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9일 목요일

[아침을 열며]대기업 이익이 더 소중한 국회 법사위

이글은 경향신문 2013-05-08일자 기사 '[아침을 열며]대기업 이익이 더 소중한 국회 법사위'를 퍼왔습니다.

5월7일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국회가 되레 국민의 따귀를 세차게 때린 날이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유해화학물질이 관리 부실로 유출될 경우 해당 법인 전체 매출의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법사위를 거치면서 과징금 최고 한도가 ‘팍’ 깎였다. 기업들의 강력하고 끈질긴 로비가 먹혀들어간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경제단체 인사들은 국회를 방문하며 유례없는 무력시위를 펼쳤다. 이들은 지나친 과징금 때문에 기업들이 오히려 안전사고 예방을 포기해 버릴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이밀며 의원들을 협박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며칠 뒤 개정안은 유해화학물질을 유출할 경우 법인이 아닌 해당 사업장 매출액의 최고 5%만 과징금을 매기는 내용으로 희석됐다. 법사위의 ‘5·7 법률안 마사지 사건’을 보면서 국민 안전과 직결된 법안을 대기업을 위해 화끈하게 뭉개버리는 국회의원들의 친기업적 태도와 초중증 단계에 접어든 안전불감증에 놀랐다.

지난해부터 한국의 산업현장에선 지뢰밭을 연상시킬 정도로 안전사고가 빈발했다. 지역과 시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유해물질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사고가 터졌다. 시중에는 지뢰밭이 더 안전하다는 우스갯소리도 떠돌았다. 지뢰밭은 다니던 곳만 다니면 절대 터지지 않지만 대기업의 공장은 주택가 주변에도 자리를 잡고 있어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고가 났는지 궁금해 네이버로 뉴스 검색을 해봤다. 

지난해 9월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 내 화공업체인 휴브글로벌에서 발생한 최악의 불산 누출사고 이후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이어졌다. 충북 청주 소재 지디의 불산 유출사고, 경북 상주의 웅진폴리실리콘 염산 유출사고, 지난 1월 발생한 경기 화성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불산 누출, 지난 3월의 구미 LG실트론 유독물질 유출,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대림산업 화학공장 폭발사고…. 같은달 22일엔 ‘한국 산업시설 재해사’를 쓴다면 최악의 날로 기록될 만큼 안전사고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구미 LG실트론 공장 유해물질 유출, 청주 SK하이닉스반도체 공장 염소가스 누출, 한 철강업체 공장의 화재가 하루에 모두 터졌다. 대미는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이 장식했다. 이 공장에서는 지난 3일 다시 불산이 유출돼 3명이 부상했다. 앞서 발생한 사고로 12명이 귀한 생명을 잃었다. 진료받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부상자는 수백명에 이른다. 

법사위원들은 개정안 내용이 기업에 너무 가혹해 적절한 수준으로 낮췄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연간 매출이 200조원인 삼성전자의 화성 반도체 공장에서 불산 유출사고가 다시 발생하면 매출액의 10%인 20조원을 과징금으로 내야 하는데 이게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법사위원들이진정 이렇게 생각했다면 국민들은 ‘바보’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은 것이다. 고용노동부나 환경부는 과징금을 매길 때 본능적으로 최고치를 부과하지 않는다. ‘매출액의 10% 이하’는 유해물질 유출사고를 경고하는 상징적인 문구다. 적어도 관리소홀로 인한 사고는 발생하지 않도록 힘쓰라는 경고인 셈이다. 

법사위원들은 자신들의 입법 행위가 기업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며 뿌듯해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개정안 마사지’는 부메랑이 돼 기업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 생각해 보라. ‘매출액 10% 조항’이 있었다면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다시 불산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을까. 

엑슨모빌은 21개 국가에 37개 정유공장을 보유한 미국 최대의 에너지 기업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이 회사는 반환경적인 기업으로 각인돼 있다. 1989년 발생한 엑슨발데스호 원유 유출사건 때문이다. 이 사고로 알래스카 프린스윌리엄 해협의 해양생태계가 크게 망가졌다. 수십만마리의 조류와 수천마리의 해양 생물들이 죽어나갔다. 사고가 난 지 24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엑슨모빌 하면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사고를 낸’ 기업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굳이 해외에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 삼성전자도 화성 반도체 공장 불산 유출로 심각한 이미지 훼손을 입었다. 이 회사는 국내외에 연간 수조원을 기업 홍보비로 지출한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화성 반도체 공장 불산 유출사고로 천문학적인 돈을 뿌려 가꾼 ‘글로벌 첨단기업’의 이미지가 크게 퇴색했다. LG실트론도 마찬가지다.2011년 1000억원에 가까운 당기순이익을 올렸지만 두 번의 유해물질 유출로 번 돈의 몇 갑절이나 되는 이미지 훼손을 LG그룹에 남겼다. 

새 정부가 행정안전부의 명칭을 안전행정부로 바꿨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한 ‘안전한 사회 건설’ 실천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것인데, 국회 법사위원이나 기업들은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다.
김준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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