 같은 생각이 스쳐지나가고, 이내 딸이 던진 질문의 연유가 짐작됐다.

최근 국정원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 문건에 관한 보도를 듣거나 본 모양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문건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종북좌파’로, 박원순 시장이 펼치는 시정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인 마을공동체 사업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마포구 성미산 마을을 ‘종북좌파양성소’로 규정했다고 한다.  

딸과 기자는 세금 연체 없이 사는, 모범적인 대한민국 국민이자 서울시민을 ‘불가촉 천민’으로 만들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그 ‘막돼먹은’ 표현인 ‘종북좌파 양성소’가 지칭한 그 성미산 마을에 산다. 사람 사귀는 데 부지런하지 못한 성격이라, 마을 공동 활동에 잘 참여하지 않지만, 딸아이는 이 마을 공동 활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성미산 학교’의 학생으로 재학 중이다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춤추는 숲> 한 장면.

아마도 해당문건이 보도된 이후 ‘성미산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 문건에 나온 그 막돼먹은 ‘표현’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오갔던 모양이다.

“아빠, 종북 좌파가 뭐냐?”라는 질문을 받은 기자는 딸과의 대화를 이렇게 이어 나갔다.

[아빠] “딸, 아빠가 아침에 네가 안 일어날 때 너를 뭐라고 부르지”

[딸] “곰탱이!”

[아빠] “그렇지, 아빠가 널 곰탱이라고 부르지, 근데 네가 진짜 ‘곰탱이’야?”

[딸] “(씩씩대며), 아니 내가 왜 곰탱이야 사람이지!”

[아빠] “바로 그거야, 아빠 뜻대로 네가 안 움직이니까 아빠가 멀쩡한 널 ‘곰탱이’로 만들어버리잖아. 너에게 ‘곰탱이’란 망신을 줘서 아빠 뜻대로 너를 움직이게 하려고 말이야, 그것처럼 ‘종북좌파’란 말도 어떤 사람들이 자기 뜻과 맞지 않은 사람들과 집단에게 ‘종북좌파’란 ‘딱지’를 붙여 망신을 주고 위축되게 만들려고 지어낸 말이야”

[딸] “그럼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은”

[아빠]“‘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지”

[딸] “앵?, 좌파가 ‘보수’ 아니었어.”

[아빠] “앵! 좌파가 보수라니! 왜 그렇게 생각했어?”

[딸] “‘좌파’는 나쁜 말이잖아 ‘보수’도 나쁜 말 같고 그래서 좌파는 ‘보수’라 생각했지”

딸의 입에서 ‘좌파=보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민주화’란 말을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획일주의’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한 걸그룹 ‘시크릿’의 전효성이 떠올랐다.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거나 깊이 따져보지 않으면, 해당 언어의 ‘기표’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의’를 연결시키지 못한 채 본인의 짧은 언어사용의 경험 속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인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에게도 ‘종북좌파’란 ‘기표’에는 자국민은 굶기면서, 핵실험이나 미사일발사 위협으로 우리사회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북한체제의 추종자라는 부정적 ‘기의’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춤추는 숲> 한 장면.

그렇다면, 일부 극우보수의 막돼먹은 ‘언어’공작이 딸아이에게도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딸의 경우 진보적 성향의 부모 영향인지 아니면 성미산 마을의 개방적인 분위기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긍정성 때문인지, ‘진보’란 단어에 대해선 좋은 느낌을 갖고 있었고, 진보의 상대적 개념인 ‘보수’에 대해선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좌파=보수”라는 다소 엉뚱한 개념을 갖게 된 것 같다. 

딸의 폭탄발언으로 인해 생긴 약간의 충격 후, 기자는 ‘꼰대’ 아빠의 사명감이 발동했다. ‘설명’이 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빠] “좌파와 우파는 프랑스 혁명 시기의 국회 의석배치에서 왼쪽엔 세상을 빠른 속도로 바꾸려는 ‘진보’세력이, 오른쪽엔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려거나 천천히 바꾸자는 ‘보수’세력이 앉은 데서 유래됐다고 해. 지금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정부여당은 오른쪽에, 야당과 무소속은 왼쪽에 앉는데, 바로 이런 서구의 민주주의 전통에서부터 내려온 것이야. 그런 점에서 개념적으로는 ‘좌파’는 도전하는 자, 바꾸려는 자 즉 ‘진보’를 뜻하는 거야”

[딸] “그럼, 진보를 좌파라 부를 수 있다는 거네..그럼 앞에 ‘종북’은 왜 붙이는 거야?”

[아빠] “종북은 북한을 따른다는 뜻이야. 아빠는 물론 우리사회에서 많은 진보적인 사람들은 북한을 바람직한 국가체제라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일종의 봉건적인 세습국가라는 생각하고 있지. 할아버지, 아버지가 지도자였다고 아들이나 딸 또는 손자, 손녀도 지도자를 하는 그런 국가를 왕조세습국가라고 하지, 조선시대를 생각하면 돼. 그래서 북한은  우리사회보다 후진적인 ‘사회체제’로 인식 되어있어, 더욱이 너도 알다시피 6.25 전쟁으로 인해 부정적인 인식이 더욱 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북한에 대한 우리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이용해 권력자나 일부 보수성향의 사람들이 자신들과 정치사회적 견해를 달리하거나 반대하는 모든 행위나 인물, 집단에 대해 ‘북한’에 동조한다는 식의 근거없는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워서 ‘망신’을 주려고  ‘종북’이란 ‘딱지’를 붙이는 거야. 옛날에는 ‘빨갱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했어.”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춤추는 숲> 한 장면.

딸과의 대화는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딸에게 “아빠는 정치적 견해에 있어 ‘진보적’이지만, 할아버지는 ‘보수적’이야. ‘진보’와 ‘보수’는 이렇게 공존할 수밖에 없는 가족과 같은 거야”라는 말을 했다. 그 가족관계처럼 ‘남’과 ‘북’ 의 관계도 한반도라는 울타리 내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딸과의 대화를 마친 후, ‘특정 정치인’을 공격하기 위해, 내 가족이 사는 마을을, ‘종북좌파 양성소’로 낙인찍으려는 말장난이 참으로 가당찮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낙인’이 두려워 그동안 해왔던 마을과 학교의 사회연대를 위한 행사나 표현 행위가 위축돼선 안 된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딸아이는 지난 금요일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희망버스를 타고 원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다녀왔다. 또 막돼먹은 표현을 쓰는 그 누군가는 학생들이 그 시간에 ‘공부’나 하지않고 ‘좌파질’하고 있다고 '낙인질'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가 책으로 배우는 ‘공부’만큼이나 몸으로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고 경험하는 것을 통해 배우며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역시 본인이 선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이다.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춤추는 숲> 포스터.

딸아이가 밀양을 다녀와서 한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 할머니는 자신의 사위가 경찰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자기 인생에서 경찰과 대치할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딸 아이는 그할머니의 말씀이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딸아이는 그렇게 ‘사회’와 ‘인생’을 밀양 송전탑 반대 현장의 할머니에게서 배우고 왔던 것이다.

이런 열린 배움의 기회가 있는 곳이 이 성미산 마을이다. 기자는 성미산 마을이 지금 내 딸을 ‘종북좌파’가 아닌, 이웃과 사회와 서로 ‘두레’할 자세를 익히며, 타인의 삶을 존중할 줄 아는 열려있는 대한민국의 ‘건강한’ 시민으로 키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미산 마을은 서울 마포구 성산1동을 중심으로 서교동, 망원동일대에 사는 주민들이 서로 필요하고 즐길 수 있는 만큼, 주거/교육/육아/경제/문화 활동을 함께 나누는 공동의 활동을 공간적으로 범주화한 개념이다. 모내기부터 가을걷이까지 두레를 하는 옛 시골 마을과 비슷하다 생각하면 된다.

‘성미산 마을’이 좀 더 궁금한 독자들에게는 지난 토요일부터 극장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춤추는 숲’의 관람을 권해본다. 마을주민이자 성미산학교 학부모인 강석필·홍형숙 씨 부부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만들었다. 지난 10년 간 성미산 마을사람들의 치열하고 따뜻한 삶의 기록을 담았다. 


윤성한 편집국장 |gayajun@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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