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아무것도 없었다


이글은 시사IN 2013-05-21일자 기사 '아무것도 없었다'를 퍼왔습니다.
한반도의 명운이 달린 회담이었다. 그 결과에 따라 긴장 국면이 해소될 수도, 새로운 위기국면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북 관계가 나아질 만한 합의는 전혀 없다.

조짐이 안 좋다.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 태풍 불기 전의 적막감마저 느껴진다. 국가 간에 사건이 벌어질 때는 반드시 징후가 있다. 남북 간에도 마찬가지다. 2008년의 박왕자씨 사건(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나, 2010년 연평도 사건 전에도 징후가 있었다. 북한 측 동향에 밝은 소식통들은 그 징후를 예민하게 포착해 사전에 경고음을 울렸다. 박왕자씨 사건은 2008년 4월의 북한군 전군지휘관 회의가 그 징후였다. 그때 북한 하급 단위 부대들 분위기가 험악했다. 당시 불만은 개성공단 때문이었는데, 사건은 엉뚱하게 금강산에서 터졌다. 2010년 10월의 연평도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북한군 동향이 심상치 않았다. ‘금강산, 개성, 동해와 서해 중 한 군데’에서 사건이 일어날 조짐이었다. 두 달 전 이런 내용을 정보기관이 감지했지만 연평도에서 사건이 터지는 걸 막지는 못했다.

ⓒAP Photo 5월7일 한ㆍ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한·미 동맹 60주년과 정전협정 60주년

올해는 한·미 동맹 60주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7일 한·미 정상회담의 키워드를 여기에 맞춘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또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서울 프로세스)’ 등에 대해 첫 국제 무대인 워싱턴에서 인정받고자 한 것 역시 뭐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말의 성찬들과 함께 꼭 빠져서는 안 될 것이 있었다. 바로 지금 당장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에 대한 한·미 두 나라의 견해와 해법이었다.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북한과 중국 등 주변에서 모두 이번 정상회담을 기다렸고 예의 주시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최근 현안에 대한 중간 결산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긴장 국면이 해소될 수도, 새로운 위기 국면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시작부터 김이 새버렸다. 바로 미국 측 실무를 맡아야 할 최고책임자인 케리 국무장관이 박 대통령의 방미 첫날 러시아로 출국해버렸다. 말로는 시리아 사태가 긴박해 러시아와 협의하기 위해서라지만, 러시아 측 반응은 ‘굳이 지금 안 와도 되는데…’였다.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실무 책임자가 없으니 한·미 정상 간 합의 역시 공허하게 들린다.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이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공감대’를 이뤘느니 하지만, 개성공단이나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뿐 아니라 더욱 중대하고 근본적 현안인 북한의 핵문제와 군사 도발 따위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해법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특히 올해 상반기 내내 있었던 북한의 잇단 도발은 한·미 양국이 무시 또는 회피하거나, 박근혜 대통령이 말로써 결기를 보이는 것만으로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을 나름 평가한 뒤에 다음 라운드를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2월12일의 핵실험 이후 전개돼온 일련의 사태들은 한·미 양국에 대한 대응 차원이 아니라 자신들이 관철해야 할 목표를 분명히 한 상태에서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전개된 것이기 때문이다.

북측의 목표는 다음 문장에 압축돼 있다.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인 올해를 평화협정의 원년으로 삼겠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어제오늘 나온 것이 아니지만, 올해 북한의 움직임은 예년과 매우 다르다. ‘한·미 동맹 60주년과 정전협정 60주년 간의 대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올해는 끝장을 보겠다는 태도다. 북한식 표현으로는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게 아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자기들 정권을 내놓는 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정전협정 체제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절박감이 존재한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자신들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준비해왔다. 핵실험을 단행하고 그 결과를 이란 등 중동에 확산하겠다는 것이다. ‘확산을 통한 협상전략’은 북한이 여전히 쥐고 있는 최고의 카드다. 북측은 그 데드라인을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일인 올해 7월27일로 보는 듯하다. 북한이 개성공단 잠정 폐쇄 이후 유예기간으로 설정한 3개월이 끝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 안에 모종의 성과가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북핵 문제는 동북아 차원을 벗어난다. 대략 이것이 지금까지 북한이 그려온 궤적과 스케줄이다.

지난 상반기 북한은 자신의 요구 사항이 뭔지를 분명히 해왔다. 2월12일 핵실험 이후 미국이 김정은 제1비서의 의중을 탐색하기 위해 데니스 로드먼을 보내는 반응을 보이자, 3월5일 김영철 국방위 정책국장을 통해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했다. 평화협정 전환이 자신들의 요구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키리졸브 등에 맞서 긴장 국면을 유지해가다 4월10일을 전후해 중거리 미사일 발사 움직임 및 개성공단 잠정 폐쇄를 통해 긴장 수위를 급격하게 끌어올렸는데, 이는 북·미 간 뉴욕 접촉에서 북한이 미국 측에 평화협정 논의 재개 시점을 4월10일까지 제시하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돼 있다. 개성공단 문제를 평화협정 공세의 지렛대로 삼은 것이다. 이 점은 개성공단 정상화를 ‘(북에 대한) 군사도발과 적대행위 금지’와 연결시킨 5월5일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성명에서도 드러난다. 5월5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5월7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날이다. 그리고 정상회담 하루 전인 5월6일 북한 은 자신들이 이미 핵 보유국 지위를 ‘법화(法化)’했다며, ‘흥정하려 들거나 시야비야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종합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북한 비핵화 같은 이미 불가능해진 문제 말고, 5월10일로 예정된 한·미 해상훈련 등을 중단하도록 설득하고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데 힘을 써주면, 개성공단 중단 등 일련의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AP Photo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왼쪽)은 박근혜 대통령 방미 기간에 러시아를 방문했다.

그런데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미국 측 실무 책임자는 자리를 비워버렸고, 합의 내용 중에 북측이 참고할 만한 사항은 전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강경한 대북 발언으로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 5월6일 CBS 인터뷰에서 “북한이 도발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라고 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면담에서는 “북한에서는 핵도 보유하면서 경제도 발전시키겠다는 병진 노선을 걸으려 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양립할 수 없는 불가능한 목표”라고 하는 등 수위를 넘은 발언이 쏟아졌다. 당장 북한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회담 결과에 대한 실망을 넘어 ‘저런 태도라면 대화할 이유가 없다’는 비공식 반응들이 나온다.

베이징 프로세스는 가능할까

물론 박 대통령의 처지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정권 출범도 하기 전에 북한이 핵실험을 해버리고, 개성공단으로 협박을 하고 있으니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핵이든 개성공단이든 자기가 책임질 문제도 아니다. 이명박 정권과 해결했어야 할 문제인데, 자기가 덤터기 쓰고 있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북한 문제는 그래서 더 어렵다. 합리적으로 대처가 안 되는 부분이 많고, 그것이 현실이다. 그 현실을 안정적이고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것 역시 한국 대통령의 책무 중 하나다. 

박근혜 대통령의 심중에 중국 카드가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한·미 정상회담 직후로 예정돼 있는 한·중 정상회담이다. 그런데 과연 중국이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최근 북·중 간 움직임은 그마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최근 중국은 두 차례에 걸쳐 특사 파견을 북한에 제의했으나 두 차례 모두 아무 반응을 못 얻었다. 첫 번째는 지난 4월22일 미국 국무부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회담하고 돌아온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대표의 방북 제안이었으나 북한은 묵묵부답이었다. 그 후 중국 공산당 쪽에서 대표를 보내겠다고 했으나 역시 무응답이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이 유예기간을 갖고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렇다. 더구나 중국이 보기에도 미국의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얼마 전 국내 한 신문이 “중국이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북한 비핵화 의지가 낮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이런 우려를 (한국)정부에도 전달했다”라고 보도했는데, 이 같은 평가는 사실이다. 

중국이 보기에 그동안 북핵 문제와 관련해 오바마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심각하다. 의지와 역량이 모두 없어 보인다. 그러면서 지난번 케리 방문에서 드러났듯이 중국에 떠넘기는 데 급급하고 정작 자신들이 할 일은 하지 않으려 든다. 워싱턴에서는 이미 대북 문제는 손을 놨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결국 북핵 문제가 돈 문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데, 지금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쓸 돈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뉴시스 5월3일 개성공단에 남았던 한국 차량이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귀환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중국 역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중국이 세운 북핵 해법은 북한의 핵확산과 동결 문제는 6자회담에서 다루되, 한국과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 비핵화’와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협정’ 문제는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 양자 채널에서 다루라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북·미 대화가 중요하다. 여기서 비핵화와 평화협정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줘야 중국이 대북 특사를 북한에 보낼 수 있고, 이를 통해 6자회담에 시동을 걸 수 있다. 현재는 미국이 북·미 대화를 시작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이것이 없는 중국 특사의 방북은 의미가 없다’며 거부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이 베이징 프로세스, 즉 특사 방문을 통해 북·중 채널을 열지 못한 상태에서는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들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출발은 다시 미국인데,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중국도 자신들만 덤터기를 쓸 수 없다는 판단으로 중재를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상황은 어떻게 될까. 먼저 한·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첫 반응이 지난 5월10일 조평통 대변인 성명으로 나왔다. 조평통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전쟁 전주곡’ ‘동족대결 행각’ 등의 표현을 써가며 거칠게 비난했다. 그러나 “우리는 현 남조선 당국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 제반 사실은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당사자는 바로 남조선 당국자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라고 밝히기도 해, 당분간은 지켜볼 것임을 시사했다. 일단 유예기간을 두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5월 중 베이징 프로세스를 시작할 만한 정황이 전개되지 않을 경우, 북측은 영변 5메가와트 원전 재가동을 극대화하면서 베이징의 통제력이 자신들에게 더 이상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 할 것이다.

남북 간에는 개성공단에 대해 한 단계 나아간 조처가 당장이라도 나올 수 있다. 어차피 북측은 개성공단 유예기간을 앞으로 3개월로 보고 있다. 그 데드라인 역시 7월27일에 걸려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상황대로 밀려가면 7월27일 개성공단은 완전 폐지되고, 정전협정 역시 무효화 차원을 넘어 아예 폐지가 선언될 가능성이 크다. 


ⓒAP Photo 지난해 9월 이란을 방문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왼쪽).

군사적으로 보면, 한·미 훈련이 진행될 때는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 게 여태까지 관례였다. 5월10일부터 해상훈련이 다시 시작되므로, 북측이 무언가를 하게 된다면 6월 말, 7월 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북한 군부의 피로도가 지금처럼  높았던 때가 없다. 국지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도적 또는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있다.

북한 핵의 중동 확산과 관련해서도 주목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이미 지난 4월 이란 석유의 대북한 수출과 관련한 협정이 체결됐다.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에 대응하면서 북한의 기름 소비가 평상시에 비해 엄청날 정도로 많았다. 외부 공급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 시점을 북측에서는 8, 9월로 본다고 한다. 이란에서 배가 들어오는 시점이다. 그런데 이란에서 배로 움직이려면 한 달 정도 걸리므로 대체로 7월 정도면 어느 쪽이든 결론이 나야 한다. 

이란의 배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배가 과연 기름만 수송하게 될까? 그만큼 이번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이 중요했는데, 뉴스는 ‘방미 중 대변인 경질’이라는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끝났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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