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3일 목요일

재벌의 '사적 범죄'와 국가권력의 '공적 범죄' 중 뭐가 더 나쁜가?


이글은 미디어스 2013-05-22일자 기사 '재벌의 '사적 범죄'와 국가권력의 '공적 범죄' 중 뭐가 더 나쁜가?'를 퍼왔습니다.
[방송뉴스 비평]CJ총수 비자금과 김용판 전 서울청장 소환의 뉴스가치

언론이 사회의 민주적 과정에 개입하는 양상은 3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의제 설정을 통한 개입이다. 어떤 이슈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냐의 문제다. 두 번째는 여론 주도층의 활동에 행사하는 영향력이다. 언론의 동향에 매우 예민한 관심을 갖는 정치인이나 국가기관을 조율하는 개입이다. 마지막으론 사회 체제 전체에 공론을 형성하는 기능이다. 언론 생태계가 다양화 된 이후 공론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언론은 공론 형성의 가장 절대적인 수단이다.
방송 뉴스가 민주 사회의 동행자인지를 판단하는 근거 역시 위의 3가지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어떤 의제를 설정하느냐의 문제다. 그리고 여론 주도층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이냐의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관심을 그래서 어디로 몰아갈 것이냐의 문제다.


▲ 검찰의 CJ그룹 압수수색을 KBS는 12번째 리포트로 MBC는 5번째 리포트로 전했다.

21일, 언론의 관심이 지대할 수밖에 없는 2건의 사건이 동시적으로 발생했다. 굴지의 대기업 총수가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으며, 그 그룹의 본사가 압수수색 당했다. ‘경제 민주화’가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때에, CJ 이재현 회장의 불법 비자금 조성 의혹은 파급이 매우 큰 뉴스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소환됐다.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과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해 수사를 축소, 은폐하도록 했느냐가 혐의의 핵심이다. 국가 권력의 부당한 정치 개입 의혹과 관련해 경찰 최고위급 관계자가 소환된 것은 역시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사안이다.
동시 발생한 이 2건의 사건을 방송 뉴스는 어떻게 보도했을까? KBS는 검찰의 CJ그룹 압수수색 건을 12번째 리포트로 보도했다. MBC는 5번째 리포트로 전했다. 가장 큰 비중을 둔 곳은 SBS였다. SBS는 관련 소식을 3번째, 4번째 리포트로 연달아 편성했다.
CJ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의혹은 사실 오래된 이슈였다. 대검 중수부가 꽤 오래도록 내사하던 건인데, 중수부가 해체되며 특수부로 수사가 넘어오며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해외 불법 비자금 혐의 외에 조세피난처에 해외 법인을 두고 있단 소식까지 전해지며 상황은 더욱 심란해지고 있다.


▲ 검찰의 CJ 압수수색에 대해 가장 비중있게 보도한 곳은 SBS였는데, 뉴스의 앞선에서 2꼭지가 배치됐다.

이러한 상황적 심각함에 비해 방송 뉴스의 보도는 상대적으로 너무 과소한 측면이 없지 않다. 뉴스는 사실을 최대한 건조하게 추려, 검찰 발 발표에 기반 한 스트레이트 보도로 갈음했다. 이러한 ‘관급기사’는 기본적으로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입체적인 취재보다는 일방적인 발표에 의존해 결국 사건을 조율하는 정부부처의 ‘입맛’에 맞는 프레임을 형성할 수밖에 없단 문제가 있다. 전격적인 CJ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 수사를 두고, ‘삼성 배후설’, ‘정국 전환용’, ‘친이계 겨냥’ 등의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 그래서 방송 뉴스에는 이러한 ‘시각’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소환 소식이다. 지난 대선을 관통한 사건이고 이후 국정원이 정치적 이슈 전반에 개입해왔단 사실이 폭로되며 사안의 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 전 서울청장의 소환은 매우 중차대한 상황 변화이다. 검찰은 김 전 청장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를 고심하고 있다고 하니, 혐의 입증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같은 날 발생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소환 소식은 그러나 SBS에서만 단신과 리포트의 중간 길이로만 보도됐다.

하지만 김 전 청장의 소환 사실을 보도한 방송 뉴스는 SBS 한 곳뿐이다. KBS와 MBC는 해당 사실 자체를 아예 뉴스 프레임에서 배제했다. 그나마 SBS도 단신과 리포트의 중간 형태로 끝에서 4번째 보도로 간략하게 해당 사실을 전했을 뿐이다.
김 전 서울청장의 소환이 보도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보도국 관계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으로 잠시 정국의 혼선이 있긴 했지만, 국정원 사건은 지난 대선 이후 꾸준히 정국을 끌어온 이슈였고 김 전 서울청장의 소환은 이 사건이 절정부에 돌입하고 있음을 열어젖히는 ‘뉴스 이벤트’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뉴스는 외면했다. 이건 ‘고의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국정원 사건을 아예 프레임화하지 않겠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명이라고밖에 달리 읽어낼 도리가 없다.
방송 뉴스는 국정원 사건을 의제로 삼는 걸 포기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경찰 최고 책임자가 소환되는 상황을 보도하지 않거나 단신에 준하게 처리해버린다는 것은 사실상 이 사건의 전개를 쫓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의도는 명백하다. 민주당이 열심히 국정원 사건을 폭로하고, 이러한 정치적 개입이 민주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행위라는 주장을 설파하고 있지만 방송 뉴스는 이러한 관점의 확산에 동의하지도, 기여할 생각도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방송 뉴스가 국정원 사건이 공론화되는 과정을 최대한 막아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단 점을 드러낸다. SNS 등 비제도적 매체에선 가장 뜨거운 이슈인지 오래고, 인터넷 언론 등 비판적 매체들에서 역시 주요하게 보도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방송 뉴스가 보도 책임을 ‘방기’하며 자꾸 사안을 지우거나 축소하려 한단 점은 분명하게 방송 뉴스가 정당한 공론 형성의 방해자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미국 언론의 ‘후퇴’ 양상을 지적하며 “언젠가부터 미국 언론이 진실보다는 처한 상황에 유리하도록 움직인다”고 비판했던 바 있다. 모린 다우드의 지적은 미국 언론의 ‘포퓰리즘’ 양상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언론 특히, 방송 뉴스의 퇴행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대중 반응의 유불리가 아니라 권력의 유불리에 따라 진실을 기꺼이 감추고, 권력이 처한 상황에 유리하도록 움직이고 있다. 최근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왜 저널리즘은 항상 제자리걸음인가?’는 비판적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질문을 한국에선 ‘왜 우리 저널리즘은 더 뒤로 가는가?’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확실히, 지금 방송 뉴스는 사회의 민주적 과정에 별다른 기여가 되질 않고 있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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