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5-24일자 기사 '“아들키워 군보냈더니 껍데기만 돌아와” 울음바다'를 퍼왔습니다.
군 의문사 유족들의 절규…“내 아들 죽인 그들, 지금 행복하게 살겠지”
한국에서는 2012년 기준 약 3일에 한 명 꼴로 군 내 사망사고가 발생하며 이들 중 상당수가 군 생활 부적응 등을 이유로 자살한 것으로 처리된다. 하지만 사망 사고 중에는 합리적 의심을 품을 수 있는 사안도 있다. 이들의 죽음을 ‘군 의문사’라고 하며 이들의 부모는 10년이 넘어도 자식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광진 민주당 의원 주관으로 열린 ‘군 의문사 피해자 증언대회’는 오열과 분노 속에서 치러졌다. 아들들의 영정을 들고 온 부모들은 증언자가 울 때 같이 울었고, 증언을 마칠 때 마다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이날은 국회와 대법원,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 등 4개 기관이 “자살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결국 군에 의해 자살 처리된 김훈 중위(1998년 2월 사망), 총으로 자살했다는 자리에 피 한 방울 튀지 않았음에도 군이 자살로 밀어붙였던 이승원 일병(1998년 12월 사망), 26년 간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허원근 일병(1984년 4월 사망), 진상을 알 길이 없어 10년 간 냉동창고에 보관됐던 강태기 상병(2003년 1월 사망)의 유족들이 나섰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모티브로 알려진 김훈 중위는 판문점GP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군은 즉각 김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판명했다. 당시 목격자가 진술을 번복하고 김 중위의 손에서 권총 사격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군은 여전히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밀어붙였다.
김 중위의 아버지인 김척씨도 중장으로 예편한 군인 출신이다. 김씨는 “지난 14년 간 국민권익위원회, 국회, 대법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군이 주장하는 자살 주장은 일체 근거가 없다고 했다”며 “자살을 하려면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는데 이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고 하면서 순직처리 하겠다는 것은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며 “군에서 자살자로 만들어 놓고, 자살자로 순직 처리하는 규정을 만든다는 것은 김훈 중위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유족을 너무나 고통스럽게 하고, 모든 유족들에게 고통을 계속해서 주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군 의문사 희생자의 유족들이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 국회, 국민 호소 대회'에서 군에서 아들을 잃은 유족들의 사례발표를 들으며 영정사진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원 일병은 5사단 27연대 복무 중 초소 부근에서 K-2 소총으로 가슴에 2발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군은 이 일병에 대해 ‘자살’로 결론내렸지만, 이 일병에 대한 선임들의 폭력과 가혹행위, 성추행이 있었다는 점, 그럼에도 이 일병이 당시 일병으로 진급하고 정기휴가를 얼마 남겨놓지 않았다는 점 등에서 가족들은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이승원 일병의 어머니 고정순씨는 “전화를 받고 죽은 아들을 병원에서 만났다”며 “옷이 홀딱 벗겨져있고 하얀 천에 씌워져 있어 너무 기가 막혀서 눈물도 안 나왔다”고 말했다. 고씨는 “군대에서 잘 제대할 줄만 알았지 누가 아들이 죽을지 상상이나 했겠나”라며 “너무 기가 막히고 억울해서 나는 말을 할 수 없다”고 오열했다.
고씨는 “군에서는 (사망시 입고 있던) 옷을 보여 달라해도 안보여주고, 사단장 면담을 요청하니 사단장을 만나는 예가 없다며 거부하고, 거듭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 남편과 삼촌만 들어가고 나는 못 들어가게 했다”며 “결국 12월 19일 시신을 찾아와 20일 장례식을 했는데 벽제에서 나는 내 아들과 내 전부를 불태웠다”고 말했다.
고씨는 거듭 “아들 잘 키워서 나라에 바쳤다.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 우리 아들 욕되게 하지 말아달라. (이승원 일병 사망 당시 군 간부들은) 자기들 집에 가서는 자기 아들, 손자들에게는 잘 키우라 할 것 아니냐”며 “독자 아들 죽여 내보내고 자기들은 행복하게 살고 말이 되나”라고 비판했다.
허원근 일병은 지난 1984년 4월 가슴과 머리 등에 3발의 총을 맞고 사망해 2002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술 취한 중사의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발표됐다. 하지만 국방부가 다시 특별조사단을 만들어 재조사 한 결과 “총기 오발사고가 없었다”며 또 다시 ‘자살’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2004년 2기 의문사 위원회도 허 일병이 ‘타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허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씨는 “처음에는 중대장이 죽고 없으니 중대장에게 덮어 씌우려다가 다음에 조사하니 엉뚱한 사람이 나오더라”라며 “국방부가 거짓말하는 것을 얘기하려면 끝도 없다”고 말했다. 허씨는 “국회의원들은 검시관 제도를 만들어서 유가족들처럼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공중전화도 다 설치해서 부모가 자식의 상태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씨는 “국방부 말을 믿으면 안돼고 계급이 높을수록 더 믿지 말아야 한다”며 “우리가 세금내서 월급 주는데 허원근 자살을 발표하고 나서 그 사람이 별을 하나 더 달았다”고 말했다. 허씨는 “거짓말하고 별 다는 것 용서 못할 것”이라며 “여기 계신 분들과 저는 억울한 사람이 또 다시 안나오게 하는게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들은 호소문을 통해 “어느 날 걸려온 군 부대의 전화 한통화로 우리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묻는 우리의 의문에 납득할 설명도 없이 그저 ‘당신 아들이 자살했으니 장례나 치르라’는 닦달만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군대 보낼 때는 ‘조국의 아들’이라고 하더니 영문도 알 수 없이 죽은 후에는 미안하다는 말은 고사하고 ‘못난 네 자식’이라며 외면한다”며 “우리는 또 다른 내일의 ‘군 사망사고 피해’유족을 위해 온 몸을 던져 싸울 것이며 징병제 나라에서 군대에서 죽는 것이 더 이상 ‘개죽음’이라 불리는 참혹한 현실을 깨고 군인의 인권이 바로서고 국민의 인권이 바로서는 ‘진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관한 김광진 민주당 의원은 “의무 복무를 위해 군에 갔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모든 군인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며 “최장 15년 이상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군 병원 냉동고에 보관중인 23구의 군인 시신과 139기로 추정되는 유족 인수 거부 군인 유골이 평화의 땅에 안장되는 그날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정상근 기자 | dal@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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