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일 금요일

[오성철 칼럼]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

이글은 이데일리 2013-05-03일자 기사 '[오성철 칼럼]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을 퍼왔습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의 위력이 점점 더 커지는 사회에서 도덕적인 가치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을 이렇게 비판했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모든 것이 거래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샐던 교수는 시장만능주의 사고가 도덕 규범까지 바꿔놓는 사례로 이스라엘 어린이집의 벌금제를 들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지각에 대한 벌금을 물렸더니 오히려 지각이 더 늘어난 것이다. 부모들은 벌금이라는 형태로 요금을 지불하고 나자 이 역시 서비스라는 생각이 자리잡았고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것에 대한 가책이 줄었다는 것이다. 

돈이나 지위, 권력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얼마 전 비행기에서 승무원에게 무리한 서비스 요구와 함께 폭언·폭행을 휘두른 대기업 임원때문에 떠들썩하더니 이번에는 중견 식품업체 대표가 호텔 현관 지배인에게 욕설과 함께 폭행을 휘둘러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예전 같으면 쉬쉬하면서 묻혔을 수도 있는 이런 일들이 세상에 알려지며 가해자가 오히려 곤경에 처하자 혹자는 ‘을(乙)의 반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제공하기로 약속된 서비스나 노동력이 아닌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인격까지 건드렸다는 점에서 갑(甲)의 횡포가 도를 넘어섰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사건이 알려진 후 여론의 비난이 쏟아진 것도 인간을 가치있는 존재가 아닌 이익을 얻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듯한 안하무인격 태도에 대한 집단적인 거부감이 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 건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결말은 흔치 않다.

인격마저도 물건처럼 아무렇게나 취급되는 사례는 현실에서는 비일비재하다. 감정노동자(emotional labor)로 분류되는 백화점 판매원이나 콜센터 직원들이 ‘간 쓸개 다 내놓고’ 일해야 하는 현실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논문 표절 사례도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학위가 일종의 거래대상으로 전락하며 생긴 폐해중 하나다. 사실 대학이 마음만 먹으면 심사 과정에서 엉터리 논문을 걸러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치인이나 관료, 연예인들이 손쉽게 학위를 딸 수 있었던 것은 대학이 그들의 권력이나 지위, 유명세를 감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과의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대학의 영향력을 넓혀보고자 하는 알량한 잇속으로 학위를 남발한 것으로 봐야한다.

샐던 교수는 애초부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사고 파는 대상이 되는 순간, 그 본질적인 가치는 훼손되고 변질된다고 했다. 베껴 써서 얻은 학위란 게 들통난 순간 당사자에게 명예가 아닌 멍에가 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네덜란드 속담엔 이런 말이 있다. “돈으로 책은 살 수 있어도 지식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직위는 살 수 있어도 존경은 살 수 없다. 돈으로 관계는 살 수 있어도 사랑은 살 수 없다...(중략)” 이처럼 살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구분은 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걸 계량화하려는 시장중심 사회는 점점 배려나 존중, 그리고 이타심같은 도덕적 가치를 무력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가치들이 힘을 잃으면 건강한 사회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가 시장 경제를 잘 활용하되 과잉 지배를 받아서는 안되는 이유다. (방송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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