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5-17이라 기사 '용서받지 못할 5.17 쿠데타'를 퍼왔습니다.
80년 5월 17일 24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로 실권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
우리 사회는 80년부터 96년까지 5·18 시민군을 ‘폭도’라고 했었다. 이로써 주검이 된 시민군을 두 번 죽인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고문당하고도 모자라 폭도로 몰려 도망 다니거나 숨어 지내야 했던 16년을 우리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까. 공감은 둘째 치고라도 상상이나 되는가? 빨간 줄 그어지면 취업도 할 수 없었던 시절에, ‘폭도’라는 딱지는 그 가족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짓밟는 주홍글씨였다.
지만원 씨(시스템 클럽 대표)가 광주 민중운동을 다시금 북한군 사주에 의한 ‘폭동’이었다고 주장하려면, 당시 전두환과 함께 쿠데타에 동참했던 군 수뇌부들이 북한 특수군 600명의 남한 침탈에 대해 사실상 무방비였던 죄과부터 물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지 씨는 세계가 규정한 ‘민중운동’에 대해 ‘북한 특수군의 사주에 의한 폭동’이었다며, 망명자 황장엽과 김덕홍의 뒤늦은 증언에 넘치는 신뢰감을 보여줬다.
그런데 의아한 것이 있다. 북한 특수군 600명이 광주에 침투했다면 엄청난 안보 구멍이 났다는 것인데 소위 군사전문가라는 지만원 씨가 당시 전두환이 장악한 군부의 안보 실패를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두환·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는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목 아래 정권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1980년 5월 17일 24시, 즉 5월 18일 0시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실권을 장악하였다. 5월 17일 저녁부터 김대중과 김종필을 각각 내란음모사건과 부정축재혐의로 체포하고 김영삼을 가택 연금하면서 인권유린·헌정파괴 행위를 자행했기 때문에 이를 들어 ‘5·17 쿠데타’라고 한다.
전두환이 유신헌법에 따른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거쳐 9월 1일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군정이 시행되었다. 해방 이후 시행된 미 군정(1945.9.9.~1948.8.14)과 박정희의 5·16 군사 정변으로 시행된 군정(1961.5.16.~1963.12.16.)에 이어 세 번째 군정이었다.
교황 바오로 2세는 “정의 없이는 평화가 없고, 용서 없이는 정의가 없다.”라고 했다.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마음 investigating mind) 6부를 보면, 국내외 큰 재앙이나 사건에서 이미 각종 트라우마에 관해 보아 왔듯이 마음에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1년 12월 현재 5.18 후유증으로 숨진 부상자와 유족들 약 380명 중 자살자 비율이 일반인보다 350배가량 높다는 것은 2009년 5.18 특집 다큐멘터리에서도 이미 확인되었다. 5·18이 불러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기질적 뇌손상, 우울증 같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으로 자살할 뿐 아니라, 당사자와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일상에서 지속하는 다양한 심리·정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고통은 부상자와 유족뿐만이 아니라 당시 계엄군들 일부도 마찬가지로 겪고 있다. 최 수길(당시 22세) 씨 등이 탄 버스가 광주에서 화순으로 가던 5월 23일, 주남마을 앞에서 승객들은 학살을 당했다. 진압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원 김효겸 하사는 아직 살아 있던 한 남자가 부상으로 얼굴이 심하게 붓고 피로 얼룩져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신의 사촌 최수길 씨인 줄 몰랐다고 한다. 잠시 후 주민증을 확인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신참으로서 아는 체할 수 없었고, 그날 사촌은 결국 총살당했다.
사촌이 암매장된 지 25년이 흐른 뒤에야, 죄책감에 괴롭던 과거로부터 탈출하고자 김 씨는 망월동 국립묘지로 가서 저승의 사촌에게 ‘미안하다’며 오열했다.
용서란 잊는 것과는 달리 기억은 하되 마음에서 놓아버리는 것이다. 용서를 빌지 않는데 용서할 수는 없는 노릇, 인생은 유한해 용서도 때가 있는 법이다. 과연 故 최수길 씨가 사촌 김효겸 씨를 용서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죽은 이는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이는 용서 또한 할 수 없으니, 수많은 피해자가 용서하지 못해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이승을 떠나는 마당에, 용서를 구하지 않는 이 시대를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용서해야 할까?
털어놓지 못한 그때의 만행들을 숨긴들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용서 또한 당연하게도 불가능하기만 하다.
김난주 기자 | younha4346@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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