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70~80대 할머니들 옷 벗고 항의… 한전 직원과 몸싸움 부상 속출


이글은 경향신문 2013-05-20일자 기사 '70~80대 할머니들 옷 벗고 항의… 한전 직원과 몸싸움 부상 속출'을 퍼왔습니다.

ㆍ밀양 ‘송전탑 충돌’ 르포ㆍ공사 재개·공권력 투입, 주민과 하루종일 대치

한국전력공사가 20일 경남 밀양시의 고압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다. 공사장 입구를 막고 농성 중이던 3개면 20여개 마을 주민들과 하루 종일 몸싸움이 벌어졌다. 70~80대 주민 3명이 실신하거나 다쳐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지난달 한전과 마을 주민들 간의 대화가 아무런 결론 없이 끊긴 뒤 일찌감치 예고된 충돌이었다.

동이 트자마자 한전은 오전 6시 밀양시 송전탑 공사장에 장비와 인력을 투입했다. 지난해 9월에 공사가 중단된 지 8개월 만이었다. 한전의 요청을 받은 경찰도 오전 6시30분쯤 7개 중대 650명이 밀양시 단장면 고례마을·바드리마을, 상동면 도곡마을·여수마을, 부북면 평밭마을 등에 투입됐다. 6개 송전탑(84·85·89·109·124·127호기) 공사가 먼저 시작되는 곳이었다. 한전은 지난해 1월 고 이치우 할아버지(74)가 분신한 산외면을 제외하고 단장·상동·부북면에서 먼저 측량이나 벌목 공사를 시도했다.

새벽부터 마을 주민들은 진입로마다 경운기와 트랙터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마을 뒷산 정상부에 공사현장이 있는 주민들은 지팡이를 짚고 2시간이나 산을 올랐다. 인가가 드물고 산세가 험해 주민들이 지키지 않은 단장면 고례마을 84·85호기 공사장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에서 한전의 인력나 경찰들과 주민들이 대치를 시작했다.


밀양 ‘송전탑 충돌’ 80대 할머니 실신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를 위해 한국전력의 장비와 경찰이 투입된 20일 밀양시 부북면의 송전탑 공사현장에서 이금자 할머니(82)가 한전 공사 인력들과 알몸으로 몸싸움을 하다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송전탑 공사현장의 충돌로 70~80대 주민 3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한전의 벌목이나 측량 작업은 오후부터 중단됐다. | 오마이뉴스 제공

오전 7시쯤 송전탑 127호기가 설치되는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화악산 8분 능선. 경찰과 한전 시공업체 사람들이 모여들자 60~80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도 새벽부터 설치한 밧줄 바리케이드를 경계선 삼아 마주섰다. 주민들은 똥물이나 고춧가루물을 담은 페트병을 지녀 긴장이 고조됐다. 오전 10시쯤 경찰과소방대원, 한전 직원들이 배치된 공사현장에서 작업 인부들이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할머니 3명이 공사현장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경찰이 막아섰다. 할머니들은 윗옷을 벗고 경찰에 항의하며 오물이 담긴 물병을 던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금자 할머니(83)가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할머니는 의식불명으로 한때 위급한 상황을 맞기도 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전탑 109호기가 설치되는 상동면 도곡마을 뒷산에서도 오전 6시30분부터 마을 주민 50여명이 모였다. 70~8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꼭두새벽부터 쉬기를 반복하며 2시간 동안 산을 올랐다. “이게 무슨 짓이냐” “처음부터 설계를 잘했어야지 상동면에만 16개 송전탑이 들어서는데 누굴 쫓아내려는 거냐”는 말이 이어졌다. 오전 8시30분쯤 한전 하청업체 직원 6명과 경찰 50여명이 공사현장을 에워싸자 대치가 시작됐다. 한 시간 뒤 작업 인부들이 포클레인으로 터파기 공사에 들어가자 주민들은 격하게 반발하고 공사장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이 막아섰다. 그 틈에 일부 주민은 공사현장에 들어가 굴착기 앞에 드러누워 있다가 경찰에 의해 끌려나오기도 했다.

오전 11시쯤 공사현장 밖에 있던 한전 직원 30명이 기습적으로 공사현장에 진입하자 이를 막던 이갑술 할머니(80)와 서홍교 할아버지(82)가 직원들에게 깔려 다리와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산으로 내려가기 힘든 부상자들은 119헬기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헬기가 도착한 틈을 타 주민들은 산발적으로 흩어져 공사현장에 진입했다. 경찰과 한전 직원들이 쌓은 저지 벽을 순식간에 뚫은 주민들은 포클레인과 굴착기 앞에 앉아 공사를 막았다.

여기저기서 부상자들이 나오자 경찰과 한전 직원들이 한발 물러나면서 공사는 오후부터 중단됐다. 상동면 정동마을 이을순 할머니(89)는 경찰이 물러나는 것을 보면서 “송전선로를 땅에 묻든지 다른 지역으로 우회하든지 하면 되지 왜 자꾸 마을을 지나게 공사를 하느냐”면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을 위해 한전의 장비와 공권력이 투입된 20일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할머니들이 밧줄로 마을 입구를 막고 농성을 하고 있다. 밀양 | 서성일 기자

7년을 이어온 싸움은 다시 멈췄다. 대치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계삼 밀양송전탑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신고리 3호기의 전력 공급 능력은 전체 전력의 1.7%에 불과하는 등 전력수급에 미칠 영향이 미미하다”고 말했다. 그는 “알몸시위를 하고 실신한 부상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면서 “공사를 강행하면 어르신들도 계속 저지할 텐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전은 지난 18일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가 불가피하다는 대국민호소문을 발표했고 대책위는 공사 중단과 전문가협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765㎸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공사는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경남 창녕 북경남변전소까지 보내기 위해 한전이 2008년 8월 착공했다. 송전선로 공사는 울산 울주군, 부산 기장군, 경남 양산시, 밀양시, 창녕군까지 총 90.5㎞에 걸쳐 161기의 송전탑이 건설된다. 밀양에는 송전선로가 5개면을 지나는데 산외면, 상동면, 부북면, 단장면 등 4개면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밀양 | 김정훈·김기범·이효상 기자 j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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